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가박스가 국내 멀티플렉스 최초로 자사 극장에서 상영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킹:헨리5세>. 출처= 메가박스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장기 관점에서 오프라인 영화관의 가장 큰 위협요소인 OTT(Over The Top·온라인 영상 서비스)와 멀티플렉스가 손을 잡았다. 

멀티플렉스 메가박스는 글로벌 OTT 기업 넷플릭스가 만든 작품들의 극장 상영을 결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를 두고 콘텐츠 유통업계에서는 철벽과 같았던 넷플릭스의 원칙에도 변화일종의 유연성이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되돌아보는 ‘옥자’ 상영 논란    

넷플릭스가 보여준 OTT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오리지널 콘텐츠’다. OTT들은 자사 플랫폼의 유료 서비스 가입자들만이 관람할 수 있는 다수의 자체 제작 영상 콘텐츠(혹은 단독 판권)들을 보유함으로 수많은 이용자들을 PC와 모바일 화면으로 불러들였다. 

넷플릭스의 성장을 신호탄으로 대형 콘텐츠 기업들 사이에서 OTT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는 곧 영상 콘텐츠의 품질 경쟁으로 이어졌다. 특히 넷플릭스는 본가인 미국 외 콘텐츠 시장에 대한 원활한 진출을 위해 많은 자본을 들여 극장용 영화와 버금가는 품질의 ‘영화’들을 만들었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유통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문제는 이 영화들이 넷플릭스의 메인 유통 플랫폼인 온라인을 벗어나고자 하면서 시작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2017년 넷플릭스가 선보인 영화 <옥자>다.

▲ 넷플릭스와 극장간의 극명한 입장 차이가 드러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 출처= 네이버 영화

당시 넷플릭스는 <옥자>의 상영에 대해 “오프라인 극장 개봉과 온라인 콘텐츠 스트리밍은 반드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원칙은 전 세계 극장사업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심지어 <옥자>가 경쟁부문에 초청된 제 70회 칸 영화제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는 프랑스 영화 단체들의 압력으로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옥자>의 화면이 갑자기꺼지면서 상영이 잠시 중단되는 사건도 벌어진다. 논란에 대해 칸 영화제 측은 공식 입장에서 “극장 상영이 우선되지 않는 영화들은 칸의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면서 다분히 넷플릭스를 겨냥한 발언을 한다. 

같은 논란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졌다. 극장 상영을 우선하지 않는 <옥자>에 대해 멀티플렉스 3사(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상영 보이콧을 선언했고, 결국 <옥자>는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전국 50여개 극장에서만 상영됐다. 당시의 미디어들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콘텐츠 유통 플랫폼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간극의 이유 ‘홀드 백’  

넷플릭스의 팬덤에 가까운 이용자들의 시선에서는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이 나쁘게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영화 배급의 체계를 살펴보면 이제까지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상영을 거부해온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국내 극장에서 개봉되는 모든 영화들은 극장을 통해 최초로 공개되며 상영이 완전히 종료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VOD(Video On Demand), IPTV, 온라인 스트리밍, DVD 등으로 콘텐츠가 유통되는 일종의 ‘절차’를 따르고 있다. 여기에서 작품의 상영 종료 후 극장이 아닌 다른 플랫폼으로 유통되는 데 필요한 일정 기간을 업계에서는 ‘홀드 백(Hold Back)’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영화를 개봉하는 모든 국내외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들은 이 ‘홀드 백’을 감안해 상영 일정과 기간을 정한다. 통상 홀드백은 상영 종료 후 최소 3주에서 작품의 흥행 정도에 따라 길게는 수개월 정도 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홀드 백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전 세계의 극장 사업자들이 콘텐츠 유통을 원활하게하기 위해 지키고 있는 규칙이다. 

넷플릭스가 강조하는 극장과 온라인 ‘동시공개’의 문제는 홀드 백이 협의되지 않은 넷플릭스의 콘텐츠의 공개 일정에 극장들이 상영 일정을 맞춰야 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극장은 넷플릭스 작품들의 상영을 위해 급하게 상영관을 확보하게 되고 사전협의를 통해 미리 극장에 상영관을 확보해 놓은 다른 영화들과 극장이 맺은 계약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넷플릭스가 변하고 있다  

메가박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킹: 헨리 5세>를 넷플릭스 최초 공개일인 11월 1일보다 9일 빠른 10월 23일부터 자사의 일부 극장에 편성해 작품을 상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킹: 헨리 5세> 외에도 메가박스는 <아이리시맨>(11월 20일), <결혼 이야기>(11월 27일), <두 교황>(12월 11일)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의 최초 공개일 직전 주의 수요일로 개봉일을 맞췄다. 

이는 과거 넷플릭스가 <옥자>로 강하게 고수했던 원칙을 고려하면 콘텐츠 유통에 대한 넷플릭스의 관점도 점점 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제 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2018)의 경우 멀티플렉스가 아닌 국내 일반 극장에서 넷플릭스 최초공개일보다 이틀 앞서 개봉되기도 했다. 

▲ 출처= 넷플릭스

영화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일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에 대해 넷플릭스 최초 공개일보다 약 2주에서 3주 정도 빠른 시점에 극장에서 개봉되는 경우들도 있었다”면서 “물론 아직까지도 극장 상영 일정을 정하는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홀드 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일련의 행보에서 분명 이전과 다른 유연함을 추구하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극장업계 관계자는 “멀티플렉스 대 OTT라는 일종의 갈등 구도는 콘텐츠 유통 산업의 발전 측면에서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 없는 관점”이라면서 “유연한 협의는 양 측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넷플릭스 등 OTT들은 대형 극장체인들을 통한 자사 오리지널 콘텐츠의 마케팅으로 자사 콘텐츠를 더 확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멀티플렉스들은 상영작품들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의 멀티플렉스 상영이 OTT와 멀티플렉스가 동등한 지위를 가진 콘텐츠 유통의 주체로서 서로가 속한 시장 상황을 이해하고 발전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변화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