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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여론의 맨 앞에 선 언론, 그들은 아는 만큼 쓴다
   

‘프로불참러’라는 캐릭터로 뜬 스타가 있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기 개그맨이 됐다. 한참 전에는 채소 이름을 자신의 예명으로 삼고 등장해서 얼굴을 좀 알리긴 했으나 그 존재감은 미미했다. 게다가 코미디 프로그램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한동안은 그의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심지어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당시 소위 잘 나가는 스타들 사이에서 면박만 받고 들어가기도 했다.

토크를 위주로 하는 예능 프로에서 그는 늘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캐릭터였던 파마머리와 예명까지 버리고 본명으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더니, 어느 한 대화에서 빵 터졌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스타의 길로 승승장구, 지금은 채널을 넘어서 여러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스타덤의 계기는 뜬금없는 얘기를 잘 하는 모 가수가 대화의 말미에서 ‘그런데 넌 왜 그 결혼식에 오지 않았냐?’는 지적에서였다. 대답은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결혼 소식도 들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가냐?’는 것이었다. 연예계란 참 신기한 것이어서 덕분에 ‘프로불참러’라는 캐릭터가 생겼다. 그 뒤부터는 TV에서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 같은 행사 얘기가 거론만 되면 프로불참러인 그로 연결 고리가 생겼고, 세간에 화제가 됐다.

살다 보면 연락 받고 아는 행사에도 참석이 어려울 때가 많은데, 모르는 사람들의 모르는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개그로 승화되고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연예계인가 싶다.

 

수십 장의 자료를 A4지 절반에 정리할 수 있어야

보도되는 수많은 기사를 보면 기자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세상의 크고 작은 행사나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같다. 큰 규모의 행사나 대회라면 이해가 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작은 기업의 행사 같은 것도 척척 알고 찾아가고, 행사 내용을 기사로 써 낸다. 그렇게 능력 있는 기자는 자신의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그물망도 넓게 펴서 여기 저기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정보 하나 하나에 귀 기울인다. 그 안테나와 그물망의 성능과 넓이에 따라 기사의 양질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예전에 엄청나게 세간의 이슈몰이를 했던 세녹스는 그냥 중소기업에서 파는 그렇고 그런 제품 정도가 아니었다. 국내의 대체에너지 문제, 가짜휘발유 폐해, 연료첨가제 논란 그리고 그 뒤엔 특소세 등등 걸리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때문에 10월이 가까워지면 여의도 모 호텔에 방을 잡고 국정감사를 대비하여 자료를 모으고 준비해 나갔다. 회사에서 쓰던 컴퓨터와 프린트기 등등 집기를 몽땅 옮겨서 밤낮 주야로 일을 했다.

바쁜 사장, 부사장 등 주요 경영진들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불쑥 불쑥 찾아와 격려도 하고 일에 대한 진척이나 협의도 해 나갔다. 인터넷을 통해 선진국의 에너지 관련 법, 규제안 장려책 등등에 대해 자료를 다운 받고 번역을 하고 자료를 정리했다. 한 두 줄 정도의 핵심 사안을 확인하기 위해서 수 백장의 미국 내 영문 법률을 읽고 또 읽었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 정리했던 게 책 한 권이 넘었다. 그렇게 모아진 자료를 토대로 다시금 추리고 뽑아서 요약을 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의 의원 보좌관에 자료를 넘겨주어 준비하게 했다.

국감장에서 한 두 가지 핵심 질문이라도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대부분 상경계 출신들이 많아서 화학 분야에 대해 이해를 시키는 데에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기본적인 원소기호를 마치 외계인들의 암호 정도로 받아들이기 일쑤였고, 이런 것들이 조합된 자료를 아무리 정성 들여 정리해 전달해도 도무지 진도가 나갈 줄을 몰랐다.

“의원님께서 바쁘셔서 이 많은 내용을 다 보실 수 없으니, 몇 장으로 줄여 주세요.”

국감을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에 보좌관이 요구한 내용이었다. 이미 그 자료를 준 지가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 한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힘이 빠졌지만, 그날 밤을 세우다시피 해서 내용의 전후 관계를 알 수 있으면서도 중요하다 싶은 내용들로 줄이고 또 줄여서 너 댓 페이지로 압축했다.

“의원님이 너무 바쁘셔서요, 한 두 장으로 줄이면 안 될까요?

