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이 25일 진행된다. 삼성은 물론 국내외 경제계가 숨을 죽이고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법원의 판단에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그 후폭풍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달리고, 달렸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오는 25일 뇌물공여를 비롯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 상 횡령, 특경가법상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모두 5가지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진행한다.

대법원이 8월 29일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낸지 약 두 달만이다. 이 부회장은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이 부회장은 2017년 8월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았으나, 지난해 2월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난 바 있다. 두 판결이 달라진 것은 공여된 뇌물의 성격과 뇌물로 제공된 것으로 알려진 말 3마리의 소유권에서 법원의 판단이 갈렸기 때문이다. 1심에서는 이 부회장이 전형적인 정경유착 범죄를 저질렀으며 포괄적 경영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적극적인 뇌물 공여로 이어졌다고 판단해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최지성 전 삼성 미전실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이 부회장이 353일간 수감생활을 보낸 후인 지난해 2월 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대해 "삼성의 후계자이자 삼성전자 부회장, 등기이사로서 이 사건 범행을 결정하고 다른 피고인들에게 지시하는 등 범행 전반에 미친 영향이 크다"면서도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긴 어려웠던 점, 수동적으로 범행에 이르렀고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1시 재판에서 관건이 됐던 포괄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재단 출연금도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정유라 승마지원에서 마필제공에만 일부 뇌물죄를 적용했고 소위 0차 독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정권의 강압에 대한 수동적 뇌물 제공에 나섰다고 본 셈이다. 삼성이 뇌물로 제공한 말 3마리의 소유권을 2심에서는 삼성에 있다고 봤다. 최순실 씨가 딸인 장유라에게 말을 주며 “너의 것인 것처럼 타라”고 한 대목은, “너의 것이 아니다”라고 봤기 때문이다. 말 구입비가 뇌물에서 제외되며 이 부회장 집행유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인 16억2800만원에 대한 제3자 뇌물 혐의 및 허위 지급신청과 예금거래 신고서로 78억9430만원의 해외 자금 송금을 혐의는 1심에서 유죄였으나 2심에는 역시 무죄로 결론났다.

이 부회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당분간 정중동의 행보를 보였다. 풀려난 직후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삼성전자 창립 80주년도 별도의 기념식없이 조용히 넘겼다. 그러나 대내외의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즉각 유럽 및 미국, 캐나다를 돌며 인공지능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으며 중국 및 일본을 돌며 스마트폰 및 통신 네트워크 시장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기회의 땅 인도를 방문해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 참석, 문재인 대통령과 인도 모디 총리와 만나기도 했다. 8월에는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180조원을 향후 3년간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채용하는 것이 골자다. 이어 지난해 9월에는 3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 가운데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재계 총수급 인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

올해 첫 행보를 5G로 잡아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도 했다.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신년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내 신년회에 불참한 이 부회장은 3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5G 네트워크 통신 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에 참석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 부회장은 가동식 현장에서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사장, 노희찬 경영지원실장 사장, 전경훈 네트워크사업부장 부사장 등 경영진과 네트워크사업부 임직원들에게 “새롭게 열리는 5G 시장에서 도전자의 자세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2월에는 재차 중국으로 떠나 현지 사업을 점검하는 한편 UAE(아랍에미레이트)를 방문해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와 만났다.

