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 김용범 메리츠화재 부회장의 회사 전용차는 카니발이다. 통상 고급 세단을 타고 다니는 타사 수장들과는 사뭇 다르다. 수행원이 없을뿐더러 엘리베이터도 임직원들과 같이 탄다. 본사 사옥 안에 있는 6개의 엘리베이터 중 하나가 회장과 대표 전용임에도 말이다. 평소 복장도 풀 정장 대신 캐주얼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이처럼 효율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김 부회장의 모습은 경영 방침에도 그대로 반영됐으며, '메리츠화재의 도약'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2015년 김 부회장이 취임한 이후 메리츠화재의 실적은 업황 악화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일개 중소형 보험사 중 하나였던 메리츠화재는 현재 업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메기’로 부상했다.

◇ 부진한 업황 속 ‘승승장구’

최근 5년간 메리츠화재의 순익은 2015년 1713억원, 2016년 2578억원, 2017년 3551억원, 2018년 2600억원 등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부진한 업황 속 이 같은 실적은 괄목할만한 성과라는 평가다. 올 상반기 순이익도 전년 동기 1320억원 대비 3.1% 증가하며 상위 5개 손보사 중 유일한 순익 개선을 보였다. 메리츠화재는 지난 1분기 때에도 상위 5개 손보사 중 유일한 실적 개선을 나타냈다. 이 외에도 메리츠화재의 장기 인보장 M/S(시장점유율)는 올 상반기 업계 2위까지 치고 올라갔으며, 월 평균 전속채널 신입도입은 업계 1위를 기록했다. 13회차 장기보험 유지율도 82.6%로 업계 상위권이다. 일반경비효율은 올 상반기 47.7%로 업계 1위를 차지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과거보다 성과급은 높아지고 근무환경도 대폭 개선돼 설계사들을 포함한 임직원들의 책임의식이 강화되고 있다”며 “이는 곧 메리츠화재의 도약을 이끌어 낸 원천”이라고 말했다.

◇  “효율성”… 대대적인 조직개편으로 효율 높여

메리츠화재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원인으로는 ‘효율성’이 꼽힌다. 김 부회장은 취임 후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나섰다. 체질 변화를 위한 과감한 시도였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관리조직을 축소하고 현장 실무자들의 권한을 강화했다.

김 부회장은 2015년 3월 관리 조직을 탈바꿈했다. 영업점포를 본사 밑으로 직결되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절감된 영업 관리 비용은 향후 수수료 재원 등으로 활용됐다. 기존에는 본부·지역단·점포 등 3단계의 영업 관리 조직으로 이뤄져 있었다.

지점장 출신이었던 메리츠화재 한 관계자는 “영업현장의 레이어가 확 줄어들었다. 기존 보험사의 영업구조는 점포, 지역단, 본부 등 3단계로 구성돼 있었다. 이런 구조는 관리하는 사람이 많아서 속된 말로 ‘내리 갈굼’이 일어난다는 문제점도 있다. 마감에 시달리는 수동적인 구조다. 김 부회장은 이걸 싹 없앤 것이다. 영업현장은 딱 본부만 남는다”고 말했다.

◇ “시간은 금”… 실용적인 기업문화 조성

김 부회장의 효율성은 기업문화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우선 문서작성을 대폭 간소화했다. 그 일례로 사내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했다. 문서에 과도한 시간을 들이지 말라는 취지다. 문서 대신 구두나 메일 보고도 가능해졌다. 서면 결재를 금지 하고 전자 결재를 전면 시행했다. 결재 라인도 3단계로 단순화했다.

박장수 메리츠화재 인사총무 팀장은 “예전에는 보고서 쓰는 게 일이었다. 분량이 많아야 잘 쓴 보고서라는 분위기였다. 간단한 보고서도 수십 페이지가 넘었다. 지금은 기본 보고서의 경우 많이 써야 1~2페이지다. 어쩔 땐 손으로 작성하기도 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 보고서에 할애하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엔 의사결정을 하려면 한참 걸렸다. 지금은 부회장님을 포함한 의사결정자들이 한 번에 모여 논의를 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결재 라인도 3단계 이상을 넘어가면 안 된다. 기존에는 실무자·차장·부서장·임원 순으로 결재가 올라갔다. 허례허식이 없어져 대응이 빨라지고 유연한 전략을 많이 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회의는 ‘짧게’… 근무시간·복장은 ‘자유롭게’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회의문화도 없어졌으며, 회의 시간도 30분으로 제한됐다. 30분 간의 회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회의실 탁자에는 알람시계가 비치된다. 오후 6시 30분이면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OFF제도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되기 전인 2015년부터 시행해왔다. 소통과 업무효율 개선을 위해 복장도 자율화했다.

