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를 둘러싼 논란이 격해지고 있다. ICT 기술이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이 시대의 대세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일하는 방식’을 두고 각자의 의견충돌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분위기다.

4차 산업혁명과 주 5시간 맞지 않는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를 열어 정부의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4차위 2기 출범 이후 민간위원을 중심으로 하는 13개 작업반이 구성된 한편 100여 명의 전문가가 대정부 권고안 작성에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필요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불확실성이 높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의 주체인 ‘인재’를 육성하고, 그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주 52시간제 등 노동제도 개선, 대학 자율화, 산업별 맞춤형 지원 등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 52시간 근무 시행이 초읽기에 돌입한 가운데, 유연한 근무제 도입을 주장한 지점에 시선이 집중된다.

장 위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오토웨이타워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스타트업이 한국의 미래를 열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담식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당시 장 위원장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저해한다고 봤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주 52시간 제도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장 위원장은 코스포 대담회 당시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정립한 바 있다. 장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단기적으로는 인공지능, 장기적으로는 기술의 발전”이라면서 “3차 산업혁명은 주어가 인간인 알고리즘이 구축되는 것이며, 4차 산업혁명은 주어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이 보여주는 변화의 속도는 빠르고, 이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규정한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현명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함의 시대를 맞아 기획을 통한 대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얼마나 현명하게 실패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디지털의 특성이기도 하다.

신형 자동차 테스트를 예로 들었다. 그는 “1, 2차 산업혁명이 해당되는 아날로그의 시대에서 신형 자동차 테스트를 한다면 철저한 계획을 해야 한다”면서 “반면 3, 4차 산업혁명이 해당되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냉정한 기획보다 투입비용이 극소화된 실행에 방점을 찍어 무수히 많은 테스트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위원장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를 극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대기업은 토지, 노동, 자본을 투입해 기존 자산을 활용하는 방식이며 스타트업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면서 “스타트업은 열정과 몰입, 또 실패를 거듭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스타트업이 각광을 받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하며,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디지털 산업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현실에 기반을 둔 오프라인 경제는 치밀한 계획으로 실수를 줄인 로드맵이 핵심이라면, 디지털은 ‘코드와 코드의 복사’로 무수히 많은 실패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즐기며 새로운 시대를 즐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불확실성, 디지털 시대의 4차 산업혁명 정체성과 주 52시간 근무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장 위원장은 “스타트업은 주 52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가 중요하다”면서 “몰입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로 근로의 다양한 가능성을 원천차단하는 방안보다는, 차라리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러한 발상은 주 52시간 근무의 폐혜로 이어진다.

▲ 코스포 대담이 열리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불확실성의 시대

당장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에도 근로단축이 예고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관련 보완책을 주문한 바 있다. 주 52시간 제도는 합리적인 고용환경을 구축하는 포석이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당장 주 52시간 제도를 운영할 경우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난 4일 문 대통령과 만나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56%가 주 52시간 제도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8일 사옥을 방문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게임 업계는 생산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은 6개월 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반면 생산성이 뒤처지는 우리나라는 1년이 지나도 게임이 나오지 않아 이를 어떻게 극복하냐가 당면 문제라고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탄력근로제 논의가 본격화된 이유다.

다만 주 52시간 제도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주 52시간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으며, 당분간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 연장선에서 장 위원장의 주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업무를 정교하게 기획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디지털 방식으로 많은 시행착오로 비전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률적인 주 52시간 근무제도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근무를 하고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근무를 보장하고, 그에 합당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다소 현실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 초과근무를 자원하며 인센티브를 벌어간다고 가정하면, 인센티브를 원하지 않아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언젠가는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초과근무의 여지를 한 번 열어주면 나중에는 '슬그머니' 주 52시간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역효과도 날 수 있다. 결국 이와 관련된 치열한 논의와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