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이 전 세계 제약업계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브라질 보건부 전경. 출처=SK플라즈마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삼바의 나라' 브라질이 전 세계 제약업계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인구 2억명에 달하는 거대한 내수시장과 남미대륙의 47%를 차지하는 넓은 국토면적을 바탕으로 매년 의약품 시장 규모를 끌어올리고 있다. 수년째 이어진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의약품 시장은 2021년까지 연평균 3.5% 이상 성장하며 세계 5위 규모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기회의 땅 출현에 국내외 제약사들의 행보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일찌감치 브라질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한 글로벌 제약사들은 브라질에 본부를 두고 중남미 시장 진출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SK플라즈마 등 토종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최근 주력 제품을 앞세워 브라질 시장 공략을 위한 포석을 마련했다.

중남미 경제의 중추적 역할

브라질은 남미 지역 GDP(국내총생산)의 약 40%를 차지하는 경제 대국이다. 최근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지카 바이러스, 뎅기열, 황열병 등 각종 전염병 발생으로 의약품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브라질은 혁신 의약품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아 신약 연구개발(R&D)에 적극적인 글로벌 제약사에게 새로운 성장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부족한 R&D 투자와 제네릭 중심의 산업구조로 인해 브라질은 혁신 의약품 개발 및 공급을 해외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브라질의 의약품 수입은 약 51억 4천만달러로 수출보다 4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수입 규모는 2021년까지 연평균 10.9%씩 성장해 86억5000만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2-2026 브라질 의약품 시장 매출. 출처=Febrafarma, Grupemef, BMI

브라질이 가진 지리적 이점도 글로벌 제약사의 발길을 유혹하기 충분하다. 브라질은 남미 10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다른 국가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상파울루에 2개의 공장을 운영 중인 사노피는 현지에서 생산된 의약품을 브라질을 포함한 중남미 최대 경제통합체인 남미공동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사노피뿐만 아니라 노바티스, 바이엘 등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브라질에 진출해 영향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반면 브라질은 성장 가능성 높은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각종 장애물에 가로막혀 진입이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면 현지 기업에 편향된 정부 정책과 투자 유치를 망설이게 하는 가혹한 과세체계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현지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도 부담이다. 현재 브라질에는 550개가 넘는 제약사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 중 60% 이상이 현지 기업일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시장 진출이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거론되고 있다. 브라질은 의약품 인허가 장벽이 높기 때문에 유통망을 보유한 현지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사업자등록증을 보유한 현지 업체가 아니면 브라질 위생감시국(ANVISA)으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브라질 기업과 협력을 통해 ANVISA 인증 획득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현지기업과 협력 강화 필요

민관합작투자의 일종인 PDP 프로그램도 브라질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2009년부터 해외 의약품 수입 비중을 낮추고 자국 기업의 생산능력을 키우기 위해 PDP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가 브라질 연구기관 및 제약사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일정기간 정부조달 물량을 할당받는 제도다. 

현재 50여 종이 넘는 의약품이 PDP 대상 품목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 제약사도 브라질 국영 연구소와 함께 PDP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브렌시스`의 생산기술을 전수하는 조건으로 브라질 제약사인 '바이오노비스', 연구기관인 '바이오맹귀노스'와 3자 간 파트너십을 맺었다. 해당 계약에 따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초 10년 동안 브라질에 브렌시스를 공급하고 이후 10년간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로열티로 수취할 예정이다.

▲對브라질 의약품 수출 현황. 출처=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KHIDI

공공 입찰을 통한 시장 진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브라질은 가격경쟁력과 품질이 보증된 의약품을 공급받기 위해 제약사들에게 공공 입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입찰에 성공한다면 의약품 구매 비중이 높은 브라질 정부를 상대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브라질은 정부 자체가 주요 의약품 생산자이자 소비자다. 브라질 인구의 약 80%가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가공공의료보험(SUS)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부는 각종 치료제를 일괄 구입해 SUS를 통해 운영되는 보건소나 공공의료 시설에 공급하고 있다. 

혈액제제 전문기업 SK플라즈마가 최근 브라질 진출을 위해 공공 입찰에 참여했다. SK플라즈마는 브라질 보건부가 주관한 2020년 혈액제제 입찰에서 면역 글로불린 리브감마-에스앤주 공급자로 선정됐다. 혈액제제 시장 1위인 호주 CLS를 포함해 쟁쟁한 8개 경쟁사를 제치고 약 2천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수주했다. 이번 계약으로 SK플라즈마는 약 1조원 규모의 남미 혈액제제 시장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다.

앞서 녹십자, 대웅제약, 동아에스티, 알테오젠 등 다수의 토종 제약사들이 브라질 시장에 진출해 가능성을 타진했다. 아직 우리나라 의약품의 對브라질 수출액은 2억달러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매년 브라질 시장의 문을 두드리며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향후 더 많은 토종 제약사들이 공공입찰과 PDP 프로그램을 활용해 중남미 최대 시장인 브라질 공략에 한 발 더 다가설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