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유럽연합(EU)과 구글 사이에 벌어진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와 관련된 논쟁이 ICT 업계의 화두로 부상했다. 사실 새로운 논쟁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현안 중 일부에서 법적인 결론이 났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 구글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구글

잊혀질 권리, 유럽의 선택
잊혀질 권리는 개인이나 기업이 온라인에 남아있는 자기의 정보를 삭제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2014년 잊혀질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하며 관련 논란이 시작된 바 있다.

다양한 프레임 전쟁이 이어진 가운데, 프랑스 정보자유국가위원회(CNIL)는 2015년 잊혀질 권리가 유럽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웹사이트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결하는 한편 이와 관련해 구글에 2016년 10만유로라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글은 지난달 11일 ECJ에 불복 소송을 냈고, 결국 ECJ는 지난달 24일 잊혀질 권리가 EU 국경을 초월해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판결했다.

잊혀질 권리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권리며, 또 논쟁의 여지가 많은 프레임이다. 개인이나 기업 입장에서 자기의 숨기고 싶은 치부나 잊고싶은 과거를 누군가 온라인에서 지속적으로 '구경'한다면 그 자체가 지옥이기 때문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영원한 고통의 나선'이다. 만약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는데 진심으로 뉘우치고 이를 반성했다면? 그런데 자기의 과거가 여전히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다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잊혀질 권리는 양면의 동전과 같다. 잊혀질 권리로 인한 부작용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데이터가 잊혀지지 않았을 경우에 거둘 수 있는 명확한 장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잊혀질 권리가 포괄적으로 받아들여지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강압적인 권력의 온라인 전이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잊혀질 권리 자체는 대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과 기업의 '권리'를 넘어 일종의 온라인 생태계 존속에 대한 근원적인 지점과 관련이 있다.

이미 사례는 차고 넘친다. 당장 EU는 잊혀질 권리를 기점으로 구글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으며 이는 시장 독과점 문제로 옮겨가 2016년 구글에 대한 10억유로의 과징금 처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 기업 포털 사이트 구글에 대한 유럽의 반감이 발작적인 '반 구글 현상'을 끌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잊혀질 권리가 유럽연합의 무기로 전락하는 분위기가 연출된 순간이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미국 기업인 구글의 자국 시장 진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고, 그 결과 잊혀질 권리 논쟁을 무기로 대대적인 압박 전략을 구사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ECJ가 구글에 대해 잊혀질 권리에 대한 EU 국경 초월을 부당하다고 본 점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잊혀질 권리의 필요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최소한 유럽연합에서 해당 권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명분도 얻는 한편, 잊혀질 권리가 온라인 생태계를 필요이상 압박하면 곤란하다는 구글 등 ICT 업계의 입장도 일부분 반영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절대선'이 아니지만 '절대악'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ECJ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무조건 때리고 본다..대한민국 정치
유럽에서 잊혀질 권리 및 이와 관련된 개인 및 기업의 권한과 ICT 기업의 반발을 아우르는 운용의 묘가, 비록 불완전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나름의 토론을 통해 그 개념이 정립되는 사이 대한민국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ECJ가 잊혀질 권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ICT 기업의 부작용을 걷어내고 그 자체의 비전을 끌어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순간,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ICT 업계는 일단 때리고 본다'는 프레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문제삼았다. 김 의원은 "실시간 검색어(현 급상승 검색어)가 여론 왜곡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서 "정상적인 이용 행태로 볼 수 없는 검색어 입력 패턴과 이를 조장하는 행위가 다수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9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는 문재인 탄핵에서 문재인 지지로 변경됐다. 이러한 변화의 순간 매크로 등 일종의 '변칙'이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지난 8월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하게 불거지던 당시 '조국 힘내세요'라는 키워드가 다수 발견되는 장면도 역시 의심스럽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당장 지난달 5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당 미디어특별위원회 위원들은 경기도 성남이 네이버 본사를 방문해 실시간 검색어를 둘러싼 조작 의혹을 제기했으며, 지난달 11일 박성중 자유한국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은 일부 뉴스가 포털에 제시되며 댓글 및 추천 등에서 조작된 정황이 의심된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이와 관련된 법안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실시간 검색어 조작에 관련된 주장을 일축하고 있으나, 이낙연 국무총리는 일부 '부자연스럽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총리는 지난달 3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실시간 검색어 1위 논란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물론 포털 사업자가 조작과 관련된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네이버는 한 때 스포츠 콘텐츠 임의 노출 논란에 휘말렸으며, 무엇보다 뉴스 댓글을 조직적으로 공략한 사건인 드루킹 사태로 크게 휘청인 바 있다.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 개편 및 모바일 첫화면 개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실시간 검색어를 둘러싼 일부 정치권의 강공 모드는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다.

실시간 검색어가 여론의 의도적인 쏠림 현상을 유도하고 어뷰징 기사 및 마케팅 도구로 전락한 것은 사실이다. 최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는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 및 캐시슬라이드의 퀴즈 이벤트가 상당히 많이 올랐고, 이는 이용자 입장에서 상당한 불편을 초래한다.

다만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순기능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장 포털을 통해 사회 전반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고, 이와 관련한 정보 획득에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부 부정적인 이슈가 감지되고 있으나, 이를 걷어낸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압박에만 나서는 것은 '빈대 잡으려 초가 태우는 격'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관계자가 김 의원 발언을 두고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순기능이 더 많이 존재한다"고 말한 이유다.

일각에서는 실시간 검색어에 대한 오해도 있다고 본다. 실시간 검색어는 절대적인 검색량에 따라서 제공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검색빈도를 기준으로 생성된다. 절대적인 검색량이 낮아도 검색빈도가 높다면, 절대적인 검색량이 높아도 검색빈도가 낮은 키워드보다 더 높은 순위로 랭크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검색어 전쟁'을 보면 특정 키워드의 실시간 검색어 급상승 현상도 일부 이해될 수 있다. 특정 세력이 일종의 화력지원을 하면 단기간에 실시간 검색어를 띄울 수 있다는 점은 다소 부정적이지만, 이 자체를 매크로와 같은 비정상적인 작업의 결과물로만 매도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실시간 검색어에 개입하지 않지만, 명예훼손 및 욕설, 불법 검색어는 가이드 라인에 따라 제지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언제쯤...
물론 네이버도 절대선이 아니다. 플랫폼 투명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으며, 이와 관련된 명쾌한 자료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완전히 공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은 무조건 네이버 때리기만 의존하고 있다. 결국 운용의 묘, 신의 한 수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렇게 구글을 경계하고 밀어내려고 했던 유럽연합도 잊혀질 권리와 관련된 온라인 표현의 자유 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선이 아닌 '차선'의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일단 때리고 보자'는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

네이버가 정말 실시간 검색어를 자체적으로 조작하면 당연히 처벌하고 그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 나아가 실시간 검색어와 관련해 특정세력이 이를 특정 의도를 위해 활용한다면 당연히 관련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이 과정은 치밀하고 냉정해야 하며, 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은 여기에 대한 고민도 없이, 그저 때리기만 한다. ICT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