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시그니처 올레드R. 출처=LG전자

[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의 발달로 우리의 삶이 점차 윤택해지고 있다. 과거 기술의 발달은 세대를 나눠가며 예측이 가능했지만, 고도화를 거치면서 순간 등장하는 기술로 점차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 또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는 기업들의 구조까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적응한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고 있는 반면, 도태되는 대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기업들에 혁신적인 사고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 폼팩터의 변화…도태되는 기업들

과거 카세트 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듣던 시절에 개인화 혁신을 가져온 폼팩터는 소니의 워크맨이다. 당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듣거나 별도의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워크맨은 걸으면서도 혼자 들을 수 있는 개인화 혁신을 가져왔다. 여기에서 일본의 우수한 소형화 기술로 높은 휴대성까지 겸비해 혁신적인 디바이스(제품)로 자리잡았다. CD플레이어, 카세트 오디오 등 소니 워크맨의 기술은 글로벌 소비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소니 워크맨은 개인화 대명사로 통했다.

▲ 소니 워크맨 MP3 플레이어. 출처=황대영 기자

하지만 2000년대 초반 플래시 메모리형 MP3가 등장하자 달라졌다. 이 같은 MP3 플레이어를 이끈 선두주자가 아이리버(현 드림어스)다. 기존 휴대용 카세트 오디오 대비 대폭 줄어든 부피는 휴대성을 더욱 강화했고, 인터넷의 발달로 음원 유통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아이리버는 2004년 창립 5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79%, 글로벌 시장 점유율 25%, 벤처기업 사상 최고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뒤늦게 소니도 MP3 플레이어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이미 시장은 기울어져 있었다. 삼각통 모양 아이리버는 휴대용 오디오 시장에서 혁신적인 폼팩터로 자리 잡았다.

아이리버도 이 같은 전성기를 10년을 유지하지 못한 채 내리막을 걸었다. 더 크게 본다면 MP3 플레이어 시장 자체가 소멸에 가까웠다. 바로 애플사(社)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선보인 아이폰(스마트폰)의 등장 때문이다. 휴대전화의 혁신적인 변화를 담은 스마트폰은 여러 산업에 영향을 끼쳤다. 아이리버뿐만 아니라 핀란드 대기업 노키아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스마트폰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사용되면서 콘텐츠 산업은 더욱 발달했다. 혁신을 가져온 폼팩터 변화는 소비자의 취향에 파고들어 기존 산업의 틀까지 흔들었다.

# 새로운 플랫폼 등장에 따른 게임 산업의 변화

과거 국내 패키지 PC 게임 시장은 규모가 작았다. 그러나 인터넷 네트워크 저변이 발전하면서 PC온라인 게임이 급부상했다. 닷컴버블이라고도 불리는 호황기를 맞은 국내 게임 산업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엔씨소프트, 넥슨, NHN(구 한게임), 넷마블, 네오위즈, 위메이드, 웹젠 등 국내 게임 산업은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기술 경쟁으로 만들어진 국내 게임 산업은 경쟁력을 갖춰 중국 게임 산업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콘텐츠 산업의 대표적인 수출 효자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 신작 PC온라인 게임의 개발 기간은 길었다. 최소 3~4년의 개발 기간에 1~3회 CBT(비공개시범테스트), OBT(공개서비스)까지 거쳐 비로소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PC온라인 게임은 기존 패키지 게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토리 엔딩(Ending)을 깨트렸다. 게이머들 간에 하나의 소사이어티(Society) 형성을 목표로 한 PC온라인 게임은 네버엔딩을 대부분 채용해 출시 이후에도 지속적인 개발, 업데이트를 요구했다. 기존의 게임 공식을 깨트린 것이다. 이 부분에서 국내 게임사들은 선점했고, 글로벌 게임 시장을 선도했다.

이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폼팩터 등장은 국내 게임 산업에 큰 영향을 줬다. 현재 게임업계 빅3(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가운데 넷마블은 가장 먼저 모바일 게임 시장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바라보고 공격적인 진출을 시도했다. 넥슨, 엔씨소프트 대비 비교적 규모가 작았던 넷마블은 모바일 게임 시장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기록했다. 또 비교적 짧은 개발기간으로 출혈적인 비용 부담이 적었던 모바일 게임은 넥스트플로어(현 라인게임즈), 컴투스, 게임빌 등 게임 산업의 새로운 다크호스를 생성했다.

그런 모바일 게임 시장도 점차 대형화, 고도화를 거치면서 잔혹사가 펼쳐지고 있다. 캐주얼-미들코어-하드코어로 이어지는 게임 이용자 트렌드 변화는 게임사에 과거 PC온라인 게임 수준의 퀄리티(품질)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쏟아지는 중국산 게임에 국내 게임 산업의 위상까지 흔들리는 중이다. ICT 벤처기업의 상징처럼 여겨진 게임 산업도 기성 산업의 경직된 전철을 밟고 있다.

# 현재 진행형 디스플레이 잔혹사

연간 300억 달러(약 35조8500억원) 수출을 기록한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이 수익성 악화, 인력감축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쏟아지는 중국산 저가 디스플레이에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약화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 중이다.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마이크로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대한 투자로 타개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새로운 디스플레이로 시장 재편까지 공백이 예상돼 과거 전성기 수준까지 회복은 오리무중이다.

대한민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지난 1995년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 뛰어들어 종주국인 일본을 3년 만에 제치고 TFT-LCD 시장 1위로 급부상했다. 1999년에는 삼성과 LG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고, 2001년 2분기 10.4인치 이상 대형 LCD 시장에서 국가점유율 41%로 뛰어올랐다. 이 과정에서 기존 LCD 시장을 장악한 일본보다 세대를 뛰어넘는 기업의 투자가 주효했다. 일본 디스플레이 업체가 2.5세대 라인 확장에 주력할 때,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3세대에 바로 투자했다. 글로벌 소비자들은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의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

또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이 기존 LCD에 집중하고 있을 때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OLED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와 양산화에 성공하면서 시장 형성과 기술 격차를 마련했다. 2007년 세계 최초 OLED 양산 성공, 2012년 대형 OLED 양산 시작 등 현재 글로벌 OLED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점유율은 96%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뿐만 아니라 연구소 및 대학들도 연구개발을 이어가며 OLED 시장 형성에 일조했다.

▲ LG디스플레이 중국 광저우 합작법인 공장. 출처=LG디스플레이

하지만 중국의 초대형 LCD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공급과잉이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을 잠식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전체 임원∙담당조직의 약 25% 감축하는 고강도 조직개편, 삼성디스플레이 희망퇴직 신청 접수 등 대표적인 패널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는 전반적인 디스플레이 산업 생태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의 물량 감소와 인력 조정은 수많은 협력회사에도 보수적인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상반기 6600억원 적자, LG디스플레이는 5000억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3분기 실적 전망 역시 흐린 상황이다. 또 양사는 인력 감축으로 인한 일회성 비용 증가로 4분기까지 적자 폭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물량감소-실적악화-인력감축 등으로 이어지는 잔혹사가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시장 형성이 이뤄질 때까지 혹한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는 “대형 디스플레이 분야는 중국의 초대형 LCD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면서 공급과잉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기업들이 나서 퀀텀닷, 마이크로LED, OLED 등 기술 장벽이 높은 차세대 분야에 과감히 투자한다면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