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페이스북이 야심차게 전개하고 있는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가 삐걱이고 있다. 지난 5일 페이팔을 중심으로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결제 인프라를 책임질 주요 동맹군이 속속 발을 빼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을 비롯한 기존 금융업계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 페이스북 리브라의 회원사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해당 이미지는 기존 회원사. 출처=리브라

리브라의 질주, 그리고 견제

페이스북은 6월 18일 리브라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암호화폐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별도의 지갑이 없어도 디지털 자산을 각 개인이 편리하고 빠르게 거래할 수 있는 탈 중앙형 플랫폼을 지향하며, 이를 통해 페이스북 중심의 새로운 금융 체제를 수립하려는 야심이 엿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12월 자회사 왓츠앱을 통해 스테이블코린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으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페이팔 회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마커스를 영입해 암호화폐 발행 로드맵에 집중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리브라 프로젝트를 위해 전담 자회사 칼리브라를 설립하는 한편 다수의 파트너도 확보했다. 탈 중앙화 플랫폼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금융 플랫폼을 구축하고, 페이스북이 이를 바탕으로 기존 플랫폼에 덧대어 간편하고 빠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리브라 프로젝트의 핵심이라는 평가다.

리브라의 등장과 함께 글로벌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업계의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13억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의 방대한 플랫폼이 암호화폐 업계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기존 금융업계의 견제다. 파월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7월 10일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가 자금세탁의 원흉이 될 수 있다며 “상용화를 막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금세탁은 물론 개인정보보호 및 소비자 보호 등에 있어 문제가 있다”면서 “페이스북이 부작용을 차단할 수 없다면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신 워터스 미국 하원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위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국제결제은행(BIS)도 보고서를 통해 거대 기술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비판했다. BIS는 “포괄적인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각 국의 관계 당국이 국경을 초월한 연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리브라 비판 행렬에 가세했다. 그는 리브라가 아닌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업계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면서 “규제없는 암호화폐는 불법적인 활동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더욱 적대적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럽 진격을 불편해하는 심기가 여전한 상태에서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류마저 읽힌다. CNBC는 지난달 13일 프랑스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유럽연합에서 리브라가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9월 12일 OECD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프랑스와 독일 재무 당국의 리브라 비판 공동성명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암호화폐 업계의 자금세탁방지(AML)과 테러자금조달(CFT)에 대한 노력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회의감도 감지된다.

▲ 트럼프 대통령이 비트코인을 비판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리브라에 쏟아지는 맹공의 이유

기존 금융업계 및 당국, 심지어 국가 지도자들이 리브라를 견제하는 이유는 ‘금융질서 훼손’에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부위원장이 지난 8일 “리브라는 물론 모든 암호화폐에 대한 공통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배경에도 기존 금융질서의 훼손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깃들었다는 분석이다.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통해 13억명이 사용하는 암호화폐를 바탕으로 일종의 기축통화 존재감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기존 금융업계의 타격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를 억제하기 위해 리브라에 대한 압박수위가 올라가는 한편, 페이스북의 자체 플랫폼 운용 능력을 문제삼는 분위기도 보인다. 암호화폐를 통해 기축통화 제국을 건설하려는 페이스북에게 자격이 없으며, 또 그러한 막대한 권력을 용인할 수 없다는 논리다.

페이스북이 역대급 개인정보 유용 논란에 휘말린 점은, 리브라를 공격하는 기존 금융당국에게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평가된다. 잦은 플랫폼 오류, 투명하지 않은 콘텐츠 노출, 개인정보 취약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페이스북에 민감한 금융정보를 맡기나"라는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페이스북이 그림자 은행이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연장선에서 압박의 강도를 버티지 못한 탈퇴한 리브라 동맹군이 바로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 등이다. 이제 28개 회원사가 22개로 줄어들었다.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통해 암호화폐 기축통화를 구축하는 한편, 이를 현재의 금융질서에 안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이 엄청난 견제를 물리치며 암호화폐 발행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 암호화폐를 13억명이라는 숫자로 대표되는 실제의 현실경제에 이입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결제 인프라다. 리브라와 제도권 금융 인프라를 만나도록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비자 및 마스터카드, 이베이 등이 리브라 동맹에서 벗어나며 페이스북의 로드맵은 크게 수정될 처지에 몰렸다.

반전 카드는 있을까?

페이스북 리브라를 이끄는 데이비드 마커스 부사장은 비자 및 마스터카드 등 결제 인프라를 책임질 일원들이 탈퇴하자 “그들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어 14일 스위스에서 예정된 리브라 프로젝트에 정식 서명할 예정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가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개최하는 리브라 청문회에 참석하는 시간, 리브라 성공을 위한 일종의 ‘태산봉헌제’가 열리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리브라가 정식으로 가동된다고 해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기존 금융업계의 집요한 압박이 이어지는데다 페이스북이 플랫폼을 효과적이고 탄탄하게 운용하고 있다는 증거는 미약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런연합을 중심으로 강력한 비토정서가 감지되는 것도 부담이다.

다만 디지털 자산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으며 “미국 기업인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와 눈길을 끈다. 이러한 주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 자산 전략이 빨라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화웨이 창업주 런정페이 회장은 7월 26일 “중국이 블록체인 기반의 리브라와 동등한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 암호화폐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으며, 조만간 중국 인민은행이 암호화폐 발행에 나설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중국의 디지털 자산 굴기를 좌시할 수 없으며, 다양한 가능성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 상원 은행위원회가 런 회장의 발언 후 이례적으로 “미국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에서 중국보다 선두에 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장면이 중요하다. 물론 큰 틀에서 기존 금융당국은 리브라 압박에 매진할 전망이지만, 리브라가 본격 가동되며 의미있는 생태계를 꾸리면 의외의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