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지난주부터 온갖 소문이 무성했던 이마트 임원인사가 전격 단행됐다. 통상 신세계그룹이 인사를 단행해 온 매년 12월보다 한 달 반가량 빠른 시기인 10월 21일에 단행되며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룹은 이번 인사로 ㈜이마트의 신임 대표에 신세계·이마트와 관련된 이력이 전혀 없는 최초의 경영자인 강희석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동시에 할인점 이마트와 SSG를 포함한 주요 조직들의 구조를 개편했다.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신세계의 징벌적 인사?
지난주 이마트에서만 30년 이상 일해 온 이갑수 전 대표이사의 퇴임 소식이 전해진 것에 대한 업계와 많은 미디어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압축됐다. 첫 번째는 지난 2분기 영업 손실 299억원을 기록하며 드러난 이마트의 부진한 실적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는 일종의 징벌적 인사라는 해석이다.
두 번째는 이커머스 확장을 위한 온라인 서비스 부문 전문가의 대표이사 영입으로 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에 업계는 이갑수 대표를 이을 이마트의 차기 사장의 유력한 후보로 레킷벤키저 코리아, 테스코 말레이시아를 거쳐 현재는 구글코리아의 대표로 재임 중인 존 리(John Lee) 사장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징벌적 인사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충분하다.
2010년 소셜커머스 업체들의 등장을 기점으로 국내 유통업계는 온라인 기반의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완전히 ‘판’이 변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통기업들 중 하나인 이마트가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올해에 들어서야 이커머스 전문 법인을 출범하고 해당 사업의 확장을 추구하는 것은 한참 늦은 시작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갑수 대표가 업계에 일어나는 변화에 빨리 대응했다면, 이커머스 확장에 따른 비용 또 그로 인한 영업손실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그간의 정황, 실제 임원인사의 결과로 볼 때 빗나간 예상임이 드러났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햇수로 약 5년동안 이마트의 지속 성장을 이끌어 온 것에는 이갑수 대표의 역할이 컸다. 이 대표이 부임 첫해인 2014년 이마트의 연간 매출은 약 13조1536억원에서 매년 늘어나 2018년에는 17조491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18년 한 해를 제외하면 5000억원 이하로 떨어진 일도 없었다. 이커머스로 유통업계의 중심이 옮겨간 가운데서도, 경기 침체로 인한 국내 소비 위축이라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에게 한없이 불리한 상황 가운데서도 지속 성장을 일궈낸 것은 누가 뭐래도 이 대표가 이끈 성과다. 여기에 정용진 부회장으로부터 이갑수 대표가 그간 쌓아 온 신뢰를 감안하면 적어도 그는 연간도 아니고 단 한 분기의 실적 부진으로 내쳐질 사람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이갑수 대표가 설사 이커머스 확장을 미리 준비했다고 할지라도 지난 2분기 이마트가 영업손실을 기록하지 않았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를 모두 이 대표의 책임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의 주도권을 이끄는 업계의 뉴스메이커 쿠팡을 예로 들자면, 2010년 소셜커머스 업체로 시작한 쿠팡은 창업 초기에 매년 영업이익을 기록하던 업체다. 그러나 쿠팡의 경영이 이마트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유통기업들의 롤 모델인 ‘아마존’의 방식을 따라가면서부터 현재까지 쿠팡은 매년 어마어마한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쿠팡은 처음으로 영업손실 1조원대(1조970억원)를 기록했다. 햇수로 이커머스로 약 10년을 버텨 온 쿠팡조차도 온라인 플랫폼과 물류-운송 인프라를 잇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오프라인이 메인인 이마트가 이와 극적으로 다른 상황을 연출했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더 현실적으로 국내 이커머스 성장의 기점인 2010년, 이마트의 신세계그룹 내 입지는 지금과매우 달랐다. 현재는 ㈜신세계와 그룹의 사업을 양분할 정도의 큰 법인이지만, 당시의 이마트는 ㈜신세계에 속한 수많은 사업부문들 중 하나였다. 아울러 당시는 신세계그룹이 이커머스의 성장은 고사하고 그룹 내에서 이마트의 성장에도 많은 의문을 가지던 때(물론 2011년에 법인분할이 되면서 바뀌기는 했다)였다.
“오프라인, 같이 간다”
이마트의 인사에 대해 업계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온라인 사업부문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 인력·조직 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구글코리아 존 리 사장이 이마트의 차기 사장으로 거론된 것도 이마트가 이커머스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이라는 업계의 ‘짐작’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정식 인사발표에서 이마트의 신임 사장으로 선임된 강희석 사장의 이력을 보면 그는 온라인 전문가라기보다는 식품의 유통과 경영컨설팅으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그는 1994년부터 농림수산부에서 식량정책·농수산물유통기획을 담당했다. 2005년에는 글로벌 경영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에 입사해 소비재/유통부문 파트너로 일했다.
이마트에 적용될 수 있는 그의 역량은 온-오프라인 등 유통산업의 경계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소비재인 식품의 유통과 관련한 국가기관에서 일한 경력 그리고 유통업 경영 컨설팅 경험 등이다. 별도로 이커머스에 특화된 역량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신세계그룹이 이번 인사로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성은 조직개편으로도 드러난다. 공식 입장에서 신세계그룹은 “㈜이마트는 상품 전문성 강화를 위해 기존 상품본부를 그로서리 본부와 비식품 본부로 이원화하는 한편, 신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선식품담당 역시 신선1담당과 신선2담당으로 재편했다”면서 “영업력 극대화를 위해 고객서비스본부를 판매본부로 변경해 조직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한편 효율적 업무 추진을 위해 4개의 판매담당을 신설했으며 이커머스 법인 ㈜SSG.COM은 상품과 플랫폼 조직을 보강해 전문성을 강화했다”라고 밝혔다.
이를 보면 이마트가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어느 한 쪽의 역량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키려 했다기보다는 유통업 자체의 기본 역량인 상품의 구성과 구매력 그리고 조직운영 효율성에 대한 변화를 추구했음이 잘 드러난다.
온라인이 아무리 강세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이마트의 주력사업은 오프라인 유통이다. 주력 사업인 오프라인이 버텨주지 않으면 현재 추진 중인 이커머스의 확장도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올해 신년사에서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의 오프라인 유통은 경쟁사와 비교되는 초격차 가격전략으로 승부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올해 경영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번 인사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온라인의 편의성과 할인 전략에 맞설 수 있는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오프라인에도 갖추고, 여기에 온라인 플랫폼과 물류 경쟁력을 더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마트의 행보에서는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오프라인 유통 경쟁력은 유지한 상태에서 ‘제트닷컴’ 인수로 온라인 유통의 경쟁력을 더해 하나의 성공사례를 만든 미국의 글로벌 유통 기업 월마트(Wallmart)의 궤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유통업계 한 전문가는 “이마트의 인사가 앞당겨진 것은, 신세계그룹 내부적으로 빠른 조직개편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것이 반영된 같다”면서 “신임 사장의 이력과 이번 이마트의 조직개편 내용을 보면 온-오프라을 아우르는 유통의 근본 역량인 상품 경쟁력 강화에 대한 의도가 잘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의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로 (모두가 기대한) 드라마틱한 변화 대신 유통의 기본이 되는 경쟁력 강화를 선택했다. 월마트의 궤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이마트의 전략은 과연 어떤 성과로 당위성을 증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