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가 일본의 이동통신 2위 업체 KDDI의 5G 통신장비 공급자로 선정됐다. 2020년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 20% 목표에 한 걸음 성큼 다가서는 분위기다. 다만 업계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반사이익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편 '갈 길이 멀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직 삼성전자는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여전히 5위에 머물러 있고, 무엇보다 KDDI에 대한 물량제공이 삼성전자 단독은 아니라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5G 장비 '야심만만'
1일 업계 일본 언론에 따르면 최근 KDDI는 삼성전자 및 핀란드의 노키아, 스웨덴 에릭슨을 5G 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했다. 2024년까지 KDDI에 5G 통신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규모는 약 20억달러다.

삼성전자의 성과는 지난 5월 이재용 부회장의 현장 방문으로 물꼬가 트렸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5월 15일부터 3일간 일본으로 날아가 쇼케이스인 갤럭시 하라주쿠를 찾아 임직원을 격려하는 한편 통신사 NTT도코모와 KDDI 본사를 방문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의 당시 방문은 5G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됐다. 현재 일본의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폰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으나, 아이폰의 5G 버전 출시는 당장 요원한 상태다. 퀄컴과의 특허분쟁을 치르며 5G 투자의 적기를 놓친데다, 협력했던 인텔이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지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부랴부랴 퀄컴과의 특허분쟁을 매듭짓는 한편 5G 아이폰을 준비하고 있으나, 이미 올해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이루며 갤럭시S10 및 갤럭시노트10에 5G 기술력을 탑재하는 한편 5G 통신 네트워크 장비 기술력까지 가진 삼성전자에 한 발 밀리고 있다.

결국 아이폰을 중심으로 하는 5G 로드맵 가동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5G 올림픽'으로 치루겠다는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삼성전자와 협력하는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5G 인프라가 상당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신년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내 신년회에 불참한 후 3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5G 네트워크 통신 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에 참석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이 찾은 5G 네트워크 장비 공장은 업계 최초로 스마트팩토리 방식이 적용됐다는 설명이다.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생산성을 높여 제조역량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가동식 현장에서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사장, 노희찬 경영지원실장 사장, 전경훈 네트워크사업부장 부사장 등 경영진과 네트워크사업부 임직원들에게 “새롭게 열리는 5G 시장에서 도전자의 자세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5G 단말기, 즉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이미 승기를 잡았다. 갤럭시S10과 갤럭시노트10은 물론 갤럭시A90과 갤럭시 폴드 모두 5G로 출시하거나 출시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5G폰의 점유율은 2020년 10%에서 2023년에는 56%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의 5G 기초체력은 튼튼한 셈이다.

▲ 갤록시노트10이 공개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여기에 5G 시장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단말기 혁신을 이루는 것을 넘어 칩셋과 장비 등 전 영역에 진출한 상태다. 이른바 원스톱 플랫폼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전력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SKT와 KT 등 국내 통신사와 AT&T, 버라이즌을 비롯한 글로벌 사업자들과도 5G 네트워크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업계 최초로 5G 표준 멀티모드 모뎀 개발에도 성공한 바 있다. 5G 장비와 단말, 칩셋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바탕으로 5G 표준 선도 업체로 부상하겠다는 각오다.

이미 성과는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의 경우 화웨이가 31.0%로 1위, 에릭슨이 29.2%로 2위, 노키아가 23.3%로 3위, ZTE가 7.4%로 4위를 달리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6.6%로 5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범위를 5G 통신장비로 좁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델오르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글로벌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는 37.0%의 점유율로 28.0%의 화웨이를 크게 따돌리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일본 5G 통신장비 시장 진출을 바탕으로 글로벌 전략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지난달 18일 이 부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가운데 현지에서 삼성전자 5G 통신장비 도입을 고려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등, 분위기 자체는 고무적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이 부회장이 일본에서 열린 세계 럭비 월드컵 2019 개막식에 참석한 것도 일본에 대한 장비공급에 따른 예우 차원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축배는 이르다
삼성전자가 일본 이동통신 장비 시장에 진입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은 멀다는 말도 나온다.

