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무선 이어폰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연결하는 형태의 유선 이어폰 시장이 아직은 커다란 존재감을 발휘하는 가운데, 무선 이어폰 시장은 아직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음에도 각 제조사들의 발 빠른 전격전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각자의 전략과 발전 로드맵, 나아가 모두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에어팟이 보인다. 출처=갈무리

춘추전국 시대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무선 이어폰 시장 규모는 출하 기준 4600만대 수준이었으나, 2020년에는 1억 2900만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 연장선에서 다양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무선 이어폰 시대의 강자는 애플의 에어팟이다. 2016년 9월 아이폰7과 함께 등장했으며 오픈형으로 제작됐다. 가격은 21만9000원이며 무게는 4g이다. 처음 등장했을 당시 '담배를 귀에 꽂은 것 같다'는 비야냥을 받았으나 폭발적으로 몸집을 불려 지금은 시장 최강자로 군림하는 상황이다. 지난 2분기 기준 에어팟은 글로벌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 5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다만 음질적인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리포트 평가 결과 평점 56점에 그쳐 무려 49위로 쳐지는 굴욕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어팟이 글로벌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3월 갤럭시 버즈로 무선 이어폰 시장 공략의 시작을 알렸다. 15만9500원이며 커널형으로 제작됐다. 색상도 블루와 화이트, 옐로로 꾸며져 에어팟과 비교하면 선택지가 다양한 편이다. 기능은 이미 인정받았다. 컨슈머리포트 평가 결과 음질 평가에선 유일하게 '엑설런트(Excellent)' 등급을 받아 1위에 올랐다. 시장 점유율은 8% 수준이다.

갤럭시 버즈는 하만의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AKG의 음향 기술로 원음에 가까운 풍성한 사운드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 갤럭시 버즈가 착용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LG전자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0년 처음 등장한 넷밴드형 블루투스 이어폰 톤플러스의 후속작인 톤플러스 프리를 지난 1일 출시했다. 톤플러스의 경우 넥밴드형으로 블루투스와 호환되지만 기기와 귀를 연결하는 '라인'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톤플러스 프리는 LG전자의 첫 무선 이어폰인 셈이다.

명품 오디오 제조사 메리디안 오디오(Meridian Audio)의 신호처리 기술과 고도화된 튜닝 기술(EQ, Equalizer)을 적용했다. 이어폰을 보관·충전해주는 케이스는 자외선을 활용한 UVnano 기능을 지원하며 음성 마이크와 소음제거 마이크를 탑재했다. 방수 기능을 갖췄으며 블랙과 화이트 색상을 지원한다. 28일 출시되며 이어서 화이트 색상 제품도 11월에 순차 출시된다. 출하가는 25만9000원으로 다소 고가다.

아마존도 무선 이어폰을 출시한다. 에코 버즈가 주인공이다. 보스(Bose)의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지원하며 역시 알렉사와 호환이 된다. 알렉사 앱에서 음성 명령으로 마이크를 끌 수 있는 기능도 지원된다. 가격은 129.99달러다. 이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양한 ICT 기업들이 무선 이어폰 시장에 속속 진입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을 중심으로 무선 이어폰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중국 샤오미 등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웨어러블 경쟁도 빨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무선 이어폰 기기의 경쟁이 주로 음향기기 업체 등을 통해 전개됐다면, 이제는 스마트폰과의 강한 연결성을 바탕으로 스마트폰 제조사 중심의 경쟁으로 재편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 에코 버즈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무선 이어폰에 꽂히는 관심, 왜?
각 제조사들이 무선 이어폰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자 환경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1979년 일본은 최초의 워크맨인 TPS-L2를 출시한다. 1960년대 필립스가 비슷한 개념의 디바이스를 출시하기는 했으나 잦은 고장과 저질의 음성기능으로 외면을 받은 상태에서, 소니의 고품질 디바이스 워크맨은 등장과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녹음 기능이 없는 재생 전용 기기에 충실하면서도 고음질의 스테레오 음향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워크맨은 단순한 음향재생기기가 아닌, 사용자 경험의 비약적 성장을 이끈 상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예전에는 음악을 들으려면 대형 기기가 설치된 특정 장소를 찾아가거나, 혹은 두 손을 이용해 디바이스를 조작해야 가능했다. 그러나 워크맨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귀에 이어폰을 장착만하면 두 손이 자유로웠다. 이른바 멀티 태스킹이 가능해진 셈이다.

