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에서는 스토리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스토리가 잘 전달 되기 위해서는 간단 명료해야 하고, 핵심적인 숫자가 뒷받침 되면 훨씬 강해진다. 때문에 좋아하지는 않아도 숫자와 친해야 했다. 제대로 잘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간단 명료한 몇 가지 숫자는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매출, 손익, 지분, 수주금액, 전년도 실적 같이 쉽게 숫자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그 밖의 사안도 도표나 숫자로 요약해 전달할수록 힘 있는 메시지가 된다. 가급적 숫자 아니면 최대한 압축해서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쉽게 와 닿지가 않지만 커뮤니케이터들은 이를 외우지 않고 체화 한다. 그 해답이 스토리텔링에 있다.

몇 가지 포인트를 내세워 회사를 알려야 하는데, 평소에 이야기 중간 중간 다양한 흥미거리를 엮어서 끌어가는 것이 더 빨리 와 닿는다. 자연스레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포인트를 녹여낸다. 그 반응에 따라 기사화가 점쳐진다. 듣는 사람이 흥미와 궁금증을 갖도록 할수록 취재 본능이 발동되고 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미리 모든 걸 예상할 순 없다. 낚시 바늘에 매달 다양한 꺼리들을 쟁여둬야 한다. 그날 이야기 주제나 분위기에 따라 대화하면서 흐름을 캐치해야 한다. 어떤 주제 어떤 이야기가 나올 지 모른다. 때로는 만물박사가 되어도 좋다. 

 

일년 동안 점심 약속 끽해봐야 250번

회사와 관련된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것들도 두서없이 하기 보다는 스토리를 잘 꿰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서먹한 초반 식사 분위기에서 꺼내기에 부담 없는 것은 차라리 개인적인 부분이다.

산업부인 출입기자단만 잘 건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회사가 M&A나 해외 투자로 큰 손실을 봤고 그 때문에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된 터였다. 거기다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유상증자를 감행하는 등 언론의 주목을 끌 수 밖에 없는 시도를 계속 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증권, 금융, 채권 등등 금융 쪽에서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들여다 보고 있었다.

직,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기자들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기자들 중에서 구 팀장 만나지 않은 기자는 일 안 하는 기자’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식사 약속을 잡다 보면 두 세 달까지 꽉 차기 일쑤였다. 석 달을 넘겨서 약속을 잡는 것은 좀 무리였다. 너무 먼 약속은 약속 같지가 않고, 변경이 될 가능성도 높고, 상대가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십 년 이상 M&A를 포함해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이슈를 참으로 많이 겪었다.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경험을 녹여서 재미있고 맛깔 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곤 했다. 그런 게 기자들 사이에 소문이 좀 났는지 나중에는 스터디 삼아 듣고 싶어 하기도 했고, 또 기사를 쓰다가 막히거나 궁금하면 연락해서 나를 참고서 삼기도 했다.

약속을 잡는 것도 요령이 필요한데, 모든 날짜를 빼곡히 채우는 것 보다 한 달에 이삼 일 정도는 비워두는 것이 나았다. 서로 워낙 바쁘고 변동도 잦아서 약속들 사이에 섬처럼 비어있는 날짜가 이럴 때 요긴하다. 

250이라는 숫자는 일년 동안 근무하면서 기자들과 점심을 먹은 횟수다. 일년 365일 동안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평균적으로 250일 내외의 근무 일수가 생긴다. 매일 스케줄을 가져가면 250이라는 숫자가 채워진다. 매일 만나도 일년에 같은 사람과 식사할 기회는 두세 번 정도다. 

약속 하루 전쯤 확인해서 장소 예약하고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매일 하는 것도 상당한 업무량이다. 부지런해야 하고 체력도 좋아야 한다. 식사 한번 하자고 멀리 이동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데, 매일 기자들 있는 곳까지 가서 되돌아 오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예약하지 않아서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약속은 미리 챙겨야 한다. 크고 중요한 일 보다 다양한 사소한 일들을 기억하고 챙기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책 읽고 쓴 독후감, 두고두고 재산 된다

두 번째 숫자인 50은 한 해 동안 읽는 책 분량이다. 책 읽을 시간은 사실 거의 없다 하지만 분 초를 쪼개가며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늘 책을 가까이 두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주말을 투자하면 웬만한 단행본은 일주일에 끝낼 수 있다. 일년이면 52주가 있는데, 설과 추석 명절 연휴를 제외하면 딱 50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주위엔 일년에 100권을 본다거나 더 많이 읽는 사람도 봤지만 50권도 쉽지 않다. 책장이 술술 넘어갈 땐 이 삼 일에 끝나지만, 딱딱한 내용이거나 500 페이지가 넘으면 일주일 만에 독파가 쉽지 않다. 브라이언 버로가 RJR 내비스코의 몰락에 대해 쓴 ‘문 앞의 야만인들'이란 책이 있다. 무려 912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인데,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인 KKR이 인수하는 과정을 보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은 기억이 있다. 책이 너무 두껍고 무거워 가지고 다닐 수도, 누워서 읽을 수도 없었다.

