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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초짜가 설치면 선수는 숨는다
   

“아빠, 나 축구 하다가 체육 선생님을 이겼어!”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가 어느 날 의기양양해서 자랑을 늘어놨다.

“방과 후에 체육선생님이랑 5, 6학년이 한편을 먹고, 4학년 애들이랑 축구를 했는데 비겼어. 전반전에는 지고 있었는데, 악착같이 덤벼들어서 6대 6으로 비겼어.”

“응, 그랬구나. 잘 했네.”

“4학년이 한 명 더 많기는 했지만, 내가 선생님이랑 몸싸움을 해서 이기기도 했어.”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영을 계속해오고 있고, 잘 먹기도 해서 키가 또래 4학년 보다는 얼굴 하나는 더 크다. 유난스레 축구를 좋아해서 수업 마치고 매일 같이 공 차느라 집에 올 때면 입고 간 옷이 땀에 절어 있기 일쑤다. 자기가 생각해도 선생님과 고학년 학생들과의 시합에서 대등하게 플레이를 한 것이 못내 흡족해서 쉬지 않고 설명을 했다.

혹시나 싶어서 “체육 선생님이 여자 선생님이셔?”라고 물었더니 “아니, 남자 선생님이야.” 그러고도 혹시나 해서 “그럼 선생님이 키가 작으셔?”라 했더니, “아니 아빠보다는 조금 작아도 180 정도는 될 거 같은데.”라고 답을 했다. 머릿속으로 대충 그림이 그려지고 짐작이 되었지만, 아이의 기를 살리는 말로 답했다. “그렇게 덩치도 좋은 선생님과 어깨 싸움을 하면서 동점골까지 넣었다니 참 대단한데!”

비는 시간이면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유명 축구 스타들의 슛 동작도 흉내 내어 연습하기도 하고, 인근의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또래들끼리 연습도 하는 걸 안다. 때문에 고학년 형들과 체육선생님을 상대로 비등한 경기를 펼쳤다는 것은 11살 4학년에게는 커다란 훈장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어줍잖게 훈수 두려 하지 마라. 그들이 더 전문가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이 되면서 백구의 계절이 왔다. 내가 맡았던 팀의 전력이 예년에 비해서 훨씬 짜임새 있게 올라왔지만, 그래도 내심 불안하다. 예전에 일 년간 데리고 있으면서 매 시합 때마다 답답했던 그 심정이 아직도 경기를 대할 때면 울렁증으로 되살아 나곤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배구 볼 줄 아는 눈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더 했고 나이 많다는 이유로 뭔가 도움이 좀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어설픈 플레이를 했던 선수들에게는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싶기도 했고, 경기를 하는 코트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콕 찍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분야에서는 나름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던 사무국 후배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감독님께 말씀 드리고 나서, 애들 교육 한번 시켜보면 어떨까?”

팀에 대한 애착이 너무 커져서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 간절한 바램을 실어서 물은 것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단호박이었다.

“절대 하지 마세요. 감독님, 코치님, 전력분석관에 고참 선수들 모두가 배구 전문가들입니다. 시합 끝나면 회의도 하고 영상도 반복해서 돌려봅니다.”

“아, 그래도 너무 플레이가 답답해서, 뭔가 도움되는 말이라도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사람들은 평생을 배구만 해온 사람들입니다. 겨우 몇 달 본 눈으로 조언이라뇨?”

속으로 뜨끔했다. 맞는 말이었다. 배구팀을 맡은 지 겨우 몇 달 될까 말까 한 초짜의 눈에 비친 답답함을 평생을 배구만 해온 전문가들에게 가르치려 한 어리석은 시도였다. 후배에게 그렇게 가르침을 받고 나서는 아무리 답답해도 그냥 옆에서 격려하고 하이파이브 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다 정 답답하면 선수들과 어울려서 같이 밥도 먹으면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려 했다.

우리가 속단하기 쉬운 것처럼, 운동선수들은 무식하게 밥 먹는 시간 빼면 무조건 몸이나 쓰는 그런 직업이 아니었다. 쉬는 틈틈이 책도 보고 동영상이며 각종 자료를 분석하는 것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합이 끝나고 나면 모여서 그 날의 시합을 복기해보고 다음 시합을 준비했다. 단순하게 던지고 뛰고 받고 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개개인의 섬세한 근육의 상태, 그날의 컨디션, 심리 상황, 경기장의 환경 조건 등등을 치밀하게 따져가면서 시합에 임했다.

후배가 가로막았길래 망정이지, 그런 선수단을 대상으로 조언을 하려 한 나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이었는지, 지금도 생각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다. 배구 경기 룰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수준이었던 내가 겁 없이 하려 했던 것이 얼마나 모자란 짓이었는지 두고두고 반성했다.

