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액은 총 76억9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농식품부는 한발 더 나아가 올해 목표를 100억 달러로 상향조정했다. ⓒ연합


대한민국에서 농업을 얘기하자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기 전부터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동안 수출지향식 경제논리에 밀려 상대적으로 큰 손실을 감내해야만 했던 게 우리농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잿빛 농업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12년 한국농업의 미래에 대해 대안을 찾아본다.

한국 농업은 지난해 ‘한·미 FTA’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농업진흥청이 최근 발표한 ‘키워드로 본 2012년 농산업’ 리포트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후 15년간 농업 생산액은 12조20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EU와의 FTA는 15년 동안 2조7000억원의 농업 생산액이 감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조만간 한·중 FTA 협상과 관련한 움직임이 시작될 예정이어서 FTA는 올해 농업계 최대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중 FTA가 체결되면 국내 농업의 피해가 한·미 FTA의 3~4배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기관의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대외정책연구원은 한·중 FTA 체결 시 국내 농수산업 생산이 2005년보다 14.26%까지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쌀을 제외한 전 품목의 관세를 10년에 걸쳐 철폐하고 위생검역을 통한 수입차단도 점진적으로 없앤다고 가정하면 2020년 기준 농업생산액은 최대 20%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농업 피해액이 3조 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으로, 정부가 집계한 한·미 FTA에 따른 농업 피해액 8150억원의 4.1배에 달한다.

정부 “선택과 집중 통한 수출산업화 지원”
이런 FTA의 파고를 넘을 대안으로 정부는 ‘농업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초기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으로 수출입국의 기틀을 다졌듯이 농업도 계획적인 지원을 통해 수출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3일 “한·미 FTA가 어떤 성과를 낼 지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정부, 기업, 근로자 모두 함께 한다면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이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특히 “농업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피해를 보상한다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이것을 계기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농업이라고 세계 최고가 되지 말라는 법 없다”며 “농민도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농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적극적 자세를 갖는다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산업화 초기에 수출산업을 지원하듯이 하면 된다. 농업도 수출산업이다”고 밝혔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지난해 연말 취임 6개월을 정리하는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는 지금 FTA시대를 맞고 있는데 이는 농산물시장이 개방된다는 의미”라면서 “싼 농산물이 들어오니까 이 자체가 우리 농업에 위기라고 볼 수 있지만 또 한편 생각하면 우리만 개방되는 효과가 있는게 아니라 상대방 국가도 개방되는 것이므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 장관은 “FTA로 피해가 나니까 피해를 보전하라고 하는데 그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수세적인 농정이 아니라 공세적인 농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라며 “외국시장이 개방되니까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수출농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이어 “시설 현대화를 해야 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해야 한다. 2011년에만 해도 R&D 투자비용이 8600억원이다. 2015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돼있는데 R&D 투자를 해 수출 농업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산업화 초기에 수출산업을 지원하듯 하면 농업도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연합


서 장관은 “30대에서 39세까지 도시가구소득과 농가소득을 비교하면 농가소득이 오히려 3.3%가 많은데 젊은이들이 안가는 이유는 복지문제 때문”이라며 “삶의 터전이 되려면 의료·생활환경·문화 등이 갖춰져야 한다. 농촌의 의료시설·교육시설·문화시설 등을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농식품 수출 확대는 농업계에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농식품 수출 확대는 농업의 부가가치 제고와 농업인 소득 증대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농식품 수출액이 지난해 76억9000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올해는 이보다 한발 더 나가 농식품 수출목표치를 100억 달러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이를 위해 수출 전략품목을 중심으로 수출촉진단을 구성·운영하고 매월 수출대책회의를 열어 품목별 애로사항을 해소해 주는 등 지원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농식품 수출을 주관하는 농수산물유통공사(aT)도 최근 수출선도조직 신규 사업자 모집에 나서는 등 농식품 수출 확대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수출선도조직 사업자로 선정되면 생산부터 수출까지 일관관리체계 구축 등을 위해 필요한 사업비의 70%(1억2000만원)와 고품질 규격품 수출물량에 따른 수출 활성화 인센티브를 지원받을 수 있다. 농업계에선 중국·일본·동남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미국·유럽에 이르기까지 한류 열풍이 점점 뜨거워지는 점을 들면서 국산 농식품 수출과 연계한 마케팅을 효율적으로 펼친다면 100억달러 수출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현장선 “극소수 부농만을 위한 장밋빛 허상”
농촌 현실은 이런 계획이 ‘장밋빛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농업도 수출산업”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3일 긴급 소집한 한·미 FTA 관계장관 회의에서 “우리 농업이라고 세계 최고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산업화 초기 수출산업을 지원했듯 경쟁력 기반을 갖춰주면 덴마크 등 유럽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너무 모르는 발언”이라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전체 농민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인데다 1㏊ 이하를 경작하는 고령·영세농 구조에서 수출은 1% 미만 극소수 부농만의 얘기”라면서 “최소한 10년 이상 구조조정을 거쳐야 가능할 텐데, 그 사이 대다수 농민들은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정부의 바람대로 올해 농식품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해도 신선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농식품 수출 확대가 과연 농업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들린다. 지난해 농식품 품목별 수출실적을 살펴보면 담배, 설탕, 커피, 라면, 소주, 비스킷 등 가공식품이 신선농산물 수출액을 무려 4배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정은 올해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농식품 수출액(76억9000만 달러)에는 비타민B2 등 식품첨가물 가운데 식용으로만 사용되는 품목이 새롭게 통계에 포함됐다. 지난해 식품첨가물 수출액은 4억1000만 달러였던 반면, 수출 주력 농산물인 김치는 1억400만 달러, 인삼류는 1억8900만 달러, 채소류는 1억7800만 달러, 화훼류는 9000만 달러, 과실류는 1억9900만 달러, 버섯류는 3800만 달러에 그친 상태다.