책을 그렇게 읽게 된 계기가 두세 가지가 있었다. 기자들 중에서도 유달리 책을 많이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읽은 책 내용이 언급되곤 했다. 처음엔 듣기만 했다. 반박하거나 맞받아 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 책으로 손을 더 뻗게 만들었다. 대학생 때도 책을 제법 읽는 편이긴 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경제 경영서적을 탐독했다. 다독하는 사람들과의 잦은 만남이 독서열에 불을 지핀 셈이다. 

다른 계기는 강의였다. 직장인으로서 강의를 들어본 사람은 경험 했겠지만, 강사가 듣는 사람들 기를 꺾어버리는 무기가 바로 책이다. 그만큼 직장인들이 책과 담을 쌓고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강의에서 시작 직후 분위기를 좀 다잡는 멘트가 있다. ‘여러분, 일년에 서른 권 이상 읽는 분 손들어 보세요!’ 거기서 당당하게 손드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 

‘그러면 스무 권 정도는 읽는 분’하고 수를 줄여도 마찬가지다. ‘다시, 열 권’ 이쯤 되면 몇 명은 쭈뼛쭈뼛 손을 들기도 하지만, 기가 팍 꺾여서 강사 손 안에서 놀게 된다. 

나만큼 강의를 많이 들은 사람도 흔하지 않을 성 싶다. 강의 들을 기회가 있으면 꼭 들었다. 회사에서 훌륭한 강사를 초빙했는데 피하는 게 이상했다. ‘업무가 바빠서’ ‘약속이 있어서’ 또는 ‘피곤해서’ 피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강의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저녁 약속에 갔다가도 일찍 마무리하고 뛰어 와서 챙겨 들었다. 매번 좋은 내용을 들려 주는 강의가 적잖은 자극이 됐다. 

주위에 책 쓰는 사람들도 많았다. 책을 한 권 쓴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고민과 연구 끝에 나오는 결과물이다. 보통 정성으로는 어림 없다. 그래서 책이었다. 그 담부터 책 읽기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책을 읽으면 꼭 독후감을 썼다. 독후감 몇 년치가 쌓이자 엄청난 자료가 되어 여러모로 도움됐다. 신년사나 인사말, 발표문, 보도자료나 사보 같은 원고를 쓸 때도 상당히 괜찮은 글 재료다. 

숫자 40은 연간 등산횟수다. 피트니스 센터도 다녀봤지만, 싫증 내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 등산이다. 북한산을 포함해서 인근의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 노고산 등에500번 이상 다녔지 싶다. 매번 코스를 달리해 오른다. 집과는 정 반대 방향에 있는 우이동 코스 몇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등산코스를 수십 차례씩은 밟아본 것 같다. 

회사 상황이 늘 걱정이었기에 일요일 밤이면 찾아오는 불안감에 뜬눈으로 지새기 일쑤였다. 금요일이나 토요일과 달리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마다 불면의 밤이 너무 힘들었다. 잠자리에서 회사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이 이어졌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 지 모를 날 선 취재 문의, 떨쳐내려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고민이 맴돌았다. 그래서 일요일엔 최대한 몸을 혹사시켜 골아 떨어지게 하고 싶었다. 그러다 등산이 생활이 됐다. 

습관이 되니 일요일은 산에 오르지 않고는 배기기 힘들다. 폭우나 폭설이 쏟아지는 날을 빼고 일요일은 산에서 보낸다. 북한산은 서울 내에 있지만 국내에서 제일 위험한 산이어서 해마다 전국 산악 사고의 절반이 넘는다. 하절기엔 하루에만 120만명이 찾는 통에 사고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수도권에서 북한산은 축복이다. 불수도북이나 백두대간 종주 같이 명산을 섭렵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현장에서 웬만해서 원거리로 떠날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북한산 꼭대기에서 기자와 실갱이 한 것만 해도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세 가지 숫자 250, 50, 40은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다. 하든 말든 누가 뭐라 하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한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터로서 용납하기 힘들기에 지키려 한다. 지금도 일요일이면 북한산이 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