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글로벌 ICT 업계는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의 파국이 재연될 수 있다는 공포가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미래혁신 기업으로 지정해 투자한 위워크, 우버 등이 흔들리며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는 중입니다.

그러나 버블의 종류에도 여러가지가 있는 법이라는 것을, 최근 새삼 느낍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기술이 얼마나 세상을 파괴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 혹시 어려운 것 아니냐"는 수준의 고민은 어쩌면 진정한 버블의 공포가 아닐 수 있습니다. 가장 최악의 버블은 '그냥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어떻하지?'라는 의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이월드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의혹의 집합체
1999년 시작된 싸이월드는 당시 미니홈피가 큰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했으나 새로운 SNS의 등장, 모바일 시대 부적응, 나아가 경영상의 엇박자 등이 겹치며 결국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2016년 7월 싸이월드에 밀려 몰락의 길을 걸었던 프리챌의 전제완 전 대표가 아이러니하게도 싸이월드를 인수하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합니다. 프리챌은 여러가지 이유로 무너졌으나, 그 중에는 싸이월드라는 새로운 연결 플랫폼의 등장에 일격을 맞았던 것도 크게 일조한 바 있습니다.

전제완 대표가 등판한 싸이월드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을까요? 삼성으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받는 당시에는 희망의 빛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한계였습니다. 사람을 각목으로 때리고 밟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는 다소 가학적인 바이럴 마케팅을 동원하고 언론사들과 연합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큐'도 출시했으나 연이어 무너집니다. 페이스북 및 트위터에 이어 흥겨운 '댄스'에 어깨춤이 절로나는 틱톡까지 범람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싸이월드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최악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직원들은 줄줄이 퇴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직 싸이월드 직원은 A씨는 "임금체불만 수 십억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면서 "국민연금과 4대보험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해 회사가 피소당했고, 답이 나오지 않으니 전 대표도 피소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직원 회식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법인카드를 쓰지못해 직원이 개인카드를 사용했고, 직원은 퇴사 후 그 비용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전 대표와 싸이월드를 둘러싼 논란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싸이월드 홍보 동영상을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통해 광고했으나 비용을 제대로 내지 않고있다는 말도 나오며 싸이월드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이벤트를 벌였으나 막상 당첨자에게 상품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실무를 담당했던 전직 직원의 증언도 나왔습니다. 전 대표는 다른 사업을 운영하며 배임으로 피소되기도 합니다.

논란이 극에 달한 가운데 싸이월드는 느닷없이 3.0 시대를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7월 연이어 보도자료를 내어 암호화폐 사업과 테마마크 로드맵을 공개합니다.

싸이월드는 “차별화된 서비스 도입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보상형 SNS, 싸이월드 3.0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클링(Clink)이라는 싸이월드 3.0 암호화폐를 발행하며 순항했으나 본격적인 수익 창출에 앞서 단기운영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이에 본격적인 클링 생태계 조성, STO 발행, 스위스 증시 상장과 신규사업 런칭 등 수익 구조 다변화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 보도자료에서는 보기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싸이월드는 "분사된지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서비스 중단을 검토하게 되었고, 구세군처럼 싸이월드에 나타난 건 아이러니하게도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 사장”이라면서 “전 대표는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1999년 인터넷 커뮤니티 ‘프리챌’을 만든 인물로, 당시 성공한 벤처 기업가로 이름을 알렸다”고 말합니다. 자사와 서비스의 소식을 전하는 보도자료에서 CEO를 이렇게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정말 처음 봅니다. 이어 “미니홈피와 결합된 블록체인 기반의 보상형 플랫폼으로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싸이월드는 '구세군' 전 대표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그것도 비교적 '소프트랜딩'을 택한다면 모르겠으나 '하드랜딩'의 결정체를 보여주고 있어 논란입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싸이월드는 10월 초부터 접속이 불가능하며 조만간 도메인이 중단될 처지입니다. '우리의 흑역사'가 담긴 싸이월드 데이터는 모두 허공으로 사라질 판입니다.

