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진종식 기자] 30,40대의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유가 주택구입자금 마련으로 밝혀져 노후보장 자산 정책에 구멍이 뚫렸다. 최근 집값 상승률이 퇴직연금 수익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집만 장만하면 노후보장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대세를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청의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유별 현황’에 따르면 30,40대의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유 중 주택구입을 위한 신청자 수가 지난 2015년 이후 2018년 상반기까지 매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퇴직연금 중도인출 신청자 수에서 30대는 2015년 8997명, 2016년 1만236명, 2017년 1만1490명, 2018년 상반기 6755명 등으로 매년 절대수가 증가하고 있다.

40대도 동기간에 2015년 4180명, 2016년 5023명, 2017년 6310명, 2018년 상반기 4081명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유 중 주택구입 다음으로 증가 폭이 높은 항목은 임차보증금 항목이다. 임차보증금 사유는 지난 2015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30대는 각각 464명, 3902명, 6128명, 3689명을 보이며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40대도 동기간에 각각 118명, 1846명, 2910명, 1794명 순으로 증가세가 30대에는 못 미쳐도 상승하고 있다.

30,40대에 퇴직연금 중도인출 비율이 높은 것은 가정을 꾸리고 자녀가 있는 가정의 경우 가능한 안정적인 주거생활 욕구와 사회적 활동기에 소득도 증가하는 단계라 은행 대출을 줄이고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은 퇴직연금이 가장 적당한 자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퇴직연금을 주택마련 자금으로 활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고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실적을 기록하는 것도 큰 이유로 지적된다.

퇴직연금은 매년 1개월 급여에 해당하는 자금을 적립하는 초장기 상품인데 수익률이 낮아 겨우 원금을 보존하는 수준으로 운용하느니 높은 상승률로 뻥튀기 되는 주택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더 이익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주택구입자금에 충당할 목적으로 중도인출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최근 전국적으로 불안정하게 상승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면서도 “퇴직연금은 은퇴 후 노후보장을 위한 유일한 자산으로 중도에 인출하면 연금을 받을 수 없어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인출 사유 : 주택구입, 장기요양, 임차보증금, 회생절차 개시, 파산 순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유 중 신청자 수가 많은 순서대로 주택구입, 장기요양, 임차보증금, 회생절차 개시, 파산 등 순인 것으로 파악됐다.

30,40대의 장기요양 사유의 신청자 수는 2015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각각 6503명, 7647명, 9848명, 7177명을 기록했다. 장기요양에 의한 중도인출은 노후 질병 치료나 요양 등 성격상 평균 7800명 수준에서 유지하고 크게 증가하지는 않고 있다.

다음으로 높은 임차보증금 사유에 의한 신청자 수는 2015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각각 582명, 5748명, 9038명, 5483명 순으로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임차보증금이 중도인출 사유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율을 보면 2015년 2.54%, 2016년 17.97%, 2017년 22.24%, 2018년 상반기 20.92% 등 비율로 30,40대 전체 에서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김성일 제로인 퇴직연금연구소 소장은 “퇴직연금의 중도해지 사유에 주택구입자금이 허용된 것이 잘못된 조건”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세계적으로 주택구입자금으로 퇴직연금을 중도해지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나라가 거의 없다” 면서” 특이하게 우리나라만 퇴직연금의 개념에 맞지 않는 중도해지 조건을 허용하고 있으나 퇴직연금을 본질에 맞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중도해지를 매우 어렵게 페널티를 주거나, 중도인출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준 강제성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퇴직연금 중도인출은 은퇴자들의 노후보장 자산을 갉아먹는 행위이고, 은퇴 후 연금으로 활용할 수 없게 만드는 병폐”라며 “IRP(개인형퇴직연금)도 중도인출을 허용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IRP 가입자의 98%가 일시금으로 수령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퇴직연금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 계약형 퇴직연금제에 기금형을 빨리 도입해서 제로 베이스에서 제도를 개선해야 된다”면서 “개인의 기금 선택 자유와 가입 의무화, 강력한 세제 혜택, 자동투자상품 운용, 기금간 경쟁체제, 장기투자 운용경험 등 여러가지 강점이 있는 호주의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모범적”이라고 말했다.이어서 그는 “호주의 퇴직연금 ‘수퍼애뉴에이션’은 187개 기금에서 2조2000억 달러(약 1800조원)의 적립금을 굴리고 있다. 근로자는 풀타임, 파트타임, 비정규직, 임시 거주자에 상관없이 고용주는 직원들의 은퇴자금으로 임금의 일정 부분을 연금 기금에 불입해야하는 준강제성이 부여되어 가입률이 높다. 또한 투자자가 소속한 회사의 기금이 아니더라도 다른 기금의 운용 투자수익률이 더 높다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 기금 간 경쟁이 치열하다.” 면서 “호주에서는 퇴직연금 운용을 우리나라 처럼 회사의 기존 거래에 따라 대부분의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에 맡기지 않고 노사관계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인 ‘페어워크커미션(Fair Work Commission)’에서 투자 자산의 종류와 투자 전략 등을 분석해 퇴직연금 운용에 적합한 능력과 경험이 있는 자산운용사를 판단하여 허용하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운용하여 수익률 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이다.“ 면서 “한국이 고령화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복지비용을 최소화하려면 사회적 합의 도출과 정책 입안자, 기업, 업계, 금융회사 등 관련기관과 투자자(가입자) 모두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