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 9월 미국항공우주국(NASA) 사이트에 수상한 문건이 게시된다. 최근 개발된 양자 컵퓨터칩이 연산능력 기준 기존의 수퍼 컴퓨터를 압도해 기존 디지털 컴퓨터의 성능을 일부 넘어서는 ‘양자우월성(양자우위)’을 최초로 이뤘다는 내용이다. 문건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수퍼 컴퓨터로 1만년이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양자 컴퓨터로 단 3분20초만에 풀어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당 문건은 공개와 즉시 삭제됐다.

잠깐의 소동이었으나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꿈의 컴퓨터라는 양자 컴퓨터의 새로운 가능성이 일부 엿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NASA의 문건 게시를 보도했던 미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해당 연구는 지난해부터 NASA와 양자 컴퓨터 협력을 이어오던 구글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구글은 시커모어를 활용해 난수를 증명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 양자의 특성을 살린 양자 컴퓨터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출처=갈무리

양자산업, 신의 영역으로
양자는 모든 물리량의 최소측정값이며, 양자 컴퓨터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해 수퍼 컴퓨터 대비 수백만 배 이상의 능력을 자랑한다.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당장 알고리즘 자체가 유동적이며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기존 컴퓨터에 비해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효과적이고 빠르게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국방 및 사회, 교육,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양자 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 그리고 양사센싱을 양자 3대 산업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 각 국 정부, 기업들은 양자 ICT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이미 양자 기술 개발에 각각 약 1조3000억원, 약 1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나아가 미국은 지난해 9월 ‘양자정보과학 국가전략’ 수립 및 ‘국가 양자이니셔티브법(National Quantum Initiative Act)’ 제정을 통해 체계적인 지원 기반을 마련했고, 중국은 2022년까지 양자 ICT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은 양자 ICT 산업에서 가장 빠른 상용화 로드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016년 8월 중국 정부는 북서부 간쑤성 고비사막에 있는 주취안 위성발사센터에서 세계최초 양자통신위성(QUESS)을 탑재한 장정 2-D로켓을 발사했다.

양자 컴퓨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양사 ICT 산업이 부상하는 가운데, 구글은 시커모어로 업계에 강력한 충격파를 던졌다. 그러자 수퍼 컴퓨터의 명가인 IBM이 발끈했다. IBM은 구글 시커모어를 두고 연구소장 명의로 입장문을 내어 “연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자사 블로그에 논문을 공유해 “구글은 양자우월성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날을 세웠다.

IBM의 문제제기까지 이어진 후 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양자 컴퓨터의 기술력이 구글의 손에서 탄생했으나 수퍼 컴퓨터의 IBM이 어깃장을 놓으며 ‘무엇이 진실인가’를 두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구글이 나섰다. 구글은 23일(현지시간) 자사 블로그와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 관련 기사를 통해 ‘양자 지상주의’(quantum supremacy) 발견을 공표했다. 그 즉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가 급락하며 출렁였다. ‘모든 암호를 풀어낼 수 있다’는 공포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 IBM이 공개한 양자 컴퓨터 일부. 출처=갈무리

양자 컴퓨터, 만능일까
구글이 양자 컴퓨터 영역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양자 컴퓨터가 보여준 미래로는 현재 컴퓨팅 파워의 보완재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연산에 대한 개념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치가 기존 컴퓨터와 비교해 대동소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알고리즘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순간이라면, 양자컴퓨터는 오히려 기존의 컴퓨터와 비교해 눈부신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는 약점도 있다. 큐비트의 정의와 활용을 통한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어야 하는 이유다.

구글의 손에서 양자 컴퓨터의 시대가 열리는 분위기가 연출되자, IBM과 같은 경쟁자들이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인텔의 행보도 이목을 끌고 있다.

인텔은 25일 "양자 컴퓨터가 신약 개발, 금융 모델링, 우주의 원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 컴퓨터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서도 "현실에서 양자 컴퓨팅 상용화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한다. 즉, 이 여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들은   밝혀지고, 축하하면서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 컴퓨터의 수준을 올린 구글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현실과의 안착을 노려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인텔 연구원들은 양자 실용성 달성에 필요한 요소를 이해하기 위해 고성능 양자 시뮬레이터를 통해 양자 컴퓨터가 수퍼 컴퓨터보다 빠르게 풀 수 있는 시기를 예측한 바 있다. 테스트에는 도로 교통 관리부터 전자제품 설계에까지 쓰이는 맥스 컷(Max-Cut)이라는 최적화 문제가 활용되었다.  맥스 컷은 변수가 증가하면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알고리즘이다.

