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강민성 기자] 올해 초부터 3분기까지 회사채 시장에 장기물 발행이 급증하고 있지만 대부분 시설 투자보다는 단기차입금 상환과 차환을 위한 자금조달이 급증, 시설투자 없는 빚 규모만 오히려 늘고 있다.
저금리 장기화와 우량채권에 대한 투자수요 증가로 기업들이 회사채 차환과 상환에 활발하지만 과거보다 값싼 가격으로 자금을 조달해도 장기물 발행으로 오히려 차입(부채)규모가 이전보다 증가하고 있다. 자금 조달 목적이 부채를 줄이고 미래 대비를 위한 설비투자보다는 단기적인 금리차이를 이용 고금리 부채 바꿔치기만 급증, 미래 대비용 설비투자는 큰폭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빚은 크게 늘어 경제침체에 따른 기업들의 수익성 하락이 본격화땐 큰 부담이 우려된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국내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가운데 장기채 발행은 18조696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6조7300억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설비투자는 줄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일반 회사채 발행 실적 중 시설투자를 위한 자금조달은 총 3조195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3조33515억원 대비 4.7% 감소했다. 반면 차환목적의 발행은 전년 동기 대비 875억원(0.7%) 늘어난 11조8977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단기차입금 상환과 거래처 물품대금 결제를 위한 운영자금 마련은 18조4145억원으로 전년 동기 10조623억원 대비 83% 증가했다.
10년전인 2009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나 우량기업의 회사채 발행 비중이 증가했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시설투자를 위한 자금조달이 컸다. 2009년 회사채 발행 가운데 시설투자를 위한 자금조달 규모는 5조7313억원으로 2008년 1조2455억원 대비 4배 늘었다.
또한 올 상반기 국고채 금리 하락으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금조달 했지만 값싼 이자비용을 이점으로 장기물의 회사채를 발행해 차입 규모도 가파르게 늘어난 점도 위험신호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올 초부터 8월까지 AA등급의 우량기업이 회사채 발행을 전년 대비 30% 확대됐지만 AA등급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하락해 차입부담이 확대되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AA등급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6.2%로 전년 대비 역성장해 실적이 2015년 수준으로 회귀했다.
이성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고채 금리 하락으로 AA급 기업의 회사채 발행 환경이 개선됐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적저하도 뚜렷해 회사채 발행에 따른 차입부담도 확대됐다”고 말했다.
◇ 올 3분기 A급 회사채 발행기업, 수요증가로 3년물 채권 1%대 조달
올 상반기에 이어 3분기에도 국고채 금리하락으로 공모채 시장에서 자금조달이 활발했다. 3분기 발행기업 중 식음료업체는 해태제과와 롯데칠성음료가 있었고, 효성중공업, 만도, 현대제철, 세아베스틸, 현대건설기계 등 철강·중공업·자동차부품업의 자금조달 움직임도 눈길을 끌었다. 3분기에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 모두 기관투자자의 수요 증가로 3년물을 1%대 조달 비용으로 발행했다.
또한 올 3분기 회사채를 발행한 A급 기업은 5년만기 채권도 2%대로 지난해보다 이자비용이 낮아졌고, 포스코·SK텔레콤 등 트리플A 기업의 경우 10년만기 장기채권도 1%대 금리로 발행했다.
A등급 기업 대부분은 조달비용이 낮아졌지만 회사채 발행 증액을 결정한 곳도 많아 차입의존도가 대폭 확대됐다. 낮아진 경기전망과 금융시장 불안으로 2009년처럼 회사채에 수요가 몰리고 있지만 자금조달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면 기업 대부분은 차입규모가 증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 한은이 7월과 10월 두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올해 2%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융업계는 내년 초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도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4분기에 계획한 채권 발행을 미루고 내년 초 더 개선된 환경에서 조달하려는 곳도 생겨날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2020년에도 A급 회사채의 만기도래가 대규모 예정되어 있는 만큼 신규 물량이 증가할 것"이라며 "다만 경기둔화로 설비투자 전망도 밝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