 

무식한 조언은 자신의 한계만 드러낼 뿐

기업 홍보를 위한 툴들이 많지만 제작에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동영상이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각 사업장들을 다니며 촬영해야 하고 편집하고 더빙 입히고 수정에 수정 작업을 거쳐야 겨우 5분 남짓한 영상물 하나가 완성된다. HD급 화질을 구현하는 시기로 넘어오면서 제작 비용도 수천만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압축하여 회사를 멋있게 소개하기에는 그만이기에 대소 행사를 비롯하여 많이 활용된다.

재무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렵사리 동영상물을 제작했던 일이 있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전 버전에 촬영해 두었던 자료들을 다시 활용하고, 새로 촬영한 내용들을 추가로 넣어 편집했다. 힘든 회사 분위기를 극복하고 뭔가 희망찬 미래와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하고 센 장면과 소리들을 활용했다.

기획안을 만들어 결재를 받고 전국의 주요 계열사를 돌면서 촬영을 진행하고 강행군 한 끝에 초안 편집본을 겨우 제작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대회의실에서 영업, 재무, 인사, 총무 등등 사내의 각 팀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를 가졌다. 상영에 앞서 아직 초안 수준임을 감안하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에 주목해 주기를 부탁했다.

당시 사내 분위기도 위축되고 뭐 하나 제대로 진행되던 것이 없던 때라, 어줍잖은 것은 공격받아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2회 연속으로 영상을 본 뒤에 의견을 요청했다. 묵묵부답. 상업영화나 TV 영상 또는 다른 대기업의 화려한 영상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당시의 영상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팀 일에 불려 나온 것도 못내 꺼림직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참고 이런 저런 말로 의견을 유도했다.

“오류가 너무 많이 눈에 띕니다.”

성격 까칠한 혁신팀 팀장이 입을 먼저 뗐다. 그러자 그 말이 신호가 되었는지, 여기저기서 질책들이 쏟아졌다. 언짢은 표정들로 지적했다. 화면 전환이 어색하다는 둥, 자막에 오자가 보인다는 둥, 이십 여명이 지적한 오류를 합쳐보니 다섯 가지 정도였다.

“여러 의견 감사합니다. 저는 23군데 정도에서 문제점을 찾았는데, 그 정도 지적에 그친 것은 잘 봐 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십여 명이 다섯 개의 문제점을 신나게 공격하고 있던 차에, 직접 작업한 내가 스무 군데 이상의 문제점을 시인하자, 누구도 입도 떼지 않았다.

사실 어떤 조직이든 사람들은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지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큰 문제를 지적하면 자칫 그 사업이 좌초될 우려가 있고, 자잘한 문제를 지적했다가는 의미 없는 지적이라는 평을 듣게 된다. 또 윗사람 앞에서 문제를 들춰내거나 할 경우에는 문제를 찾아낸 사람이 그 처리까지 떠맡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에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심리다. 때문에 만만하면서도 그 책임이 돌아오지 않을만한 것들만 지적하게 된다. 그래서 전문가와 구별된다.

특히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업무는 정량적 요인보다 정성적인 측면이 많고, 눈요기 거리나 함축된 메시지 등이 주를 이루는 통에 누구나 쉽게 입을 대고 싶어한다. 사실은 그런 하나 하나가 경영철학, 기업문화라는 바탕 위에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행해야 하는 것임에도, 화려해 보이고 싶거나, 눈 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비전문가들이 보기엔 그냥 이랬다가 저렇게 해도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역효과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면서 중병을 숨기고 자신이 쉽게 치료 할 수 있을만한 증상만을 고지한다면 제대로 된 의사라 할 수 없다. 문제는 있는 그대로를 들춰내서 봐야 한다. 만만하고 뒷탈이 없을 것만 끄집어내고 정작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것을 덮어둔다면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된다. 너무 가벼운 것도 없고 너무 심각할 것도 없이, 문제를 찾을 때는 문제를 찾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문제를 문제로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은 문제를 찾을 때 해결이라는 것을 연관 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해결할 수 없어 보이거나 사소해 보이는 것은 덮어두게 된다. 그래서 엄한 길로 가게 된다.

계급이 높다는 이유 만으로 자신의 짧은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화를 자초하게 될 뿐이다. 그 일에 대한 인사이트도 없으면서 순간순간 자신의 짧은 생각만을 강요하는 초짜가 덤벼들면 진짜 전문가는 조용히 숨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체대 출신의 선생님을 한번 어깨로 밀쳤다고 ‘승리했다’고 착각하는 초등학교 4학년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에.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11.05  15: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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