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사람들로 북적이는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을 피해서 5시경에 이른 저녁을 마치고 나오는데 레스토랑 앞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와 앞을 가로 막는다.

노숙자로 보이는 할머니가 잔돈이 있으면 좀 달라고 애원하는데 신용카드 사용이 익숙해져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으니 수중에 잔돈이 없어 그냥 지나쳐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군대에서 얻은 부상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참전용사가 휠체어를 밀며 구걸을 한다.

날씨가 쌀쌀해진 탓인지 지하철 구석이나 승강장 의자에는 각종 짐으로 자리를 차지한 노숙자들이 졸고 있고, 때로는 지하철 의자를 침대삼아 자는 노숙자들이 있어서 냄새를 피해 승객들이 다른 칸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노숙자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뉴욕에서는 지난 1987년부터 노숙자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는데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시절부터 이 프로그램은 크게 확대되면서 현재는 연간 50만달러를 노숙자 이주비용 예산으로 책정하고 있다.

미국은 노숙자를 미국내 뿐만 아니라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온두라스, 가장 멀게는 뉴질랜드등 해외로까지 이주시키고 있다.

뉴욕의 노숙자 이주 프로그램으로 약 20%의 노숙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가야할 만큼 먼 곳으로 보내지고 있다.

뉴욕은 인구 1만 명당 노숙자 숫자가 46명으로 워싱턴DC의 1만 명당 99명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노숙자 숫자가 많은 지역인 캘리포니아(1만 명당 33명), 오레곤(1만 명당 35명), 워싱턴(1만 명당 30명), 메사추세츠 (1만 명당 29명) 등은 모두 노숙자 이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시에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진 노숙자들의 경우 가장 많이 이주한 곳은 미국 남부 지역으로 플로리다의 올랜도와 조이아의 애틀랜타였다.

해외지역으로는 푸에르 토리코에 가장 많은 노숙자가 보내졌다.

이들이 버스 티켓이나 비행기표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이들을 단기간동안 숙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거나 노숙자단체등과 연결된 경우에 가능하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고향이나 이전에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대체로 이들 지역은 생활비가 저렴하고 주택가격이 낮아서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기 쉽고 주택을 임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생활비가 저렴한 지역은 대체로 산업환경이 악화됐거나 혹은 마땅한 취업처가 없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취업이 어려워서 대도시로 왔다가 실직이나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노숙자가 된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없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노숙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노숙자 관련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무료 버스 티켓을 받아서 돌아간 사람들중에 가족들의 도움으로 알콜중독이나 약물중독에서 벗어나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이주지역에서 다시 노숙자가 되거나 혹은 먼길을 다시 돌아서 원래 지역으로 오기도 한다.

플로리다의 키웨스트 지역 노숙자 이주 프로그램은 버스 티켓을 받은 노숙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고 만일 돌아올 경우에는 노숙자 쉼터 등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도록 해서 이 또한 노숙자들에게는 어려움이 되고 있다.

지역 정부의 노숙자 담당 부처나 민간 노숙자 쉼터 등 어느 곳도 다른 지역으로 보내진 노숙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이들이 잘 적응하는지에 대해 추가 확인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이에 따른 예산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노숙자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노숙자 1인당 시에서 사용되는 비용이 8만달러에 달하는 반면 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버스비용은 수백달러면 되기 때문에 노숙자 이주 프로그램은 사실상 지역 정부의 비용 절감 노력의 일환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노숙자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해마다 시로 유입되는 노숙자들의 숫자가 늘어서 인원이 2배 이상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노숙자 해결책은 없이 각 시와 주가 서로 노숙자들을 떠넘기기 바쁜 ‘시한폭탄 돌리기’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