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8월 28일부터 '첨단재생바이오법'이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출처=삼성바이오에피스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단재생바이오법)이 내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년 전부터 환자 중심의 혁신적 치료법을 장려하기 위해 규제와 제도를 손질해왔던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시행 중인 재생의료 관련 법제도를 타산지석 삼아 첨단재생바이오법을 좀 더 다듬고 보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의료제도를 마냥 뒤쫓기보단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

현행 의료법과 약사법은 인체 세포 등을 활용하는 재생의료나 바이오의약품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재생의료 기술은 동물실험으로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이를 상용화한 바이오의약품도 합성물질 기반 의약품과 전혀 다른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같은 특수성을 일찌감치 이해한 선진국들은 별도의 법안을 제정해 안전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일반 의약품을 '식품·의약품·화장품법'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오염에 취약한 바이오의약품은 '공중보건법', 첨단재생치료제는 ‘21세기 치유법’이라는 또 다른 법안을 적용하고 있다.

이 중 21세기 치유법을 통해 의약품, 의료기기 등 의료 제품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16년 12월 제정된 이 법은 환자 중심의 의료 제품 개발을 비롯해 정밀의학 연구, 첨단재생의료 치료제에 대한 신속한 승인 허용 및 가이드라인 개발, 혁신적인 의료기기의 우선 검토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첨단재생의료치료제(RMAT) 지정 기준을 만들어 FDA의 신속 승인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중증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예비 임상 근거를 통해 미충족 의료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이라면 RMAT로 지정될 수 있다. RMAT 지정 시 신속·우선 심사, 가속승인 등 FDA 허가 관문을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혜택을 얻게 된다.

▲RMAT 지정 결과 및 요청 현황(16.12.13~18.09.12). 출처=FDA

실제로 RMAT 지정 신청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7년 31건, 2018년 47건, 올해 상반기에만 30건으로 집계됐다. 신청 건수 중 RMAT에 지정된 신약은 35.6%다. 거부는 53.4%, 보류는 11%로 나타났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은진 입법조사관은 지난 11일 공개된 '美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 관련 법률 제정의 의미' 보고서를 통해 "21세기 치료법 시행으로 재생의료요법에 대한 표준이 확립되고 미국 내 RMAT를 개발하려는 제약사들이 좀 더 수월하게 허가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법 효과가 적절히 발휘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역시 첨단치료의약품(ATMP)에 대해 별도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ATMP란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조직공학제제, 복합첨단의료제품 등으로 유럽의약청(EMA)이 시판 허가를 담당한다. 또 ATMP을 비일상적인 조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병원면제' 제도와 신속한 개발 지원을 위한 'PRIME' 제도 등을 활용해 의료제품 허가 절차를 효율적으로 단축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재생의료제품에 대한 개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신속 허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샤키가케(SAKIGAKE)' 제도를 꼽을 수 있다. 샤키가케는 신약 임상계획 승인기간을 줄이고, 해외와 일본의 시판시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아울러 위험도에 따른 재생의료 기준을 신설하고 재생의료 제품에 대한 조건기한부 허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재생의료 관련 법제도. 출처=한국바이오협회

국내 실정에 맞는 대안 마련해야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그 누구보다 신약 개발이 절실하다. 하루속히 신약 개발 소식이 전해지길 기원하지만 제풀에 지치기 십상이다. 신약 승인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직접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방법까지 고민해보지만 현행 의료법에 가로막혀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첨단재생바이오법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재생의료의 임상연구 활성화와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신속처리 지원을 통해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완화하고 전주기 안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됐다. 주요 내용은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바이오의약품의 우선 심사 ▲개발사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단계별 사전 심사 ▲충분히 유효성이 입증된 경우에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해 진행되는 조건부 허가 등이다.

특히 대체치료제가 없는 희귀질환이나 암 등 중대한 질환, 감염질환 치료제는 2상 임상만으로도 출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또 중증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 줄기세포 및 유전자치료제는 임상 연구 목적으로 시술이 가능해진다.

관련 업계는 첨단재생바이오법이 발효되면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희귀·난치병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하고 급성장하는 재생의료 시장에서 우리나라 의료기술 경쟁력을 제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안전성과 유효성이 불확실한 약이나 시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는 만큼 철저한 안전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조사관은 "미국에서도 규제 완화로 인한 환자 안전성 문제와 치료에 대한 비효율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첨단바이오의약품 허가·심사 역량 강화, 조건부 허가된 의약품에 대한 안전관리 방안 마련 등 국내 실정에 맞는 구체화된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