인텔은 맥스 컷 문제의 변수를 증가시키며 노이즈에 강한 양자 알고리즘과 현재 사용중인 최신 알고리즘을 비교했다. 광범위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인텔 연구소는 양자 컴퓨터가 실용적인 문제를 수퍼 컴퓨터보다 빠르게 풀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백 큐빗이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업계에서 활용 가능한 사이즈의 양자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데까지는 수년이 더 소요될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인텔은 "실리콘에서 스핀 큐빗(spin qubit)으로 알려진 기술 발전의 진척에 고무되어 있다. 스핀 큐빗은 초전도체 큐빗보다 더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인텔은 최신 인텔 프로세서를 생산하는 동일한 공정과 설비에서 300mm  웨이퍼로  스핀 큐빗을 제조하고 있다. 연구와 피드백 주기를 보다 빠르게 하기 위해 크리오프로버(cryoprober, 극저온 웨이퍼 프로버(CryogenicWafer Prober))로 불리는 새로운 툴을 설계해 300mm 스핀 큐빗 웨이퍼를 대량으로 테스트하고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은 마지막으로 "양자 컴퓨팅은 변혁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 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전에 이 험난한 여정에서 우리는 계속 많은 도전과제들을 극복하며 이정표를 지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양자 컴퓨터가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양자 컴퓨터가 핵심적인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지금은 ‘양자암호통신의 시대가 먼저’라는 말도 나온다. 현재의 암호통신은 권한을 가진 사용자만이 원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암호화하여 정보를 송수신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효율성을 이유로 공개키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RSA라는 공개키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최근 RSA 공개키 방식이 데이터 탈취로 이어지는 잦은 해킹 및 사고에 노출되며 논란이 커지는 중이다. 5G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강력한 암호 인프라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커지는 이유다.

양자암호통신은 냉정하게 말해 '본연의 암호체계'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양자암호는 0과 1이 중첩된 양자비트, 혹은 큐피트로 메시지를 작성하며 편광을 활용해 무제한의 범위를 전제한다. 여기서 양자암호통신은 광자의 개수를 조절해 중간 탈취자의 존재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통신채널로 지나는 양자비트를 복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편광 방식의 변화로 인해 중간 탈취자가 정보를 획득하고 다시 도망쳐도 잡아낸다.

양자를 보내는 기술인 양자키분배기, 양자를 만드는 양자난수생성기(QRNG, Quantum Random Number Generator)가 대표적이며 이 영역에서 최근 SK텔레콤이 두각을 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스위스 양자ICT 기업 IDQ에 약 700억원을 투자했으며, 사내 양자기술연구소(퀀텀테크랩) 조직을 IDQ로 통합해 스위스, 한국, 미국, 영국에 IDQ 사무소를 전진 배치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SK텔레콤의 양자암호통신 기술력이 크게 부각되는 중이다. 최근 IDQ가 EU 산하 ‘양자 플래그십(Quantum Flagship)’ 조직이 추진하는 ‘OPEN QKD’ 프로젝트에 양자키분배기 1위 공급사로 참여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양자 컴퓨터는 꿈의 컴퓨터며, 신의 계산을 인간의 계산으로 끌어온다는 강점이 있으나 아직은 수퍼 컴퓨터의 보완재라는 설명이 어울린다. 여기에 양자암호통신을 중심으로 로드맵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대중성 측면에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 SKT의 IDQ의 비전이 공유되고 있다. 출처=SKT

수퍼 컴퓨터 경쟁 ‘반면교사’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양자 컴퓨터의 미래방향성이 명확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국내에서도 양자 ICT 산업 전반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문제는 사실상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ICT 기술수준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의 양자정보통신 기술수준은 최고 기술보유국인 미국의 73.6%에 불과하며, 유럽(99.9%), 일본(90.0%), 중국(86.1%)와 10%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양자암호통신에서 SK텔레콤 등 민간기업 중심의 성과가 나오고 있으나 양자 컴퓨터 등 양자 ICT 3대 산업 전체로 시야를 확장하면, 정부는 사실상 로드맵을 방치하고 있다는 평가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 국회 양자정보통신포럼 공동대표)이 최근 양자응용기술 및 산업 진흥을 위한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가칭 ‘ICT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으나 아직은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다.

김성태 의원은 “국내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 등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ICT 국가의 위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자정보통신 분야에서만큼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양자 기술과 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지원과 육성이 늦어질수록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더욱 벌어져 영영 따라잡을 수 없을 수도 있으며 나중에는 ICT 강국의 위치마저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수퍼 컴퓨터 경쟁에서 철저하게 도태된 역사가 양자 컴퓨터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2012년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위원회를 통해 수퍼 컴퓨터 로드맵을 의욕적으로 펼쳤으나 지원 부족 등의 이유로 사실상 좌초된 바 있다. 양자 컴퓨터 시대가 열리는 상황에서 시장이 열리는 초반부터 정부가 나서 다양한 로드맵을 구현, 수퍼 컴퓨터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