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게임 개발자의 근로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업계의 화두다. 일부 개발자들은 고용불안, 과도한 업무강도 등을 문제로 지적한다. 그 연장선으로 국내 대형 게임사인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서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노조가 설립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발자들의 근로 환경 문제는 단지 높은 업무 강도가 아닌, 게임 산업 환경 변화에 따른 업무 환경 변화와 열정의 감소 등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주장이 이목을 끈다. 

지난 18일 열린 제5회 게임문화포럼에선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교수가 진행을 맡았고, 이상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사, 진예원 라이엇게임즈 e스포츠 브로드캐스트 글로벌 PD, 류태경 게임물 전문지도사가 패널로 참여했다. 

▲ 18일 제5회 게임문화포럼에서 토론이 열리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이상규 박사는 게임 개발자의 이상적 모습에 대해 언급하며 운을 띄웠다. 이 박사는 “최근 인공지능, 빅데이터, 5G 등 최신기술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 기술을 실험하고 있는 최전선에 있는 대표적 사람들이 게임 생산자들”이라면서 “게임 개발은 인문, 사회, 경영학, 공학, 디자인, 예술, 심리학 등 여러 지식 필요한 융복합적 분야”라고 말했다. 때문에 개발자의 이미지로 능동적, 자율적, 창의적인 예술가와 모험 정신, 즐거움, 자부심 등이 떠오른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시간이 갈수록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 박사는 “2019년 기준으로 게임 산업 매출이 14조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5조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10년 사이 3배가 성장했다”면서도 “그러나 개발자들은 크런치모드 등 초과근무 등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00의 등대’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유행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진예원 PD는 개발자 근로 환경 문제에 대해 업무 강도보다는 일에서 느끼는 재미에 집중했다. 진 PD는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인지 올해 10년인데, PC MMORPG를 개발한 처음 3년과 e스포츠 PD가된 올해가 가장 직업적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두 시기는 모두 한 명의 게이머로서 취미처럼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진 PD는 지난 2015년 즈음 게임의 주력 플랫폼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오며 개발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고 여러 대내외 환경이 더해져 게임 개발자의 창의적인 이미지가 퇴색되어 갔다고 언급했다. 진 PD는 “당시 주력 플랫폼이 모바일로 변화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게임을 찍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토로했다. 3~4년간 긴 호흡으로 게임을 만들다가 한순간 6개월의 단기 프로젝트를 맡는 경우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진PD는 “게임 업계에 노조가 생겼고, 근로시간 제한 등의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오히려 근로 시간에 대한 통제와 감시의 심화 문제도 나온다”면서 “예술가로서의 생산자의 이미지가 감춰지고 기업에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로 게임 생산자가 남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게임 업계 노조 설립을 생산자들의 정체성이 변화한 상징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본래 게임 개발 시장은 프리랜서에 가까운 유연한 노동이 특징이었다”면서 “자주 이직하며 몸값을 올리고 커리어를 쌓고 기회가 되면 창업을 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 박사는 점점 개발자들의 노동자 정체성이 강화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 박사는 국내 개발자가 힘들어진 이유로 획일화된 게임 시장 환경을 꼽았다. 이 박사는 “기술이 발달하며 시장엔 많은 게임이 나오게 됐고 경쟁은 더욱 격화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자본력에 따른 양극화가 심해지고 업계 허리 격인 중견기업이 힘을 잃었다는 설명이다. 이 박사는 “게임이 창의성보다는 제작 공식이 만들어져 획일적인 게임 만들기가 되어버렸다”면서 “빨리 만들어야 하고, 업데이트를 자주해야 하고, 수익 모델이 안정되어야 하는 등 요소들이 게임 생산자의 불확실성을 악화시켰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그렇지만 마냥 과거를 그리워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이정엽 교수는 “이제 와서 PC온라인 게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 같다”면서 “개발자도 소속된 기업에 따라 환경이 다른데 어떤 해결방식을 가져야할까”고 반문했다. 

이 박사는 “개발자들이 경험하는 불완전은 단지 높은임금과 고용안정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면서 “불완전 상황은 직군의 차이, 경력, 회사규모 등 각기 다른 상황에서 고려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박사는 “게임 생태계의 다양성을 회복하고 편중화, 획일화 구조를 탈피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일을 통해 즐거음을 추구하고 개성을 발휘하는 문화 관행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사적 흐름이라고 본다. 게임의 질적 향상과 노동환경 개선의 지향점을 잡아야한다”고 덧붙였다. 

진 PD는 “앞으로도 기술 발전 속도는 계속 빨라질 것이고 게임 산업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면서 “기업과 노동자의 대립보다는 게임 생산이라는 노동의 특성과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 이해로 확장됐으면 좋겠다. 그런 이해가 기업의 행방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진 PD는 “게임 업계에 들어온 후배들도 회사의 종속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그 회사가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