줄이고 줄여서 핵심만 정리한 그 내용마저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거의 보름 동안 세 명이 방안에 감금되다시피 하면서 만든 내용이고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줄이고 줄여서 만든 너 댓 장의 자료도 많다는 얘기였다. 다시 줄였다.

“이거 한 장 이내로 줄이면 안될까요? 그리고 쉽게 좀 써 주세요.”

국감 질의가 당장 내일인데 전날 밤 늦게 찾아와서는 다시 요구했다. 맥이 풀렸다. 자료를 찬찬히 읽어볼 시간이 없으니, 이동하는 차 안에서라도 간단히 읽어볼 수 있도록 한 장 이내로 써주되, 보기 편하도록 글씨체를 큼직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 분량이면 가장 원론적인 내용 몇 가지 밖에 담을 수 없었고, 그런 내용이라면 애초에 몇 주 동안 그 많고 많은 자료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원래 그런 것임을. 그래도 국감장에서 한 마디가 반영이 되기는 했다. ‘우리도 대체연료에 대해 뭐 좀 해 봐야 되는 거 아닌가?’하는 정도의 질문이었고, 그것도 시간에 쫓기며 던진 질문이라 관계부처를 대표하여 나온 사람은 ‘서면으로 답변 드리겠다’로 마무리 됐다. 내용을 제대로 알 지를 못하니 뭐 하나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름 넘게 집에도 못 가고 하루에 두어 시간 쪽잠을 자며 준비했는데, 결말은 너무나 허무했다. 하지만 그런 준비과정이 있었기에, 국감은 아니어도 그 뒤 지루하게 펼쳐진 법정 공방과 치열했던 언론과의 부대낌을 감당해 낼 수 있었다.

 

많은 내용 써 둔다고 다 전달되는 법은 없어

예전에는 홈페이지나 광고 같은 데에 많은 내용을 넣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래서 신문 하단의 5단 통광고에서 왼쪽에는 이미지를 그리고 오른쪽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제품에 대한 상세 내용을 써 넣었다. 지면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구구절절 써놓았다.

당시엔 워낙 뜨거운 감자였기에 읽어본 사람들이 꽤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한 소리 듣기도 했다. 문구 한 구절이 과장된 내용이었다는 지적이었다. 그 뒤론 광고에서 힘을 뺐다. 하고 싶은 얘기를 얼마나 많이 넣느냐가 광고 효과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재삼 재사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관리하거나 새로 만들 일도 많다. 그럴 때마다 생기는 문제는 홈페이지를 백과사전처럼 만들자는 파와 유치원 그림책처럼 만들자는 사람들 간의 대립이다. 업과 관련해서는 단 하나라도 빠지는 내용이 없도록 홈페이지 메뉴의 메뉴의 메뉴를 달아서 깨알같이 넣기를 원한다. 업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라도 홈페이지에서 뭔가를 하나 찾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겨우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래야 마음이 놓인단다.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의 홈페이지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답답함은 전혀 없다. 뭔가 애써 주입시키려 하기 보다는 시원한 그림과 함께 직감적으로 와 닿게 만든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 보다는 직감적으로 함축된 한 두 마디의 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머리 속에 뭔가를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추상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이게 바로 기업이미지가 되고 사람의 기억에 훨씬 오랫동안 존재한다.

1988년 대학교 1학년 학생 기자 신분에서부터 지금까지 삼십 년이 넘게 기사를 써왔다. 언론에 보내야 하는 보도자료 역시 신문 기사와 동일하게 누가 보더라도 내용이 한 눈에 파악될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제한된 온오프라인 공간 내에서 누가 보더라도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정리해야 함이 필수다. 회사 입장에서야 혹여 몇몇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전문적인 분야의 내용을 깊이 있게 쓴 기사가 있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다. 그래서 몇 장을 넘어가는 자료로 부탁해 보기도 하지만, 결론은 너무 간단하게 반영된다.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단신 기사다.

쓰는 기자가 잘 몰라도 자료를 베껴서 그냥 써주기만 바라고 길고 장황하게 이런 저런 사업의 내용을 아무리 담아봐야 헛일이다. 행여나 기자가 자기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안들을 무턱대고 써주는 법은 절대로 없다. 아무리 많은 내용이라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한다면 한 줄도 얻을 수 없다. 아는 만큼 쓰기 때문에 알게 해야 함이 먼저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10.02  07: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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