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범죄인 인도법안을 기점으로 불거진 홍콩 사태가 점입가경인 가운데, 해당 법안은 폐기됐으나 시위대와 당국의 대결국면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5일부터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 금지법을 발동하며 사실상 계엄령이 선포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수난사도 이어지고 있다. 주로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다가 중국의 강한 역풍에 맞아 고개를 숙인느 패턴이다. 실제로 이들은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중국의 거친 반발과 직면해 사과하거나 아예 중국인들의 심기를 건들 수 있는 서비스를 삭제하는 등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고 있다.

블리자드부터 NBA까지
글로벌 비디오게임 회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최근 홍콩 출신의 게이머 블리즈청에게 1년간 대회 참여금지 처분을 내리는 한편 대회에서 거둔 상금을 몰수하는 총강수를 택했다. 게임 하스스톤의 게이머인 블리즈청이 6일 경기가 끝나고 이어진 인터뷰에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마스크를 착용한 후 "홍콩 민주화는 우리 세대의 혁명"이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게임 대회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하는 것은 죄사할 수 없으며, 블리즈청의 행동은 블리자드의 규범에 어긋난다는 것이 블리자드의 설명이다. 이에 블리자드는 해당 경기 VOD까지 삭제했으며 블리즈청의 인터뷰 당시 홍콩 사태에 대한 의견을 말하도록 유도한 중계진도 해고했다.

블리자드의 블리즈청에 대한 제재 방침이 알려지자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블리자드가 중국을 의식해 필요이상 칼춤을 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론 와이든 미 상원의원은 "블리자드는 중국 공산당을 기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창피를 당하는 길을 택했다"고 비판했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PD&디렉터였던 마크 컨은 "블리자드를 보이콧한다"는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그는 "블리자드가 돈 때문에 선수를 버렸다"는 말로 블리자드의 중국 자본 종속을 질타하기도 했다. 현재 중국의 텐센트는 블리자드의 주요 주주며, 마화텅 텐센트 회장은 중국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다.

다만 블리자드의 블리즈청 징계가 정당하다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게임 대회에 참여한 선수가 게임 외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리자드의 게임 규정을 보면 '블리자드 또는 하스스톤을 대변하지 않는 개인 행동을 금한다'는 대회 규정이 존재한다. 블리즈청 징계에 대한 최소한의 여지는 있다는 셈이다.

한편 애플과 구글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시위대에게 필요한 앱 서비스가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사자 스스로 해당 앱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9일 "홍콩맵라이브(HKmap.live) 앱은 홍콩의 법규를 위반해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앱은 시위 참가자들이 텔레그램에 올려둔 시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며, 시위대는 이를 바탕으로 경찰의 위치와 진압작전 현황을 파악한 바 있다.

애플은 최초 해당 앱 서비스를 금지했으나 중국 정부의 눈치를 과도하게 본다는 비판이 일자 4일 다시 서비스를 허가했다. 그러나 중국이 인민일보 등을 통해 9일 애플의 조치를 비판하자 결국 앱 삭제 결정을 내렸다.

구글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시위대의 일원이 되어 게임을 통해 홍콩 시위에 참여하는 서비스 앱인 '우리 시대의 혁명'을 11일 삭제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심각한 갈등이나 비극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은 회사의 방침과 어긋난다는 주장이지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중국 눈치 보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콩시위의 유탄을 맞은 기업이 ICT 업계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NBA 휴스턴 로키츠의 대릴 모리 단장이 6일 트위터를 통해 홍콩시위 지지를 선언하자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나왔기 때문이다. NBA는 즉각 사과 성명을 발표했으나 중국 관영 CCTV는 NBA 시범경기 중계일정을 빼버리는 등 거칠게 대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덤 실버 NBA 총재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 지지 행보를 두고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고, 중국이 강력 반발하자 다시 "차이를 판정하는 것은 NBA의 역할이 아니다"라는 다른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락가락' NBA 행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당장 주류 언론들은 중국이 NBA를 괴록히고 있다며 십자포화를 날렸고, 민주당 대권주자인 베토 오루크는 공개적으로 NBA의 행동을 문제삼으며 중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공산주의에 굴복했다"며 강한 반감을 보였다.

중국, 어려운 시장
블리자드는 올해 상반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매출의 12%를 올렸으며 그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왔다. 그런 이유로 블리자드가 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으며, 그 연장선에서 블리즈청 징계에 나섰다는 주장이 나온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아이폰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포기할 수 없으며, 그 연장선에서 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팀 쿡 애플 CEO는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자 그 어떤 CEO보다 활발하게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화해 분위기 조성에 힘쓰기도 했다.

구글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국에서 구글 포털 서비스가 퇴출된 후 거대한 시장을 잃었다는 내부 비판이 나온 상태에서, 추가로 중국의 미움을 받으면 곤란하다는 정서가 강하다. 끝내 무산됐지만 구글이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까지 중국 시장 진출을 타진한 이유다.

업계에서는 국가주의, 민족주의로 일관하며 홍콩 시위대와 조금의 접점이라도 존재하는 민간기업을 탄압하려는 중국의 행보를 규탄하고 있다. 다만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어야 하며, 홍콩 시위와 관련한 목소리를 내는 리스크를 자초한 민간기업에게 일정정도 제재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