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가 재수(?) 끝에 멋진 전원주택에 안착했습니다.
일찍부터 은퇴 후 지방에서의 전원 삶을 생각해 왔었지요. 여러 생각하다가 고향 근처로 낙점하고 배 밭을 샀습니다. 장차 집도 짓고, 텃밭도 가꿀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근처 고향을
지키던 모친은 몸이 불편해 형 집이 있는 타지로 떠났고, 동행을 기대했던 집사람은 마땅찮아하고.. 그렇게 속을 끓이는 사이에 배나무를 정리한 집 후보지는 잡초 천국이 되어 들어가기조차 어려운 지경이 되었지요. 궁즉통이라 했나요? 긴 고민 끝에 절충점을 찾았습니다.
서울서 1시간 이내 거리의 제 2 후보지를 찾았습니다. 집 사람도, 자기도 서울에서 일 볼만한 거리가 일단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마을 동네가 그대로 유지된 정겨움에 끌렸다고 합니다. 서울 집을 처분하고 올 여름 시골로 이주했습니다. 가을을 대비해서 여러 작물을 심고, 그걸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전화도 잘 안 받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서울서 잠을 잘못 자고했는데, 지금은 꿀잠을 잔다고 하네요. 그러며 이웃 자랑도 합니다. 얼마 전 집을 비운 사이에 집 앞에 쌀 한 가마니가 놓여있더랍니다. 다음날 아침 뒷집 어른을 만나니 막 추수한 쌀이니 맛 좀 보라고 했다지요. 담 없이 사는 좋은 이웃들이 사방으로 있는데 서로 걱정도, 즐거운 일도 나누며 살고 있는 겁니다. 농촌에 어울리는 선한 이웃이라 할까요?
그즈음 집에서 이십여 분 거리에 농장을 준비한 한 선배 얘기도 들었습니다.
평소 지론에 따라 집에서 이십여 분내 거리에 농막을 지어놓고,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매주 네 번 이상씩 그곳으로 퇴근해 농사도 짓고, 산책도 하며, 훗날 지을 주택도 그려본다는 거죠. 서울서 먼 거리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기도 버거워 전원주택 관리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런 면에서 아주 성공적이라고 만족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다 좋은데 옥에 티가 있다고 슬쩍 얘기합니다. 전원주택 부지로 들어오는 길이 다소 불편했는데, 길가 초입에 있는 그럴듯한 주택의 주인장이 욕심을 부려 그 길을 이용해야하는 선배를 포함한 이십여 명이 곤욕을 치루었다는거죠. 길을 좀 넓히는데, 합리적인 가격으로 양보를 기대했지만, 소위 알박기 식으로 나와 소송을 통해 겨우 구부러지고, 좁은 길을 확보했다네요. 그 길을 갈 때마다 그 영감을 향해 투덜 투덜..
서울서 가까운 거리라는 조건을 취하고 보니, 아직 욕망의 물이 덜 빠진 민낯을 만난 걸까요?
좋은 이웃 만나 행복해하고, 욕심 많은 이웃 만나 곤욕을 치루는 것을 보니 이십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길이 나는 바람에 고향 선산에 있는 조상 묘를 이장해서 현재 부모님이 사는 도시 근교에 가족묘를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럴 계획으로 부친께서 땅을 산겁니다. 그걸 구경하러 처음 갔는데, 부지의 가장 높은 곳 가운데 부분에 무연고 묘 두 기가 있는 겁니다. 이 거래를 추진한 분에게 그것을 당연히 옮겨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부친 왈
‘그냥 그대로 두려한다. 살아서도 친구 맺으려 하는데, 죽어서 이웃하며 친구하면 되지 무얼 번거롭게 하겠나?’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추석이 있는 가을을 맞을 때,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풍성한 가을, 풍요로운 추석..
결국 결실이라는 물리적인 것 뿐 아니라, 마음 밭의 풍요, 성숙함 등이 그대로 비추이는 게 가을다움인 것을 또 알게 됩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 가을다움이 들어차는 게 나이 값 하는 거고, 제대로 나이 드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