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국민당의 총선 승리

인구 880만 명에, 1인당 GDP 5만 달러 수준인 강소국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지난 9월 29일 일요일, 총선을 실시했다. 이번 총선은 집권 국민당과 연정했던 극우 자유당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전 부총리의 부패 동영상 파문 때문에 실시됐다.

슈트라헤 전 부총리는 러시아 측으로부터 후원받고 이권을 몰아주기로 약속했다. 문제는 이 동영상이 지난 5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의해 공개된 것. 오스트리아 여론은 악화됐고, 결국 견디다 못한 국민당은 자유당과 연정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위기에 몰린 자유당은 야당과 합세해, 국민당을 이끌던 제바스티안 쿠르츠 전 총리의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슈트라헤 전 부총리가 저지른 악행의 오물을 쿠르츠 전 총리가 뒤집어쓴 꼴이 되고 말았다. 하여튼 쿠르츠 전 총리만 우습게 되었다.

쿠르츠는 전 총리는 순식간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단, 제2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불신임으로 쫓겨난 첫 번째 총리가 됐다. 더불어서 525일 재임이라는 최단명 총리의 불명예도 뒤집어썼다. 쿠르츠 전 총리는 위기를 맞았다.

총선 직전, 오스트리아 여론은 쿠르츠 전 총리와 국민당에게 좋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잘못한 것은 자유당의 슈트라헤 전 부총리였는데, 정세는 연정 파트너 국민당과 쿠르츠 전 총리 쪽으로 불리하게 움직였다. 여론은 그렇게 알다가도 모르게 흘러갔다.

총선 전, 국민당은 참패하라는 관측이 많았다. 슈트라헤 전 부총리의 악행을 방치한 책임을 쿠르츠 전 총리와 국민당에게 물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지난 9월 29일 오스트리아 총선, 하지만 결과는 국민당의 선전으로 나타났다.

국민당을 승리로 이끈 쿠르츠 전 총리

엔지니어 아버지와 그래머스쿨 교사 어머니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난 쿠르츠 전 총리는 2003년 17살의 나이로 국민당에 입당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기성 정치인들과 경쟁하면서, 국민당원 생활을 이어나갔다. 정치 입문이 엄청나게 빨랐다.

2008년, 22살에 국민당 청년 대표가 되었고, 빈 대학 법학과를 중퇴하고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돌입했다. 5년 뒤인 2013년, 27살의 쿠르츠 전 총리는 청년 대표들 100%의 지지를 받고 청년 대표 의장이 되었다. 그 사이 23살이던 2009년부터 30살이던 2016년까지 빈 시의회 의원을 역임하면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내무부 소속 사회통합 정무차관을 지냈다. 그리고 2013년 27살에는 베르너 파이만의 대연정 내각에서 외무장관에 올랐다. 쿠르츠 전 총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널리 알려진 계기였다.

쿠르츠 전 총리는 31살이던 2017년, 국민당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총선을 이끌어, 국민당을 1당으로 만들었다. 국민당은 총 유권자의 31.5%를 획득했다.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일이었다. 쿠르츠 전 총리는 자유당과 연정을 이룩한 뒤, 총리로 취임했다. 그때 쿠르츠 전 총리의 나이는 31살. 전 세계 국가 원수들 중 최연소였다.

쿠르츠 전 총리가 선택한 연정 파트너 자유당은 안톤 라인트할러가 주도해 1956년 만든 정당. 나치 SS 친위대에서 복무한 전력이 있는 라인트할러의 영향 탓으로, 자유당 소속 정치인들은 나치 찬양과 인종 차별 발언 등으로 여러 차례 물의를 빚은 전례가 있었다. 결국 그러저런 상황 속에서, 총선을 또 치르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쿠르츠 전 총리의 선거 전략

쿠르츠 전 총리는 타고난 선거 전략가이다. 2019년 올해, 33살 쿠르츠 전 총리는 벌써 2번이나 당 대표로 나서 총선에서 승리했다. 게르만 후손이면서도, 인구 경쟁력에서 독일에게 뒤져있는 오스트리아는 노쇠하고, 고답적인 느낌이 드는 나라.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인 쿠르츠 전 총리가 취임한 이후에 상황은 달라졌다.

쿠르츠 전 총리는 외무장관 시절부터 눈에 띄는 역동성을 보였다. 장관 신분이지만,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다녔다. 또 머리는 반듯하게 넘겼고, 노타이 차림으로 진취적인 이미지를 보여줬다. 취미는 암벽 등반과 산악자전거 타기. 쿠르츠 전 총리는 노인 국가로 불리던 오스트리아, 노인 정당이라던 국민당 이미지를 바꿨다.

쿠르츠 전 총리에게 위기로 작용했던 이번 총선은 결과적으로 국민당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선거 전까지, 국민당은 전체 의석 183석 중에서 61석을 확보했던 아슬아슬한 1등. 그러나 이번 선거로 10석 더 늘어나서 71석이 되었다.

선거 전까지, 쿠르츠 전 총리의 선거 전략은 총선의 빌미가 된 자유당과의 차별화를 내세우거나,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이주민들에 반대하는 반 난민정책을 강조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 브렉시트에 대한 반감을 피력하며, 강력한 유럽연합 지향 자세를 취할 수도 있으리란 평가였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나타는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쿠르츠 전 총리는 정치나, 경제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았다. 대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국민당이 제1당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만 강조했다. 그 결과, 국민당은 37.1%를 득표했고, 무난하게 1당을 유지했다. 사회민주당이 22%, 자유당이 16%, 녹색당이 14% 각각 뒤를 이었다. 손해를 본 것은 자유당, 녹색당은 3배 이상 도약했다.

국민당의 선전을 통해 확인하는 유럽 정치 지형의 변화

쿠르츠 전 총리는 연정을 통해서, 재집권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정 파트너로는 극우 정당 사회민주당은 어렵겠지만, 한 차례 연정 호흡을 맞췄던 자유당이나, 환경 문제에 집중하는 녹색당 중 어느 쪽도 가능하다. 이제 국민당의 선택만 남은 상황이다.

세계가 오스트리아 총선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추세가 바로 격랑의 위기에 빠진 EU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딜 브렉시트를 선도하는 존슨 총리의 영국, 신당 창당을 통해 정권을 창출한 마크롱 대통령의 프랑스, 비록 보수 연정이 깨졌지만 여전히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을 통해 보수의 가치를 이어가는 이탈리아, 겨우 선거에서 이겨 보수 가치를 유지하는 메르켈 총리의 독일. 형태와 방식은 달라도, 지금 EU 국가들은 보수 정당이 집권하거나, 연정을 통해 보수 정당이 집권하는 중이다.

보수와 진보는 국가 우선이냐, 국민 우선이냐의 가치를 놓고 격돌한다. 그런데 유럽 국가의 국민이 보수 정당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렉시트가 시발이 되어, EU 붕괴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지금 국가 존립의 목표를 앞세우고, 인권이나, 분배와 같은 국민 우선적 가치를 뒤로 미루고 있다.

10월 31일 목요일, 노딜 브렉시트를 추진하겠다는 존슨 총리로 인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은 한치 앞 EU의 미래를 전망하지 못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쿠르츠 전 총리의 국민당이 선전한 것은 기성 정치방식으로는 변화하는 유럽 정세에 대처하기 힘들다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보수 정당이 집권하는 유럽 국가를 보면, EU의 미래는 불안하다. 보수 정당이나, 보수 연정의 공통된 특징은 국익을 위해서는 양보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