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캐주얼 브랜드 ‘빈폴(BEANPOLE)’이 론칭 30년 만에 한국적 클래식을 입고 재탄생한다. 빈폴은 브랜드 30주년을 맞아 지속가능 브랜드로 거듭나고자 상품은 물론 매장, 비주얼 등 브랜드 이미지를 완전히 탈바꿈하고 2020년 S/S 시즌부터 적용한다고 15일 밝혔다.

▲ 빈폴 30주년 '다시 쓰다' 프로젝트 화보.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리뉴얼 된 빈폴의 핵심은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정서와 문화, 철학 등 한국의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인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모토 아래 기존의 빈폴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한글로고와 자전거 심볼, 고유체크 패턴 등 한국적 클래식 디자인을 담아냈다. 이는 노후화된 빈폴의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해 젊은 층을 유입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근 밀레니얼 및 Z세대가 중요한 소비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빈폴도 시장 환경을 고려해 브랜드에 대한 신선함을 더하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 5월에는 브랜드 리뉴얼의 구원투수로 정구호 디자이너를 컨설팅 고문으로 영입한 바 있다. 빈폴은 정구호 고문과 함께 이번 리뉴얼을 통해 한국 전통 캐주얼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2023년까지 중국과 베트남은 물론 북미, 유럽까지 사업을 확대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 빈폴 한글 로고.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우선 빈폴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디자인적 포인트를 살려 ‘한글 로고’를 새롭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영어 간판은 내리고 한글 간판을 사용한다는 셈이다. 한글은 세대를 아우르는 힘과 매력을 지니고 있고, 근본이자 문화이고 정서인 부분을 감안해 디자인 포인트로 삼았다는 회사 측의 설명이다. 빈폴은 자음과 모음을 활용해 ‘빈폴 전용 서체’를 만들고 ‘ㅂ’, ‘ㅍ’ 등의 자음을 체크 패턴에 디자인해 빈폴만의 독창적인 체크 패턴을 창조했다. 이후 빈폴체를 직접 소비자들에게 공유해 누구나 사용해볼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 새롭게 탄생한 빈폴 로고 심볼.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또한 빈폴의 상징인 자전거 로고도 현대적인 재해석을 거쳐 변경됐다. 빈폴 기존 로고의 앞바퀴가 큰 자전거 ‘페니 파싱(Penny Farthing)’ 형태는 유지하면서 간결한 미학과 지속가능성을 내포해 바퀴살을 없앴다. 체격과 머리스타일, 자전거를 타는 각도 등 현대 디자인이 반영됐고, 여성과 어린이 로고까지 다양하게 가족의 형태로 탄생했다.

정구호 고문은 “심볼은 요즘 세대와 맞게 중절모에서 요즘 세대를 반영한 심볼인 캡모자로 변경했다”면서 “남자만 모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여자와 아동까지 만들면서 가족 단위의 심볼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 빈폴의 1960~1970년 근현대 한국 건축 특징을 살린 신개념 매장 전경.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빈폴의 파격적인 변화는 새로운 라인출시에도 녹아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할 글로벌 전용 상품 ‘팔구공삼일일(890311)’ 라인도 새롭게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빈폴의 브랜드 이미지는 적게는 10살에서 많게 15살까지도 젊어졌다는 업계의 시각이다. 빈폴의 노화를 줄이고 소위 말하는 온라인 세대에서도 소통을 활발히 하면서 핫한 브랜드도 거듭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893011 라인은 공장, 버스, 택시기사 등 유니폼과 럭비선수들이 입었던 운동복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적인 기본 베이스를 기반의 스트릿 스타일이 주된 콘셉트다. 그동안 기존의 빈폴 기성복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특징으로, 이는 크게 입는 것을 좋아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가격 또한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기존 라인보다 약 10~15% 저렴하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 빈폴의 1960~1970년 근현대 한국 건축 특징을 살린 신개념 매장 전경.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이러한 빈폴의 변화는 매장의 디자인과 제품의 특성에도 나타난다. 매장은 1960~1970년 근현대 한국 건축물의 특징을 살려 그 당시 가정집과 아파트 등 건축 양식을 모던하게 변화시켜 마루, 나무, 천장, 유리, 조명 등 한국적 헤리티지의 감성을 기반으로 빈폴만의 분위기로 새롭게 구성했다. 또 하나의 큰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필환경’도 제품에 접목시켰다. 버려지는 패트병이나 어망 등에서 나온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다운과 패딩 상품을 내년 1월에 새롭게 내놓을 예정이다.

빈폴은 브랜드 헤리티지와 히스토리를 존속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브랜드 아카이브를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플래그십 스토어도 계속해서 선보이면서 밀레니얼 및 Z세대 고객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향후 30년을 내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15일 일진전기 인천공장에서 빈폴 30주년 기념 리뉴얼 ”다시 쓰다(Rewrit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박남영 빈폴사업부장은 “빈폴의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면서 새롭고 의미 있는 브랜드의 재탄생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계획했다”면서 “기존 고객은 물론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밀레니얼 및 Z세대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한국적 독창성을 토대로 글로벌 사업 확장의 초석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브랜드 자체만을 변경한다고 해서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오랜 시간 빈폴은 기성층이 주된 소비층으로 이뤄져 있었고, 새로운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선보인 890311라인도 현재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무신사’나 ‘서울스토어’ 등과 디자인이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890311 라인 가격을 낮춘다 해도 편집숍에 입점 돼 있는 평균 가격과 큰 차이가 난다.

가격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독창적인 디자인이나 기능성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모델을 기용하고 있지 않은 빈폴은 스타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올드한 패션 브랜드 이미지에서 밀레니얼 세대 공략에 완벽하게 성공한 휠라코리아가 대표적인 예다. 디자인을 세련되게 바꾸면서 방탄소년단을 모델로 기용하는 등 마케팅에서 큰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성비도 뛰어나 청소년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유통적인 면에서도 접근성은 밀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빈폴의 모든 라인은 오프라인과 자사의 몰에만 입점되고, 젊은 층을 공략한 890311 라인은 어느 편집숍에도 입점될 계획이 없다. 내년 초에 예정된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열 예정이 전부라는 설명이다. 영문 간판을 떼고 한글 간판을 붙이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는 있지만, 현재 유행 중인 레트로 컨셉트의 디자인과 빈폴의 네이밍을 제외하곤 큰 차별성은 찾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 박남영 부장(왼)과 정구호 고문(오)이 질의응답 시간에 답변을 하고 있다.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박남영 부장은 “현재 빈폴은 중국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중국 이외에 국가를 이번에 처음 진출할 예정이다”면서 “아시아에 한정하지 않고 국가마다 전략적으로 구분해서 공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구호 고문은 “영문 간판을 뗴고 한글 간판을 붙이면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정리 중에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서를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중점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