무선 이어폰은 워크맨에서 시작된 시공간의 초월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멀티 태스킹의 한계를 더욱 비약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다. 거추장스러운 선, 즉 라인을 없애면서 사용자의 활동반경이 더욱 넓어지고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무선 이어폰의 등장은 멀티 태스킹의 확장에 있어 무한에 가까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기의 경험이지만 그 차이가 주는 비전은 결정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인공지능과의 결합이 커다란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에코 버즈를 출시하며 인공지능 알렉사와의 결합을 시도했다. 이는 웨어러블에 인공지능을 탑재해 전체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큰 그림의 일환이며, 이를 바탕으로 초연결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넘어 다양한 디바이스에 자사의 인공지능을 탑재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시도다.

에코 버즈와 함께 공개된 다양한 디바이스에도 비슷한 전략이 숨어있다. 아마존의 스마트 안경, 에코 프레임스(Echo Frames)가 눈길을 끈다. 구글 글래스와 같은 스마트 안경이지만 시각보다는 청각에 집중했으며 디자인은 일반 안경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안경 프레임에 마이크 2개, 스피커 4개를 장착했다. 여기에 음성 명령으로 알렉사를 호출할 수 있다. 스마트 반지 에코 루프 (Echo Loop)도 알렉사와 블루투스 기능이 연동된다.

중국의 샤오미가 저가의 디바이스에 자사의 미유아이 소프트웨어를 넣어 방대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처럼, 아마존도 인공지능 알렉사를 일종의 운영체제로 구축해 초연결 생태계를 만들며 그 수족으로 웨어러블을 총동원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에코 버즈 등 다양한 디바이스에 알렉사가 탑재되는 방식으로 로드맵이 전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후 아마존 외 다양한 ICT 및 제조사들도 이러한 전략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각 제조사의 인공지능 전략이 스마트폰에 탑재되며, 조만간 무선 이어폰 기기에도 비슷한 충돌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빅스비 생태계가 갤럭시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를 비롯해 갤럭시 버즈에 스며들고, 애플의 시리 생태계가 아이폰은 물론 에어팟2를 묶는 방식이다. 이는 추후 스마트홈 전략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글로벌 무선 이어폰 시장의 확장도 제조사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지난해 역성장을 시작한 상태에서 중저가 라인업의 보급이 빨라지고 있으나, 중저가 라인업은 프리미엄 라인업과 비교해 수익률이 낮다는 지적이다.

▲ LG의 톤플러스 프리가 공개되고 있다. 출처=LG전자

각자의 전략은?
무선 이어폰이 사용자 경험의 무한한 확장, 나아가 인공지능 탑재를 통한 초연결 생태계 구축의 선봉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각 제조사들의 다양한 전략도 눈길을 끈다.

애플은 iOS라는 매력적인 생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미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하드웨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애플TV 플러스 등 구독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한편 철저하게 자사 플랫폼 중심의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아이폰7 당시 다소 무리할 정도로 보이는 과격한 속도로 에어팟을 출시한 것도, 결국은 '우리의 생태계가 표준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당연히 에어팟은 iOS와 애플 하드웨어 플랫폼 생태계에서 출발하며 그 연장선에서 강력한 내적 생태계 구축을 지향한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삼성전자도 비슷한 전략을 추구할 전망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스마트워치 등에서 일정정도 자사 운영체제인 타이젠을 강력하게 추구하기 때문에, 인공지능 빅스비와의 시너지를 조심스럽게 타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빅스비의 외연이 크게 확장되고 타이젠의 선순환 생태계가 구축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LG전자는 일단 오디오 기능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가격 자체가 타사의 무선 이어폰보다 높은 상태에서 본연의 경쟁력인 음질 가능성에 집중해 대중에 어필한다는 각오다. LG전자는 인공지능 등에서 일종의 오픈 생태계를 추구하고 있으며, 당장 자사의 강력한 내적 생태계를 구축할 능력은 부족하다. 그런 이유로 현실적인 측면에서 음원 경쟁력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아마존은 디바이스 제조에 있어서는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한 바 있다. 야심차게 파이어폰을 출시했으나 성공적인 판매고를 올렸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그 외 하드웨어 단말기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구글과 애플이 장악한 모바일 생태계 아성에 도전하며 단독 운영체제 로드맵에도 시동을 걸었으나 제대로 된 한 방은 없었다.

어려움이 이어졌으나 아마존은 하드웨어 제품군 출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존은 결국 저가의 하드웨어 플랫폼에 자사의 알렉사 생태계를 연결, 이를 통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융합 전략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이커머스 등 다양한 인프라를 붙여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