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방학 기간만 빼고 매주 한번 씩 저녁에 만나는 스터디모임이 있습니다. 연령대가 사십대 중반부터 육십 대 중반까지의 남자들 십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달여 전 모임의 풍경입니다. 본격 모임 시작 전에 가벼운 환담의 자리였지요.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오십대 초반 멤버가 딸이 강남에서 술 마시고 밤 12시에 데리러 와달라고 했던 얘기를 하소연 삼아 했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에너지 넘치는 사십대 후반의 멤버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선배. 딸과의 관계가 좋다는 것을 자랑하는 거죠? 나는 아들애가 호주로 공부하러 갔는데, 하도 연락이 없어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알고 지냅니다. 속 터지죠.”

그 얘기에 거의 모든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자기들도 딸보다는 아들과 힘들다고 위로를 전합니다. 한 오십대 멤버는 정보도 나누고, 화합도 다질 겸 가족 단톡방을 개설해 놓았는데 대학생 아들이 들어오지 않아 좀 들어오라면 “져녁에 볼건 데 무얼 그런걸?”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아들은 매일 매순간 핸드폰에 코 박고 지낸다며 답답해합니다.

이런 좌중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 은행 다니는 사십대 멤버에게 그쪽 상황은 어떤가하고 시선이 쏠렸습니다. 쭈빗 거리다가 말했습니다. “금년에 지방의대로 진학한 아들에게 내려가기 전에 바쁘더라도 신앙동아리는 반드시 들으라고 당부했는데, 이 녀석이 그 동아리 포함 여섯 개 동아리를 들어 너무 바쁘다고 투덜거리더라고요”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지며, 그는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다들 부자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그만이 결이 다른 얘기를 한 거죠. 결국 그날 모임에서 아버지가 모범을 보여야 자식이 따라오는 것이라는 아주 평범한 결론에 다들 무참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 밤 돌아오는 발길에 우리들이 나누었던 얘기가 계속 밟혔습니다. 그러고 며칠 전 방송에서 본 동물원을 대상으로 다큐 영화를 만든 감독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동물,원’이란 영화인데, 사육사와 동물의 모습을 다루며, 동물원의 양면을 잘 보여주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감독은 조류독감이 심해 일시 폐쇄되었던 청주 동물원에서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폐장 기간에 평소 보다 휠씬 많은 새 생명이 태어났다고 하며, 동물원에 사람이 없으면 동물들이 굉장히 편해하더라는 얘기였습니다.

그 말에 순간 움찔했습니다. 가족에게, 특히 아들에게 아버지의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간섭 내지 잔소리를 많이 해대서 아들이 편해하지 않았으리라 거였죠. 그 자국으로 성장하는데도 지장이 있었을까..

다음 모임 가서는 내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중학교 저학년 때 아들이 내게 팔씨름 도전을 해왔습니다. 아내가 좀 져주라 하는데도, 내가 기를 쓰고 이겼는데, 그 이후 더 이상 팔씨름 도전은 없었습니다. 그걸 많이 후회한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지금사 아들과는 친구 같이 지냈어야 함을 많이 깨닫는다고 말이죠.

그런 어렴풋한 깨달음이 온 이후, 늦었지만 아들에게 정식으로 요청해서 아들이 대학 입학하기 전에, 군대 가기 전에,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등 주요 관문마다 둘만의 여행을 하고 있다고도 얘기해야겠습니다. 결국 아들과는 친구 같이 되는 게 제일의 방법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무엇보다 나도 아들과는 어렵다는 얘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