▲ 싸이월드 3.0의 비전. 출처=싸이월드

기묘한 이야기
싸이월드와 관련된 취재를 하면서 새삼 '사회의 관용'을 배웠습니다. 자금난에 휘청이는 기업이, 직원들은 대부분 퇴사하고 연락마저 어려운 기업이 갑자기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무려 스위스에서 증시 상장에 돌입하는 한편 대형 테마파크를 설립한다고 말해도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은 아직 우리 사회가 여전히 따스하고 정이 넘치며 믿음이 충만한 사회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보도자료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부 언론에서 보도가 되고, 심지어 글자 하나 바뀌지 않고 포털 뉴스란에 걸리는 것을 보면서 그 흐뭇한 연대감에 저도 모르게 아빠미소를 지었습니다.

제가 느낀 따스함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솔직히 싸이월드가 대형 경품 추천행사를 하며 실제 경품을 당첨자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듣고는 처음에는 '에이, 설마'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경품 추첨 대상자가 저에게 연락을 하며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한편 "이제 별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고 말했을 때, 그래도 이 사회는 역시 관용이 살아있구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 같았으면 당장 변호사 찾아갔을테니까요.

암호화폐 클링에 흥미를 느껴 이와 관련된 취재를 할 때는 '무소유'의 가치를 느꼈습니다. 비단 암호화폐를 발행한다면 관련 개발 인프라나 리소스가 투입되어야 하는데, 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운영되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암호화폐 발행 당시 싸이월드와 접촉했던 마케팅 팀과 접촉할 수 있었는데 그들도 실체는 모른다고 합니다. 아, 무소유.

싸이월드의 입장을 듣기위해 다양한 경로를 모색하려 진땀을 빼던 당시도 기억이 납니다. 보도자료에 올라온 연락처는 신호가 가지 않았고, 홈페이지에 있는 연락처도 먹통이었기에 필사적으로 생각해낸 방법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올라온 개발자 연락처에 연락을 시도하는 것이었으나 역시 먹통이었습니다. 이후 어렵게 연락이 닿은 내부 인력은 차일피일 회신을 미룬 후 결국 사라졌습니다. 안되는 건 안되는거구나. 한 수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관련 기사들이 나가고 전 대표가 페이스북 메신저로 항의했을 때, 취재는 충실했고 혹시 부족하다면 정확한 입장을 달라고 요청하자 '마음대로 하시라'는 답변이 왔습니다. 자사에 불리한 내용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취재를 해도 무방하다는 그 마음. 그 따뜻한 배려 지금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테라노스 게이트가 글로벌 스타트업 업계를 흔들었다. 출처=갈무리

돌아봐야 한다
엘리자베스 홈스는 2003년 스탠퍼드에 재학하던 중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터를 잡아 테라노스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합니다. 나노테이너라는 휴대용 키트를 개발해 눈길을 끕니다. 주사기로 피를 뽑지 않아도 단 4시간만에 모바일로 결과를 알려주는 새로운 기술. 테라노스는 혈액검사의 신기원을 이루며 대박을 터트립니다.

공포는 2014년 미 식약청(FDA)가 테라노스의 키트를 두고 '유용한 결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리며 시작됩니다. 이후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이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테라노스의 기술력이 허상이라는 것을 폭로했고 2016년 미국 공공의료보험운영이 공개적으로 테라노스의 기술은 실체가 없다고 선언해 파국을 맞습니다. 테라노스는 2018년 6월 결국 문을 닫았고, 창업자 홈스와 그의 동업자는 법의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테라노스 게이트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뚜렷한 비전도 없고 기술력도 없었던 스타트업이 어떻게 이런 대형사고를 쳤을까? 언론은 별다른 검증없이 홈스의 미모와 배경, 그리고 카리스마를 경마식 보도로 나열해 대중의 말초적 감정만 자극했고 명망있는 '셀럽'들은 이에 부응하듯 묻지마 투자만 남발했습니다. 이들에게 테라노스 게이트의 책임이 완전히 없다고 볼 수 있을까요?

싸이월드가 한국판 테라노스가 될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도메인은 닫히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고, 무엇보다 전 대표는 최근까지 재기를 위해 노력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파탄나고 끝나지 않은이상 그 사람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업가로서의 전 대표가 가진 그 만의 비전은 일단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휘청이는 싸이월드가 상식을 벗어난 상태에서 이를 방조하고 오히려 도왔던 언론, 그리고 투자자들의 행보를 보면 다소 씁쓸해집니다. "내 인생을 날렸다"고 말하는 전직 직원들의 한숨과 분노, 그리고 싸이월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투자자 및 서비스 이용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