탄력근무제 시스템도 도입했다. 월간 총 근무시간(136~176시간) 내에서 자기결정권에 따라 근무가 가능한 것이다. 불가피한 야근 시 다음날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해 근무시간 조정이 가능해졌다.

박 팀장은 “김 부회장님은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신다는 점이 타 CEO들과 다르다”며 “통상 기업문화 실천 사항 등은 말단 조직의 제안으로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는 구조로 돼있는데, 김 부회장님은 아이디어도 직접 내시고 기업 문화가 잘 안착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액션을 지속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쿠르팅에서도 전문가 영입에 적극적이다. 효율성을 위해 업권을 가리지 않고 실력 있는 자들을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시키는 것이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임직원 모두가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이 김 부회장님의 희망사항”이라며 “순환보직도 요새는 거의 없다. 순환보직을 하는 순간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외부 전문가들도 많이 영입한다. 자산운용, 손해율관리, 분석, 통계 등 해당 분야에서 실력있는 인재를 아낌없이 영입한다”고 말했다.

◇ “자율성”… 사업가형 지점장 제도에 따른 책임주의

‘자율성’ 역시 김 부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전략이다. 김 부회장은 2016년 7월 전국 221개 점포를 본사 직속의 102개 초대형 점포로 통합하는 동시에 사업가형 지점장 제도를 시행했다.

사업가형 지점장은 정규직인 보험영업 지점장을 계약직인 본부장으로 변경하면서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개개인에게 자율성을 보장하고 스스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실적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율적이면서도 책임이 강화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사업가형 지점장제도는 첫 시행할 때 전환률이 60%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00%다. 자율전환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은 정규직 지점장보다 사업가형 지점장의 이점이 더 많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득차가 크다. 실적에 따라 월급을 받다 보니 직급에 따라 월급을 받을 때보다 경우에 따라 어마어마한 금액을 손에 쥘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 있는 임직원의 월평균 소득은 2000~3000만원에 달한다. 못하면 적게 받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직급에 따라 받는 월급 보다 사업가형 지점장이 더 높게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작성계약 ‘줄고’… 계약유지율 ‘상승’

사업가형 지점장제도의 장점은 높은 성과급뿐만이 아니다. 주차별, 월별 목표를 없애고 일정 조건을 강요하는 성과형 수수료 대신 동일한 수수료를 지급해 작성계약의 유혹과 실적에 대한 압박을 없앴다.

그는 “2017년도에 TA수수료를 개편 했다. 기존 전속조직 수수료는 인보험 20만원(가정) 이상을 계약해야만 정상적인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계단식 구조였다. 그런데 17만원 밖에 못하면 그에 대한 수수료를 제대로 받는 게 아니다. 일정 구간을 맞춰야만 수수료가 제대로 지급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3만원은 작성계약을 한다. 수수료를 받기 위해 자신의 가족계약이나 피보험자의 대납을 해서라도 실적을 채운다. 지금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아직도 이런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수수료 체계는 작성계약을 유도하기가 너무 쉽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개편한 수수료 체계는 자기의 실적에 따라 지급률을 곱해서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설계됐다. 이게 흔히 말하는 메리츠화재의 1000% 수수료다. 가령 예전처럼 굳이 20만원을 안 맞추고 15만원만 계약해도 1000%의 수수료를 받으니 굳이 5만원 더하려고 작성계약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계약유지율도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메리츠화재의 장기보험은 업계 1위까지 넘볼 정도로 판매율이 급격하게 늘고 있음에도 높은 계약유지율을 보이고 있다. 메리츠화재의 올 상반기 13회차 장기보험 유지율은 82.6%다. 지난 2015년 75.5%, 2016년 80.5%, 2017년 83.2%, 2018년 80.2% 등 양호한 기록을 지속 유지 중이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들은 “이 모든 결과물은 치밀한 사전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효율과 자율을 앞세운 김 부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메리츠화재의 도약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처음엔 조직개편 등 추진력이 강한 김 부회장을 무서워하는 직원들도 많았다”며 “지금은 내부적으로 보상과 근무환경이 좋아지고 있음은 물론 대형사들과 견줄 정도로 급성장하는 회사의 모습을 보며 김 부회장에 대한 지지도 역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보험업계 “이렇게 발전할 줄은

업계도 메리츠화재의 실험적인 전략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과감한 도전에 처음엔 실패할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했으나 메리츠화재가 트렌드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반전된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메리츠화재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회사의 규모가 아직 대형사만큼 크지 않아 가능했던 전략일 수도 있지만 업계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 역시 “확실히 메리츠화재는 타 보험사들보다 빠른 의사 결정 등 추진력이 강한 것 같다”며 “업계에서는 메리츠화재의 초창기 여러 실험적인 전략들에 대한 우려가 컸었다. 모든 우려가 해소된 건 아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메리츠화재의 성과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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