이들 수출 주력 농산물 대부분이 수입 농산물을 사용하는 가공식품으로 국내 농업성장이나 농가소득에는 파급효과가 거의 없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농식품 수출 관계자들은 신선농산물 수출전선에서 가장 큰 문제가 과당경쟁이라고 밝힌다. 업체별로 심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덤핑 수준에 수출을 하는 경우도 나타나 결국 ‘제 살 깎아 먹기 식’이라는 말이다.

또한 국내가격이 높아지면 수출을 포기하고 내수로 돌리는 농가들의 고질적인 문제도 안정적인 수출물량 확보를 위해 시급히 개선돼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일본·중국·동남아 지역에 집중된 수출시장이 올해는 얼마나 다변화할지 눈여겨볼 대목이다.


1억이상 고소득 농가 급증 “그래도 희망은 자란다”
그렇다면 한국 농업의 미래는 과연 ‘잿빛’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직 소수에 머물고 있지만 성공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지난해 전라남도에서 1억원 이상 고소득을 올린 농업인이 2753 농가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구제역과 AI, FTA 등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 농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증가 등으로 농가 경영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난 2010년 2014명보다 37%인 739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이는 농가들이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과 함께 전남도와 시군의 친환경농축산업 육성, 품목별 조직화와 규모화, 1시군 1유통회사 육성정책 등을 통한 농업경쟁력 제고사업이 농가소득 증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1억 이상 고소득 농가 중 친환경농업 실천농가 수가 지난 2010년 575농가(전체의 29%)에서 지난해 942농가(전체의 34%)로 늘어났다.

고소득을 올린 농업인들은 오직 한길을 걸어오면서 창의적인 연구와 노력으로 고급화, 차별화를 통해 성공을 이뤄 다른 농업인과 농업에 종사하고자하는 젊은이들에게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돈을 벌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고소득을 올린 농가는 분야별로 축산이 46.1%인 1269명으로 가장 많았고 식량작물과 채소분야가 각각 27.8%와 11.2%인 765명과 308명, 과수 142명, 가공유통분야가 118명, 특용작물 51명, 화훼 30명 순이었다.
소득 규모별로는 1억원 이상 2억원 미만이 82.4%인 2천 270명, 2억원 이상 10억원 미만이 473명, 10억원 이상 소득을 올린 농업인도 10농가나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진농업 국가들을 잘 벤치마킹하면 농업 수출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들도 있다.
조기심 농산무역 대표는 “쌀에 집중된 한국 농업이 토마토 개발에 나서면 일본 시장에서 5조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서 “일본시장 개척을 지원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지난달 16일 농식품부가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2012년 업무 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였다.

조 대표는 “의류사업은 상당한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판매하지만, 농업은 생산자 위주로 생산해 판매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면서 “새로운 품목으로 거대 시장인 일본시장 진출을 준비하면 더 큰 농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의류사업에서 농업으로 전환해 연간 5000만 달러의 파프리카 수출 시장을 개척한 여성 농업인이다.

‘규모의 경제’ 위한 구조조정으로 환골탈태를
한국 농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젊은 세대가 도시보다 높은 소득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고 노인들이 지키는 농촌이 아니라 아이들이 뛰노는 농촌이 아닐까? 이런 농촌을 만들고 부자 농업인들이 많이 배출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지원만으로는 어렵다. 농업 스스로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농촌문제 전문가들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얘기할 때 ‘규모화’나 ‘구조조정’ 등을 말했다. 미국 농업처럼 일정면적의 규모화로 생산 단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농업인구의 자율적인 조정을 통해 보다 경쟁력 있는 농업인 육성에 나서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최근 귀농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촌과 농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도시에서 체득한 경쟁력을 농업과 농촌에서 제2 인생을 일구는데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2012년 한국농업은 이렇게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섰고, ‘부농의 꿈’도 영글어 가고 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