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김태형 지음, 역사의 아침 펴냄, 1만5000원


십만양병설은 동북아 정세를 감안한 ‘탁견’이었다.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인도 정복까지 염두에 둔 야심 찬 사내였다.

전사의 나라 일본이 분열을 끝내는 날 그가 창끝을 다시 대륙으로 향할 가능성은 컸다. 조선은 대륙으로 나가는 징검다리였다. 이율곡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소유자였다.

민초들은 그의 무용담을 살짝 비틀었다. 율곡이 불이 쉽게 붙을 수 있도록 강 주변의 정자에 기름을 먹여 밤길에 우왕좌왕하던 선조의 도강을 도왔다는 설화는 우국충정으로 가득찬 유학자에 대한 ‘향수’였다.

그는 결코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았다.
과거시험에 무려 아홉 차례나 장원 급제한 당대의 천재이던 그는 ‘과거 무용론’을 주장했다. 임금은 그런 그가 늘 어려웠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수 년이 되었는데 치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시어 형식적인 것만을 하시려고 하신다면 비록 공자와 맹자가 좌우에 있으면서 날마다 도리를 말하더라도 또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는 임금을 향해 늘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선조가 아량이 부족하며, 의심이 많고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전하의 좌우에는 오직 내시들과 궁녀들이 있을 따름”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선조를 도학 군주로 만들어 요순시대를 조선에서 실현한다는 그의 ‘비전’은 웅대했다.

하지만 선조는 공자가 흠모해 마지않던 주공이 아니었다. 그는 공맹의 가르침을 인생의 이정표로 삼고자 한 호학의 군주였으나, 전란을 전후해서는 패도로 일관했다.
선조는 서인인 송강 정철을 앞세워 동인을 쳤다.

그리고 임해군의 세자 책봉 문제를 거론한 정철을 다시 토사구팽했다. 한족들이 즐겨 활용하는 ‘이이제이’수법의 전형이다.

적장자 콤플레스는 늘 선조의 행동을 제약했다. 이율곡이 만언봉사에서 선조의 편협한 성정을 지적하며 장차 화란이 날 것이라고 우려할 정도였다. 선조는 하지만 이율곡의 영원한 등불이었다.

저자는 이율곡이 선조의 얼굴에서 선량했지만 무능하던 아버지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아버지 이원수는 아내인 신사임당에게 늘 주눅 들어 살던 ‘공처가’였다.
임금은 마치 아내를 두려워하던 아버지 이원수를 떠올리게 했다.

선조임금에 아버지를 투사하다

“제가 죽더라도 새장가만은 가지 마세요.” 죽음을 앞둔 현숙한 아내는 남편에게 다소 엉뚱한 요구를 했다. 사람만 좋아 늘 남들에게 이용당하기 일쑤인 남편을 계도하고 과거시험 응시도 독려하던 스승 같은 아내였다.
남편을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구해낸 것도 바로 그녀였다.

남편은 벼슬자리를 청탁하러 세도가 윤원형과 더불어 을사사화를 일으킨 영의정 이기를 찾아갔다. 신사임당은 남편을 설득해 당장 이 세도가의 집에 발길을 끊도록 했다.
문정왕후의 사후에 불어닥칠 피바람을 내다본 현명한 결단이었다.

그녀는 부족한 부군을 늘 바른길로 인도하는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임종을 앞두고 남편에게 새장가를 들지 말라고 호소했다. 율곡의 아버지는 그러나 조강지처가 죽자마자 후실을 새로 들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집안도 현격하게 기우는 상민 출신을 첩으로 맞았다.

가문을 중시하던 조선사회에서 떠올리기 힘든 파격이었다. 이원수가 평소 잘난 아내에 얼마나 주눅 들어 지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사임당은 시와 서, 그리고 그림에도 능숙했다. 자녀 교육에도 뛰어났다. 요즘 태어났으면 여성 국무총리도 능히 해낼 인물이었다.

“혹시 아버님께서 실수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몸소 충고하셨다.” 이율곡이 어머니를 기리는 행장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회고한 대목이다. 아버지 이원수는 늘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이율곡이 선조의 얼굴에서 선량했지만 무능하던 아버지를 보았다. 그의 아버지 이원수는 늘 아내인 신사임당에게 주눅 들어 살던 공처가였다. 신사임당은 과거공부를 하라며 남편을 내쫓기도 한 모진 여장부였다.

그녀는 10년의 시간을 줄 테니 과거공부를 하라며 처가살이를 하던 남편 이원수의 등을 모질게 떠밀던 당찬 여장부였다. 후실로 들어온 권 씨는 변덕이 심하고 화를 잘 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해 아침부터 해장술을 마실 정도로 품행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 그녀를 서둘러 후실로 들일 정도로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신사임당은 이원수에게 충고와 비판을 하다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한동안 냉전 상태를 유지하며 거리를 두고 지냈다.

임금을 모질게 대하는 이율곡의 태도는 영락없는 신사임당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임금에게 가시 돋힌 조언을 퍼붓다가 먹혀들지 않을 때 물러났다 다시 달려드는 전략을 취했다. 신사임당, 이원수 두 사람의 불화는 율곡의 어린 시절에 깊은 낙인을 남겼다.

율곡, 고향에서 유년 시절을 되살리다

선조는 유가적 이상향을 구현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도량이 넓지는 못했다.
자신을 말만 많고 실용적이지 못한 학자에 비유하는 군주에 좌절한 율곡은 고향마을로 돌아간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을 다시 모아 당시로서도 보기 드문 대가족 공동체를 만든다.

과부가 된 형수 곽 씨와 둘째 형 부부, 동생네 가족, 그리고 가난한 친척 등 모든 피붙이들을 모아 함께 살았다. 가사를 돕는 노비까지 합치면 백여 명에 이르는 대가족이었다.

대가족은 현실에서 패배한 유학자의 도피처였다. 그리고 유가적 이상향을 구현할 공동체이기도 했다.

저자인 김태형 씨는 “심리학은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심리법칙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론화한다”며 “역사 인물들의 심리분석은 사료에 실려 있지 않은 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담당한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율곡 이이는 물론 정조, 허균, 연산군을 비롯해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조명한다. 그들의 내면 풍경과 현실정치와의 방정식을 분석하고 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