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현대기아차가 강렬한 모빌리티 본능을 보여주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등장, 나아가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로 이어지는 데이터 기술력의 고도화와 이에 따른 스마트시티 시대가 조금씩 열리는 가운데 차세대 초연결 플랫폼인 자동차에 대한 현대기아차의 접근이 사뭇 달라지는 분위기다.

다만 자율주행차 및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이끄는 글로벌 기업들은 ICT 기업의 경우 플랫폼 비즈니스 본능을, 완성차 업체들은 다양한 기술 경쟁력을 체화하는 방향으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현대기아차는 공격적인 모빌리티 전략을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 결정적 한 방은 나오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현대차

무서울 정도로 공격적이다
현대기아차는 지금 변신중이다. 2023년까지 6조4000억원을 투자해 모빌리티 업체로의 극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선 수석 부회장은 지난해 9월 3대 전략 방향으로 Clean Mobility(친환경 이동성)와 Freedom in Mobility(이동의 자유로움), Connected Mobility(연결된 이동성)를 제시한 바 있다. 사실상 모빌리티의 모든 것을 차지하겠다는 의지다.

모빌리티 업체로의 변신의지는 강력한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당장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월 싱가포르의 그랩에 300억원을 투자했고 그해 7월에는 메쉬코리아에 225억원, 중국 임모터에 60억원을 투자했다. 이어 8월에는 인도 레브에 150억원을, 11월에는 싱가포르 그랩에 추가로 3033억원을 투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3월에는 인도의 올라에 약 3700억원을, 4월에는 코드42에 20억원을 투자했다. 7월에는 KST모빌리티에 50억원을 연이어 투자했다.

지난달 24일에는 미국의 자율주행차 전문 기업인 앱티브와 만났다.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것이 골자며,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하고 인간중심에 기반하는 완벽한 ‘이동의 자유(Freedom in Mobility)’를 실현해 고객가치를 높이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한다는 설명이다.

▲ 앱티브와의 조인트벤처 협약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현대차

신설 합작법인은 2022년까지 완성차 업체 및 로보택시 사업자 등에 공급할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며 기존 앱티브의 자율주행 연구거점 외에도 추가로 국내에도 자율주행 연구거점을 마련함으로써 세계적인 자율주행 기술력이 국내에 확산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두 기업은 나아가 자율주행 전문기업 설립을 통해 전세계에서 운행이 가능한 레벨 4 및 5 수준의 가장 안전하고, 최고 성능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개발에 나선다는 각오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번 협력은 인류의 삶과 경험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자율주행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함께 전진해나가는 중대한 여정이 될 것”이라며 “자율주행 분야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앱티브와 현대차그룹의 역량이 결합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해 글로벌 자율주행 생태계를 선도해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앱티브 케빈 클락(Kevin Clark) CEO는 “이번 파트너십은 ADAS를 비롯한 차량 커넥티비티 솔루션, 스마트카 아키텍처 분야 앱티브의 시장 선도 역량을 보다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력과 연구개발 역량은 자율주행 플랫폼의 상용화를 앞당기기에 최적의 파트너”라고 언급했다.

1일에는 기아자동차와 SK, LG, CJ는 코드42에 총 300억원을 전격 투자했다. 기아자동차가 15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도 대형 모빌리티 기술 스타트업이 탄생하게 됐다.

코드42는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의 송창현 대표가 올해 초 설립한 자율주행 TaaS 기업(ATaaS)이다. 송창현 대표는 HP,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에서 다양한 기술 개발 업무를 거쳤으며 이후 2008년에 네이버에 합류, CTO 및 네이버랩스의 CEO로 활동한 바 있다. 송 대표가 네이버를 퇴사했을 당시 정 수석부회장이 직접 영입을 시도했을 만큼, 국내 ICT 업계에서 송 대표의 위상은 높다는 분석이다.

송창현 대표는 “이번 투자는 코드42가 갖춘 탁월한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성사되었으며, 투자사들이 보유한 여러 산업에 걸친 서비스 및 인프라와의 시너지를 통해 차세대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Pre-A라운드를 기점으로 UMOS(유모스)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 다가오는 자율주행 시대에 최적화된 도시 교통 운영 방식과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 코드2에 대한 투자가 이어진 후 기념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코드42

한 가지 아쉬움, 플랫폼 비즈니스
현대기아차의 무서운 모빌리티 질주가 시작됐으나, 일각에서는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고민에 대한 아쉬움도 나온다. 현대기아차가 모빌리티 변신을 시도하면서 지나치게 기술 중심의 제조 경쟁력만 확보했으며, 일부 플랫폼 비즈니스에도 관심을 두고 있으나 그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기아차가 가진 당장의 문제라기보다는, 다소 늦게 모빌리티 시장에 진입한 아쉬움이다.