4월에는 파운드리에 집중한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이 발표됐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총 133조원을 투자, 글로벌 반도체 전체 시장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이다. 이어 5월에는 일본 출장을 다녀왔고 6월에는 한국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의 만남에도 참석했다. 이후 한국을 찾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제 등과 연쇄회동을 했으며 최근까지 해외 출장 일정을 연속적으로 소화하며 활로 찾기에 매진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경제전쟁이 기승을 부리자 이 부회장의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즉각 일본으로 출장을 떠나는 한편 현장경영을 강조하며 위기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소재 국산화 및 시스템 반도체 전략, 인공지능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재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끝나고 갤럭시 스마트폰의 영업이익률이 줄어드는 등 내적인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 등 외부의 상황도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이 부회장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현장경영을 강조하며 막대한 투자를 주도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이재용 부회장이 에어컨 시설 현장경영에 나서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 8월 29일 2심을 파기하자 삼성은 충격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저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라면서 저희 삼성은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고 말했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높아졌으나, 이 부회장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9월 삼성리서치센터를 방문해 현장경영 기조를 이어가는 한편 추석 연휴기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삼성물산이 건설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현지 리야드 도심 지하철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추석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고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계신 여러분들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면서 "중동은 탈석유 프로젝트를 추구하면서 21세기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여러분이 흘리는 땀방울은 지금 이 새로운 기회를 내일의 소중한 결실로 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도를 방문하기도 한 이 부회장은 지난 12일 QD 디스플레이 전략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5년까지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시설 구축 및 연구개발(R&D)에 총 13조1000억원을 투자하는 것이 골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5년까지 13조1000억원을 투자해 아산1캠퍼스에 세계 최초 ‘QD 디스플레이’ 양산라인인 ‘Q1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신규 라인은 초기 8.5세대 3만장 규모로 2021년부터 가동을 시작해 65인치 이상 초대형 QD 디스플레이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으나,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은 역시 부담이었다. 이 부회장은 사내 등기이사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밝혔고, 공교롭게도 사내이사 임기가 끝나는 날은 파기환송심이 시작되는 25일이다.

▲ 이재용 부회장이 QD 디스플레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어떻게 될까?
25일 파기환송심의 관건은 뇌물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다. 2심에서는 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과 마필 구매비 34억원을 수동적 뇌물로 봤으나 파기환송심이 이를 대법원처럼 뇌물로 보면 실형 기준인 50억원을 넘는 86억원이 뇌물로 인정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 부회장은 또 다시 법정구속될 수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이미 1년에 가까운 날을 복역한 상태에서 재산국외도피 혐의에서 일정정도 무죄를 받으면 극적으로 풀려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과 삼성의 미래행보가 25일 파기환송심에 걸려있다고 본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수감됐던 당시 삼성전자는 하만 외에는 별다른 인수합병도 하지 못했다"면서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으로 대내외적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중심을 잡고 삼성을 이끌어야 어려운 국내 경제 상황도 희망이 보이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한국 경제는 위기일발이다. 국제통화기금 IMF는 15일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0%로 하향 조정하며 사실상 '경고등'을 켠 상태다. 미중 무역전쟁 및 브렉시트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크게 휘청이는 분위기다. 여기에 지난 7월 일본이 경제전쟁을 걸어오며 전반적인 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콘트롤 타워인 이 부회장이 법정구속되는 상황이 도래하면, 한국 경제 전반에도 돌이킬 수 없는 악재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유연한 대응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에 대한 냉정하고 엄정한 잣대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해 전격적인 판단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퀄컴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7년 1월 미국 연방거래소(FTC)는 퀄컴이 모뎀칩 시장의 지배자적 위치를 이용하며 제조사들에게 과도한 로열티를 받는다며 전격 제소한 바 있다. 이후 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은 4월 FTC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퀄컴의 특허료 사업 관행을 두고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렸으나 항소 과정에서 제9연방순회항소법원이 FTC가 퀄컴에 명령한 시정명령을 유예하라고 판결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극적인 반전의 도우미 중 하나는 다름아닌 정부기관 미 법무부다. 미 법무부는 지난 4월 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이 FTC의 손을 들어주자 이례적으로 퀄컴에 대한 반독점 판결집행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이는 퀄컴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글로벌 기술경쟁에서 미국이 도태될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 법무부는 5G의 퀄컴이 반독점 심사에 발목이 잡혀 비즈니스 모델이 약화되면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봤다. 결국 유연한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