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있는 마블의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에는 소코비아 협정을 둘러싸고 어벤져스의 영웅들이 찬반으로 대립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영웅들의 힘을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협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는 찬성을, 캡틴 아메리카는 반대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으나 자기들의 힘이 엄청난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공포와 직면한 아이언맨과, 체제에 순응하고 국가의 적을 무찔러온 고지식한 영웅 캡틴 아메리카가 국가의 강제적 협정에 반대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에 등장하는 어벤져스와 소코비아 협정은 허구의 창작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소코비아 협정 만큼이나 흥미롭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페이스북 리브라 이야기다.

▲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의 포스터. 출처=갈무리

쏟아지는 견제
2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프랑스 파리 총회를 열어 암호화폐인 스테이블 코인도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암호화폐가 출처불명의 자금을 세탁하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온 가운데 FATA가 비슷한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국내에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 전재수, 김병욱 의원과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을 발의한 상태기 때문이다.

리브라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는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FATA의 권고안 및 우려가 리브라의 약점을 정조준하고 있는데다, 이러한 우려를 완벽하게 걷어낼 수 있는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역시 견제의 강도다. 현재 리브라는 각 국 정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표류하고 있으며 이번 FATA의 압박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다.

페이스북 리브라는 초반 등장할 당시만 해도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한 가능성 타진이 시작되며 블록체인, 나아가 디앱 생태계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 페이스북이 중심을 잡고 관련 업계를 강하게 선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6월 18일 리브라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암호화폐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별도의 지갑이 없어도 디지털 자산을 각 개인이 편리하고 빠르게 거래할 수 있는 탈 중앙형 플랫폼을 지향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지난해 12월 자회사 왓츠앱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가능성을 조율한 상태에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페이팔 회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마커스를 영입하는 등 의미있는 행보를 보인 바 있다. 리브라의 출시 시기는 2020년이며, 파트너들은 지난 14일 스위스에서 리브라 프로젝트 협정식까지 열었다.

리브라가 힘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으나, 문제는 제도권의 반격이 매섭다는 점이다. FATA의 주장은 자금세탁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현실경제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타당한 지적이지만, 각 국의 중앙은행 및 정치인들의 공격은 리브라의 본질을 두고 '의미없고,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해 사안의 중대성이 심각하다.

실제로 파월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가 자금세탁의 원흉이 될 수 있다며 “상용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금세탁은 물론 개인정보보호 및 소비자 보호 등에 있어 문제가 있다”면서 “페이스북이 부작용을 차단할 수 없다면 규제해야 한다”고 압박 수위를 올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가능성에 부정적인 트윗을 남겼다. 그는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면서 “규제없는 암호화폐는 불법적인 활동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도 견제하며 "신뢰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암호화폐가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없다고 공언했으며 심지어 프랑스와 독일은 최근 유럽에서 리브라의 거래를 원천차단하는 방향에 합의했다.

높아지는 견제와 압박에 리브라 동맹군도 흔들리고 있다. 페이팔을 중심으로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결제 인프라를 책임질 주요 동맹군이 속속 발을 뺐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결제 회사들의 이탈로 리브라는 암호화폐와 현실경제의 연결고리를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오는 중이다.

▲ 리브라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리브라

제도권의 공포
미국과 유럽 각 국을 비롯해 중앙은행까지 리브라에 맹폭을 가하는 장면은, 비트코인이 쏘아올린 암호화폐 전반에 대한 제도권의 공포가 극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초 비트코인이 탄생하고 몇 차례 광풍을 거치며, 현재 암호화폐 업계는 소위 '긍정파'와 '부정파'로 나뉘어진 상태다. 긍정파는 암호화폐가 일반화폐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를 기반으로 블록체인 생태계가 만개할 것이라고 믿는다. 동시에 디앱 생태계가 발전해 토큰 이코노미의 시대가 열린다고 본다. 그러나 부정파는 암호화폐가 실체없는 디지털 신호에 불과하며 아무런 재화가치를 가지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만 여기까지는 제도권에서 우려할만한 일이 나타나지 않는다. 암호화폐의 미래를 순식간에 결정할 모멘텀이 없는데다, 그 시장 규모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가동하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페이스북은 왓츠앱 및 인스타그램 등 자회사를 모두 포함하면 무려 23억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리브라 프로젝트에는 우버와 소포티파이 등 21개 ICT 플랫폼 기업들이 합류한 상태다.

만약 작은 자전거 공유 플랫폼이 아니라 거대한 이용자를 이미 보유한 SNS 플랫폼이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해 이를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어떻게 될까. 이들은 토큰 이코노미를 가동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확보하고, 디지털 특유의 신속성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은 했으나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많은 디앱을 생성할 수 있다.

제도권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암호화폐 업계의 행보를 '찻잔 속 태풍'으로 여기며 간혹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긍정파'와 '부정파'의 대립을 마음 편하게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다.

제도권이 리브라의 비전을 두고 우려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시장 질서의 교란이다. FATA의 주장처럼 리브라가 자금세탁의 창구로 활용되며 소위 그림자 은행으로 변신할 경우 세계 통화질서는 무너지게 된다. 여기에 이용자 정보 유용 논란에 휘말린 페이스북이 민감한 화폐경제에 진출할 경우 세계 실물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통화의 사유화(私有化)'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깊숙한 이면에는 '화폐권력의 상실'에 대한 공포가 더 크다. 리브라가 시장에 안착해 초연결 시대의 기축통화로 부상하면 기존 달러 등 실물경제의 기축통화는 그 근본부터 휘청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리브라가 2020년 등장해도 당장 기축통화의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되지만, 만일의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23억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통해 기축통화의 가능성을 노리는 것은 제도권 입장에서 공포 그 자체다. 각 국 및 중앙은행이 리브라를 두고 저주에 가까운 압박을 이어가는 이유다.

리브라의 소코비아 협정 필요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각 국이 페이스북 리브라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을 시도하면서도 국가가 만들어내는 자체적인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달러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위안화를 지속적으로 키워온 상태에서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중앙은행 차원의 암호화폐 발행을 시도하고 있다. '탈'달러의 기조는 따르지만, '탈'기존화폐질서에는 관심이 없다는 평가다. 또 화웨이 창업주 런정페이 회장은 7월 26일 “중국이 블록체인 기반의 리브라와 동등한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 암호화폐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도 비슷한 분위기다. 런 창업주의 발언이 나온 후 미 상원 은행위원회가 이례적으로 "미국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에서 중국보다 선두에 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장면이 중요하다. 현재 미국 정부 및 금융 부처는 암호화폐와 관련된 다양한 파생상품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기도 하다.

결국 각 국 정부는 리브라 및 민간 중심의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압박하면서 자체적인, 기존 통화질서의 연장선에서 암호화폐 가능성을 꾸준히 타진하고 있는 셈이다. 마블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의 소코비아 협정을 두고 벌어지는 충돌과 비슷하다.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 힘(초능력/암호화폐)의 주인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영화에서는 협정을 두고 어벤져스가 양쪽으로 갈라져 싸웠지만, 현실의 페이스북은 일단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다. 데이비드 마커스 페이스북 리브라 프로젝트 총괄은 최근 외신을 통해 "처음 계획에서 변동이 있을 수 있다"면서 "통화바스켓 대신 단일 법정화폐와 리브라의 가치를 연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화 바스켓에서 중국 위안화를 배제한 상태에서 아예 특정 단일화폐만 연동해 현실경제와의 접점을 높이는 방식으로 보이며, 이는 최대한의 유연함으로 불확실성을 줄여 실물경제에 안착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조만간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업계에서는 페이스북의 설득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