현대기아차의 모빌리티 투자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시스코 및 KT와의 만남으로 기본적인 초연결 인프라 가능성은 일정부분 확보되고 있으며 자율주행기술에 있어서는 239억원을 이미 투자한 오로라, 여기에 앱티브와의 만남으로 충분한 동력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플랫폼 비즈니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ICT 온디맨드 플랫폼에 올려 공유하는 시대가 열림에 따라 완성차 업체들이 상당한 공포를 느꼈고, 그 연장선에서 완성차 업체와 ICT 기업들이 만나는 시대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시작이다. 결국 제작해 판매하는 전통적인 개념은 파괴되고 하나의 플랫폼에 다양한 이동수단을 올려 그 과정에서 실리를 챙기는 것이 플랫폼 비즈니스며, ICT 업계와 만난 완성차 업계의 숙원이자, 현대기아차의 목적이기도 하다.

현대기아차는 온디맨드 차량공유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다소 약하다. 물론 그랩과 올라에 투자하며 온디맨드 차량공유 플랫폼에 상당한 투자를 했으나, 이들은 이미 소프트뱅크의 '수족'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소프트뱅크는 한 때 우버를 견제하며 디디추싱과 올라, 그랩에 착실히 투자하며 모빌리티 연합전선을 구축했으며 최후에는 우버까지 집어삼키는 괴력을 발휘한 바 있다. 이렇게 소프트뱅크 중심의 모빌리티 플랫폼이 일종의 블록화 현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차의 플랫폼 비즈니스 역량은 다소 약하다는 지적이다. 그랩과 올라는 소프트뱅크와 현대기아차 중, 지분 현황 등을 고려했을 때 당연히 소프트뱅크와 더 협력할 전망이다.

코드42에 대한 투자도 마찬가지다. 코드42의 핵심 사업인 UMOS(유모스)는 자율주행차와 드론, 딜리버리 로봇 등 다양한 미래 이동수단을 통합해 라이드 헤일링과 카 셰어링, 로봇 택시, 스마트 물류, 음식 배달, 이커머스 등 모빌리티 서비스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을 활용한 자율주행 TaaS(ATaaS)를 목표로 하고 있다. 생태계를 조성하는 그림이지만 기술력을 중심으로 플랫폼을 촘촘히 배치했다는 점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플랫폼 비즈니스가 아닌 플랫폼 비즈니스를 더욱 강력하게 지원하는 그림이다.

▲ 미래형 콘셉트카가 보인다. 출처=현대차

전선, 플랫폼, 그리고 우군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는 현재 완성차 업체와 ICT의 만남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도요타와 혼다, 스즈키는 소프트뱅크와 만나 자율주행 플랫폼 및 조인트 벤처인 모네를 설립했다. 폭스바겐과 포드는 아르고AI에 공동투자를 단행했으며 다임러와 BMW는 완전 자율주행차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피아트크라이슬러와 오로라는 전략적 협력전선을 구축했고 BMW와 인텔, 모빌아이는 삼각동맹을 통해 자율주행차 기술을 탖니하고 있다. 구글 웨이모는 르노 및 닛산과, 중국 바이두는 도요타 및 BMW, 지리자동차와 만났다. GM은 크루즈와 만났다.

이들 중 특이한 행보를 보이는 쪽은 GM과 크루즈의 만남, 그리고 구글 웨이모와 르노, 닛산의 만남이다. 전자의 경우 GM이 크루즈를 인수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ICT 기업과의 협력을 전제로 하지만 GM은 일종의 모빌리티 내재화를 노렸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만약 코드42의 송창현 대표가 현대차에 입사했다면 비슷한 그림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글 웨이모와 르노 및 닛산의 협력은 자율주행을 넘어 플랫폼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로드맵을 보여준다. 나아가 웨이모는 일종의 콜택시 전략까지 추구하며 다양한 전략을 보여주는 중이다. 구글 웨이모와 만난 르노 및 닛산의 행보에 현대기아차가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의 공격적인 모빌리티 전략이 가동되고 있으나 수소차부터 자율주행, 그 외 기술 전반에 대한 전선이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공격적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마지막으로 앱티브 및 강력한 우군을 확보했으나, 기술 시너지 측면에서 대단위 플랫폼을 함께 조성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우군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한 발 늦게 모빌리티 업계에 진입했으나 공격적인 의지를 숨기지 않는 상황에서, 더욱 냉정한 분석을 통해 '나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