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180만명에 이르는 연체 채무자에게 금융사를 대상으로 채무조정 협상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안이 나올 예정이다. 협상 과정에서 채무자를 지원하는 채무조정서비스업도 새롭게 도입된다.

금융위원회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손병두 부위원장 주재로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 등을 담은 소비자신용법 제정 방향을 밝혔다.

금융위는 우선 채권자·채무자 간 채무조정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빚 독촉으로 연체금을 회수하는 하는 구조에서 시장 친화적인 채무상환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채권금융회사는 연체채무자가 채권자(금융사)에 채무조정 협상을 요청하는 경우 이에 응할 의무를 부과했다. 일단 채무자가 채무조정 협상을 요청하면 채권자의 빚 독촉은 금지된다. 심사 결과를 일정 기간 내 통보할 의무도 진다.

채무조정의 내용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개별 사정을 감안해 자율적으로 협의 결정할 수 있다. 채무의 상환유예와 감면, 분할 상환 등이 협의의 대상이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과 같은 제도적 채무조정 절차로 이행된다. 

◆ 채무조정서비스업 도입...시효 다가온 채권, 원칙적으로 소멸시킬 것

원활한 채무조정 협상 진행을 위해 채무자 편에서 채무조정 협상을 돕는 채무조정서비스업도 신규 도입한다. 채무조정서비스업은 미국 등 국가에서 이미 일반화된 업종으로 알려졌다. 주로 시민단체와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종사하고 있다. 

채무조정서비스를 받는 채무자는 90일 이상 연체된 개인채무자다. 금융위에 따르면 연체 채무자는 전체 금융채무자 약 1900만명 중 약 10%인 180만~190만명 수준이다.

소멸 시효를 기계적으로 연장하는 관행 역시 개편하기로 했다. '원칙 연장, 예외 완성' 관행을 '원칙 완성, 예외 연장'으로 바뀐다. 5년 동안 법 조치로 채권을 회수하지 않은 채권은 채권이 없어지도록 놔 둔다는 것.

상사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다. 금융사들은 법원의 지급명령 절차를 통해 소멸시효를 10년씩 계속 연장했다.

◆ "가치 없는 빚 증서, 떠돌아 다니지 않도록 한다"

금융사들은 통상 연체 1년 후에는 부실채권을 손실처리(상각)하고 추심업자들에게 채권을 판다. 매입추심업자들은 이미 상환능력을 상실한 채무자에게 더 가혹한 추심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효가 끝나 죽은 채권을 소송을 통해 연장시키는 것도 이 가운데 하나다. 

금융당국은 채권추심 시장의 규율도 강화하기로 했다.

빚 독촉을 추심회사에 위임하거나 채권을 판 경우라도 원래 채권 보유 금융사가 관리 책임을 지속적으로 지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번 TF 논의 결과를 토대로 내년 1분기 중 금융권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및 소비자신용법 제정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기본방향만 밝힌 것이고 세부방안은 내년 1분기에 내는 것이다.

현재 대출계약 체결 부문에 집중된 대부업법에 연체 후 추심·채무조정, 상환·소멸시효 완성 등 내용까지 추가한 개념이 소비자신용법이다.

금융당국은 이 법안을 2021년 하반기에 시행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손 부위원장은 "국가 경제 발전 수준과 금융산업의 성숙도를 고려할 때 이제 우리도 포괄적인 소비자신용법제의 틀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약자로서 채무자에 대한 일방적인 보호규범이 아니라 채권자와 채무자간 상생(win-win)을 위한 공정한 규칙으로서 사회 전체적인 비용을 절감하는 시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