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구글이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둔 가운데, 국내 통신사들의 양자 ICT 산업 경쟁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SK텔레콤은 실용화에, KT는 표준화 작업에 집중하는 분위기며 LG유플러스는 기초 체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 양자암호통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신의 계산을 인간의 영역으로
양자는 모든 물리량의 최소측정값이며, 양자 컴퓨터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해 수퍼 컴퓨터 대비 수백만 배 이상의 능력을 자랑한다.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당장 알고리즘 자체가 유동적이며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기존 컴퓨터에 비해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효과적이고 빠르게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각 국 정부, 기업들은 양자 ICT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이미 양자 기술 개발에 각각 약 1조3000억원, 약 1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자 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 그리고 양사센싱을 양자 3대 산업으로 부르는 가운데 최근 구글이 미 항공우주국과 함께 양자 컴퓨터의 신기원을 열어 눈길을 끈다. 현존하는 최고의 수퍼 컴퓨터로 1만년이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양자 컴퓨터로 단 3분20초만에 풀어낸다는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하며 업계를 경악시켰다. 실제로 구글은 23일(현지시간) 자사 블로그와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 관련 기사를 통해 ‘양자 지상주의’(quantum supremacy) 발견을 공표했다. 구글 시커모어의 화려한 데뷔다.

구글의 행보로 양자 컴퓨터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수퍼 컴퓨터 명가 IBM은 “연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지적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인텔도 구글 시커모어의 성과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양자 컴퓨팅은 변혁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그러나 이 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전에 이 험난한 여정에서 우리는 계속 많은 도전과제들을 극복하며 이정표를 지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양자 컴퓨터가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양자 컴퓨터가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본다. 연산에 대한 개념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치가 기존 컴퓨터와 비교해 대동소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알고리즘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순간이라면, 양자컴퓨터는 오히려 기존의 컴퓨터와 비교해 눈부신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는 약점도 있다.

구글 시커모어의 등장과 함께 '무엇이든 풀어내는' 양자 컴퓨팅에 관심이 집중되며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의 시세가 급락했으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시세가 급등한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난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제18차 집단 학습을 주재한 자리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투자를 늘리고 산업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하자 비트코인은 시커모어의 악몽을 떨치고 무려 40%나 급등했다.

▲ SKT가 유럽의 양자 로드맵에 참여한다. 출처=SKT

통신 3사의 방식
국내 통신사들은 양자암호통신에 주로 집중하는 분위기다.

SK텔레콤은 2005년 고등과학원과 부산 경성대 공동 연구팀이 25㎞ 거리에서 양자암호통신을 시도하는 실험에 성공한 이후 2013년 국내 최초로 양자암호통신 연구기관 ‘퀀텀정보통신연구조합’ 설립을 이끌어 낸 바 있다. 2016년 세계 최초로 세종-대전 간 LTE 백홀에 양자암호통신을 실제 적용했으며, 2017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5×5㎜)의 양자난수생성기(QRNG) 칩을 개발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아이디큐(IDQ)를 전격 인수했으며 도이치텔레콤의 모바일엣지엑스에 상호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등 양자암호통신 영역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3월부터 5G 가입자 인증 서버에 IDQ의 양자난수생성기(QRNG, Quantum Random Number Generator)를 적용하며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양자암호통신 상용화에 적극 나서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스위스 양자ICT 기업 IDQ에 약 700억원을 투자했으며, 사내 양자기술연구소(퀀텀테크랩) 조직을 IDQ로 통합해 스위스, 한국, 미국, 영국에 IDQ 사무소를 전진 배치한 바 있다. 이후 SK텔레콤은 20일 IDQ가 EU 산하 ‘양자 플래그십(Quantum Flagship)’ 조직이 추진하는 ‘OPEN QKD’ 프로젝트에 양자키분배기 1위 공급사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OPEN QKD는 도이치텔레콤, 오렌지, 노키아, 애드바 등 이동통신사와 통신장비사는 물론 정부, 대학의 연구기관까지 총 38개의 파트너가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미국에서도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난해 미국 양자통신 전문기업 ‘퀀텀엑스체인지(Quantum Xchange)’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이후 최근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미국 최초의 양자암호 통신망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IDQ와 퀀텀엑스체인지는 현재 구축된 양자암호 통신망을 내년까지 워싱턴D.C.에서 보스턴에 이르는 800Km 구간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4분기에는 양자난수생성기 제품 라인업을 대폭 강화해 자율주행차, 데이터센터, 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출을 확대할 예정이다. 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센터장은 “5G 세상에는 모든 사물이 데이터화 되며 그만큼 보안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질 것”이라며, “양자암호통신이 대한민국의 국보급 기술로 거듭날 수 있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KT는 표준화 작업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14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전기 통신 연합(ITU-T) SG13 국제회의에 참여해 11건의 기고서를 제출해 4개의 신규 표준화 과제를 추가로 채택시켰고, 전세계에서 양자암호통신 관련 가장 많은 6개의 표준화 과제와 34건의 기고서 실적을 보유한 유일한 기업이 됐다.

KT는 2017년 9월 ITU-T SG17에서 양자암호통신 표준화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하는 한편 2018년 6월에는 ITU-T SG13에서 세계 최초로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 관련 표준화 주제를 채택한 바 있다. ITU에서는 이후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 관련 SG13에서 9건, SG17에서 5건(기술 보고서 1건)의 후속 표준화 주제들이 제안되어 개발되고 있다. ITU는 지난달 KT가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공동 제안에 참여한 양자통신 포커스 그룹 (FG QIT4N; Focus Group on Quantum Information Technologies for Networks)을 신설한 바 있다.

▲ 양자암호통신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출처=KT

KT의 양자암호통신 표준화 로드맵은 국내 기업의 글로벌 양자 산업 진출을 돕고있다는 설명이다. KT 융합기술원장 전홍범 부사장은 “KT는 양자암호통신의 국제 표준화 리딩을 통해 더 안전한 네트워크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며, “미래 네트워크 보안의 핵심이 될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 기술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해 초연결 시대에 안전한 미래 네트워크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상대적으로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더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6월 17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ITU-T SG13 국제회의에서 논의된 표준에 참여하는 등 꾸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상반기 5G 전송팀으로 양자암호통신 업무를 이관하며 기초체력을 키우는데 집중하는 중이다. 5G 전송팀은 네트워크부문 내 네트워크개발담당 소속 부서며,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상용화 로드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