[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매출 1조원대 국내 제약사가 미국 화이자 등 매출 60조원을 넘어서는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한낱 양치기에 불과했던 다윗은 상대에게 접근하지 않고도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원거리 무기와 특유의 민첩성을 앞세워 거인 골리앗을 제압했다. 당연히 칼과 방패를 들고 백병전으로 맞붙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다윗은 가죽 물매로 돌을 던져 승리를 쟁취했다. 국내 제약사들도 마찬가지다. 허를 찌르는 기술 혁신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골리앗과 같은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충분히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일부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미래 유망 분야에 발 빠르게 역량을 집중하며 제약강국을 향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전문업체인 신테카바이오의 김태순 대표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제약사와 똑같은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면서 "AI 신약개발 등 5~10년 뒤에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해 나간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잠재력 크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세계적으로 고령화 추세가 빨라지면서 의약품 시장은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가장 걸맞은 산업군인 만큼 우리나라의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는 융합·허브 산업이자 미래의 주요 먹거리 산업"이라며 "우리나라는 반도체, IT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으며, 발효식품과 자동차, 전자제품으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국이다. 이러한 모든 산업에 전반적으로 강한 국가경쟁력이 바이오산업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영작 LSK글로벌 PS 대표는 "아태지역으로 범위를 좁히면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가장 발전한 제약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은 기초연구가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 많이 뒤처져있지만 임상시험에서 강점을 가진다. 아시아에서 임상시험 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치켜세웠다.

▲ 출처=한국바이오협회, LSK글로벌PS

정부의 규제 개선 지지부진 아쉬워

반면 전문가들은 제약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정책과 규제에 대해선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 정부가 제약·바이오 산업을 비메모리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와 함께 중점 육성산업으로 선정했지만, 규제 완화에 대한 갈증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회장은 “한국의 약점은 바로 규제와 통제”라면서 “최근 정부는 유전자치료와 장기이식 등 바이오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에 가로막혀 있는 유전자 정보 검색 및 공유까지 포괄적으로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들은 ‘날고 있는데’ 우리는 ‘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의 경우 유전자 정보 획득 자체를 가로막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첨단의약기술의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이라고 덧붙였다.

이영작 대표도 정부의 지지부진한 규제 혁신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제약바이오 산업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약과 치료는 분명히 다르다”며 “정부가 제약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라면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족함 채워 제약 영토 넓혀라

이 부회장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마케팅 역량도 함께 키울 것을 주문했다. 그는 "혁신적인 과학에서 출발했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응용할 수 있는 글로벌 감각이 필요하다"며 "개발 초기부터 마케팅에 대한 접근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제약 영토를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명으로 내수 시장에 의존해 제약바이오 산업을 부흥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스위스,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등 모두 인구가 적은 국가지만 제약강국이다. 약 7억명이 넘는 유럽 인구가 이들 국가의 제약산업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도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국가와 연합한 제약영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인공지능(AI) 신약개발, 바이오시밀러,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쏟아냈다.

그는 "전 세계 바이오 시밀러 시장은 노바티스의 자회사인 산도스와 함께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선두주자"라며 "이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차지해나간다면 바이오시밀러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첨단재생바이오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신약 개발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직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글로벌 경쟁력과 비교했을 때 속도전에서 밀리는 감이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