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 미래경제팀 황대영 기자

[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산업·재계에서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할 당시와 비슷한 진통을 겪은 뒤 보편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경제 성장률 침체’와 ‘시대의 플랫폼을 읽지 못하는 정책’이라는 비관적인 우려의 소리가 더욱 분출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은 24시간, 365일 연중무휴 서비스가 새로운 플랫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24시간 영업이 정착된 편의점, PC방, 패스트푸드 식당부터 새벽배송, 심야배달에 이르기까지 모바일 디바이스에 닿은 손끝 하나로 불야성(不夜城)을 이뤄내고 있다. 또 24시간 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우리의 생활은 심야에도 꺼지지 않고 있으며, 혁신적인 새로운 산업이 하루가 멀다하고 신생하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에 적응한 스타트업은 시총 1조원을 넘어서는 유니콘 기업이 되기도, 적응하지 못한 기존 대기업은 도태되기도 한다. 24시간 서비스가 주요한 상품인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은 더욱 치열하다. 그러한 혁신의 시계가 과거 연(年) 단위에서 월(月), 주(週), 일(日), 시(時), 분(分), 초(秒) 단위로 짧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역행하고 있다. ‘주 52시간’, ‘최저시급 1만원’이라는 상징적인 단어에 집착하는 정책은 기업들의 혁신 가능성을 옥죄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 수출규제 등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위기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틀에 박힌 정책만을 고수하고 있다. 오죽하면 경제를 두고 ‘버린 자식’이라는 재계의 탄식까지 나왔을까.

과거 불법적인 근로를 강요한 기업들은 지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규제나 다름없는 정책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시간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되는 제조업에서나 통하는 정책이다. 고도화된 ICT 산업과 R&D 분야에서는 근무 시간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유기적인 창의 산업에 시간이라는 족쇄만 채웠을 뿐이다. 최근 위정자들이 정책의 수정을 언급하는 것만 보더라도 산업·재계와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최근 만난 한 ICT 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피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52시간 근무를 채운 뒤 퇴근 후 별도의 공간에서 다시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근무 시간에는 포함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완료하면 별도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형식이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승자독식인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 ‘워크&라이프 밸런스’ 등 근로자 삶의 질을 제고하는 정책의 취지는 좋다. 하지만 24시간, 365일 플랫폼 시대에 국가·기업 경쟁력 약화를 부를 수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과거 1970~80년대 통행금지 시각을 선포하고 모두에게 강요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