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롯데쇼핑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대내외적 불안요소로 인해 소비는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이에 국내 유통업체들은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국내 유통업체들은 가까운 미래에 업계가 마주할 변화들을 대비해 유통 시스템과 기술투자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유통기업들은 장기 관점의 생존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대하는 현 정부의 시선은 매우 차갑다. 최근 정부가 “유통업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라면서 내놓은 주요 대책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유통 대기업들에 대한 ‘깊은 불신’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현재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 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이하 특약매입 지침)’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가 밝힌 계획에 따르면 본 개정안은 다가오는 30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31일부터 시행된다. 이 개정안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백화점, 마트 등 대형 유통채널들이 판촉이나 세일 행사를 열 때, 제품 금액의 50%를 의무적으로 지원해야한다는 내용이다. 개정안에 대해 공정위 측은 “유통 대기업들이 계약상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상품을 공급하는 주체들에게 할인에 수반하는 비용을 전가하고 있는 일종의 ‘갑질’을 근절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유통업계에서 자연스러운 유통 순환 시스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면서 바판을 받고 있다. 통상 분기에 한 번 혹은 그 이상의 주기로 실시되는 백화점의 세일은 공급 업체들의 재고처리 혹은 단기 수익증대를 위한 상품의 대량, 염가 공급에서 시작된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세일로 모객을 할 수 있어서 좋고, 공급업체는 재고를 오래 보관함으로 발생하는 비용 대신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개정안은 이러한 순환을 무시하고 유통 대기업은 모두 공급업체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할인 비용의 50%를 대기업에게 전가 시킨다.    

이에 크게 반발한 백화점은 곧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참여하는 세일행사인 ‘2019 코리아 세일 페스타’ 참가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이벤트 상품을 제공하는 소극적 참여로 보이콧을 선언했다.  

▲ 최초로 순수 민간 주도로 시행되는 2019 코리아 세일 페스타. 특약매입 지침 개정안에 반발한 백화점들은 이번 행사에 대한 소극적 참여를 결정했다. 출처= 2019 코리아세일페스타 홈페이지

유통 대기업들을 대하는 정부의 관점은 다른 규제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곧 추진될 예정인 ‘유통사업법 개정안’의 논리도 특약매입 지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형 유통채널(이번 개정안에서는 복합쇼핑몰)의 영업이 중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생존권을 위협하기 때문에 영업일수를 제한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앞서 시행된 대형마트 규제 효과에 대한 업계와 학계의 수많은 연구를 통해 정부가 의도하는 성과를 올릴 수 없음이 증명됐다.  

제조업에 비해 경제효과 창출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유통업은 고용효과에 있어서는 최상위에 있는 산업군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유통산업 육성이 시급한 5가지 이유’(2017)에 따르면 유통업의 고용비중이 전체 산업평균인 4.8%의 3배 수준인 14.2%다. 연구에서는 “1개 대형마트 신설은 부졈 지역 약 200명의 고용 증가를 유발한다는 실증연구 결과가 있으며, 대형 복합쇼핑몰 1개가 특정 지역에 입점하는 경우는 지역에서 5000명에서 6000명의 상시 고용이 이루어지며, 총 1만 명 이상의 취업유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경제 성장의 근간인 내수 소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유통업을 이끄는 대기업들에게 정부는 한없이 편향된 잣대를 계속 들이밀고 있다. 실제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유통 대기업들이 정부의 날선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사업의 근간을 모두 해외로 옮겨버리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이쯤 되면 현 정부는 유통 대기업들이 그냥 이유 없이 미운 것이 틀림없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