먼저 KDDI에 장비를 제공하기로 했으나 삼성전자 단독으로 물량을 공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KDDI 장비공급 규모는 약 20억달러로 알려졌으나 삼성전자가 얼마나 물량을 소화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번 공급 계약이 미중 경제전쟁에 따른 반사이익 가능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G20을 계기로 잠시 화해무드가 조성되기도 했으나, 이내 격렬하게 충돌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무역전쟁이 금융전쟁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인다. 실제로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미국은 자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을 상장폐지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 등 약 160개 중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 상태에서 이들의 전체 시가총액은 1조달러 이상이다. 만약 이들이 미국 증시에서 퇴출되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후폭풍이 예상된다.

미국은 공적연금 등의 중국 투자를 금지시키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자금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한편, 중국 기업의 해외 자금조달을 막으려는 조치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일본의 선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일본 통신사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5G 로드맵은 1위 사업자인 화웨이 등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선뜻 화웨이의 5G 통신장비를 수급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연장선에서 주요 통신장비 업체 중 중국 회사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결국 삼성전자와 에릭슨, 노키아다. 모두 KDDI와 공급 계약을 체결한 업체들이다. 일각에서 삼성전자와 KDDI의 계약을 두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5G 인프라 자체가 '엄청난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델오로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1위를 달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아직 5G 시장이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미국과 한국 중심으로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고, 한국의 경우 삼성전자가 막강한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받으며 화웨이 등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나 내달 두 나라의 고위급 실무회담 등을 기점으로 상황은 언제 달라질지 모른다.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호칸 셀벨 에릭슨엘지 최고경영자가 삼성전자 5G 통신장비 점유율 1위를 두고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5G를 포함한 전체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아직 5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최근의 착시효과에 필요이상의 의미부여를 하면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화웨이의 전략이 가동되면 삼성전자의 입지도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의 KDDI 물량 공급을 두고 성급하게 축배를 들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5G 통신장비에 대해 일각에서 기능에 우려를 보이는 장면도 중요하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은 지난달 2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삼성-화웨이 5G 장비 성능 이슈 동향을 인용, 5G 상용화 초기에 화웨이 기지국을 사용하는 LG유플러스의 속도가 삼성 기지국을 사용하는 SK텔레콤, KT보다 약 20% 빠르게 측정됐다고 밝혔다.

▲ 출처=변재일 의원실

5G 상용화 초기인 4월과 5월 사이 삼성전자와 화웨이 기지국 장비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퀄컴 모뎀칩을 사용하는 LG V50 씽큐 단말기가 화웨이 장비에 더 잘 작동하여 약 1000Mbps 속도를 냈다는 설명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모뎀칩을 사용하는 삼성 갤럭시 S10 5G는 화웨이 기지국에서 약 900Mbps 속도로 측정되었으며, 삼성 기지국에서의 속도는 약 700에서 800Mbps 수준을 보였다.

해석하기에 따라 화웨이와 연합한 LG 전체의 5G 인프라가 삼성과 SK텔레콤, KT의 기능에 앞선다는 분석이다. LG전자의 LGV50 씽큐가 5G 정국에서 갤럭시S10 5G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보여준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8월부터는 삼성전자가 기지국과 단말에 대한 SW업그레이드를 진행해 성능격차를 꾸준히 줄여 지금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KDDI 물량 공급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도 없지만, 한일 경제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도전자 정신으로 현지와의 스킨십을 통해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단 5G 통신장비를 넘어 반도체 영역에서도 삼성전자는 현재까지 일본의 경제보복에 유연한 대응을 보이는 중이다. 일본은 포토레지스트 등 핵심 반도체 소재를 삼성전자에 일부 열어주고 있으며, 최근 삼성전자는 일본에서 파운드리 포럼을 열기도 했다. 한일 경제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삼성전자의 행보가 고무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