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과 LG의 중국 제조 거점 로드맵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현지 디스플레이 제조 거점은 확대되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제조 거점은 속속 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시장의 특성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한편, 삼성과 LG의 미묘한 전략적 차이에도 집중하고 있다.

▲ 갤럭시노트10이 공개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중국 제조 거점의 빛과 그림자

현재 삼성과 LG는 중국에 다수 제조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삼성SDI는 중대형 배터리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중이다. 또 톈진에는 삼성전자의 TV 공장이, 삼성디스플레이의 스마트폰용 OLED 모듈이 제조되고 있다. 삼성SDI는 소형 배터리를, 삼성전기는 카메라 모듈을 제조하는 중이다. 이 외에도 쑤저우에는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이 있으며 후이저우에는 삼성전자 휴대폰 제조 공장이, 쑤저우에는 삼성전자 및 삼성디스플레이 제조 거점이 마련되어 있다.

LG도 다수의 현지 제조 거점을 가지고 있다. 난징에는 LG전자 세탁기 제조 공장이 있고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제조 거점이 있다. 톈진에는 LG전자 에어컨 공장이, 옌타이에는 LG전자 및 LG디스플레이 제조 라인업이 가동되는 중이며 칭다오에는 LG전자 휴대폰 공장이 있다. 쿤산, 타이저우, 후이저우에도 LG전자 공장이 존재하며 광저우에서는 LG디스플레이와 중국 현지 합작법인이 함께 공장을 운영하며 OLED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삼성 및 LG가 중국 현지에 다양한 제조 거점을 가동하는 가운데, 최근 스마트폰 제조 거점의 이동 변화가 눈길을 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달 중국 후이저우 공장의 문을 닫을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톈진 공장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후이저우 공장까지 문을 닫으면 사실상 삼성전자의 중국 휴대폰 제조 거점은 사라지게 된다. 삼성전자는 후이저우 공장의 문을 닫은 후 해당 물량을 동남아시아 및 인도 등으로 분산시킬 전망이다. LG전자는 아직 중국 칭다오에 현지 스마트폰 제조 거점을 가지고 있다.

▲ LG전자 하이퐁 공장이 보인다. 출처=LG전자

‘탈’중국보다, ‘왜 동남아’인가 질문이 핵심

삼성전자가 후이저우 공장의 문을 닫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현지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하락이 꼽힌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 내외를 오가고 있으며, 사실상 유의미한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제조 거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 후이저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 후이저우 생산법인은 2분기 매출 2조4160억원, 분기순손실 486억원을 기록하며 휘청였다. 1분기 149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선방했으나 하락세가 뚜렷하다.

중국의 인건비가 올라가며 제조 거점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더 심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23일 중국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관세압박이 높아지자 많은 기업들이 ‘탈’중국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대안으로 태국과 베트남이 부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제조거점 ‘탈’중국 현상을 두고 시장의 특성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가지는 스마트폰 제조거점 매력도 하락보다, 그 대안으로 부상하는 동남아시아 제조 거점 트렌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왜 중국을 떠나는가?’라는 질문보다 ‘왜 동남아시아로 가는가?’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LG전자의 사례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베트남은 중국 스마트폰 제조 거점 일부를 유지하면서 지난 4월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 LG 하이퐁 캠퍼스로 통합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LG전자는 “하이퐁, 평택, 창원 등 생산거점의 생산시설과 인력을 재배치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면서 “스마트폰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침체되어 있는 가운데, 스마트폰 사업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준공된 하이퐁 스마트폰 공장은 연간 600만 대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베트남 내수 및 수출용 중저가 제품을 주로 생산해 왔다. 이번 재배치에 따라 연간 생산 능력이 1100만 대로 증가된다는 설명이다.

동남아시아가 제조 거점으로 각광을 받은 것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최근 미중 무역전쟁을 통해 이러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풍부한 잠재력을 가진 신진시장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당장 스마트폰만 봐도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다소 주춤한 가운데 중저가 라인업이 두각을 보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동남아시아 시장의 성장세가 상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오창호 LG디스플레이 TV사업부장 부사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OLED 빅뱅 미디어데이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출처=LG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는 중국 투자 늘어난다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스마트폰 거점 완전 철수를 선언한 것은, 결국 현지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을 분석한 선택과 집중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삼성전자가 중국 생산 물량을 동남아시아 등으로 돌리는 것은 국내 기업의 ‘동남아시아 몽(夢)’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LG전자가 국내 스마트폰 제조 거점을 베트남으로 이전한 것도 비슷한 연장선이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 및 샤오미가 버티고 있는 중국보다 ‘미완의 땅’인 동남아시아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전략적 선택은 역시 시장의 특성에 따라 좌우된다. 삼성 및 LG가 중국 스마트폰 제조 거점을 대신해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으나, 디스플레이의 경우는 중국 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LG디스플레이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첨단기술산업 개발구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하이테크 차이나(LG Display High-Tech China)의 8.5세대(2,200mm x 2,500mm) OLED 패널 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LG디스플레이는 하이테크 차이나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각오다. LG디스플레이와 광저우개발구가 70:30의 비율로 투자한 합작사로 자본금은 2조6000억원이다.

OLED가 핵심이다. 8.5세대 OLED 패널 공장은 축구장 10개 크기인 7만4000평방미터(약 2만 2000평) 대지 위에 지상 9층, 연면적 42만7000평방미터(약 12만9000평)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지난 2017년 7월 첫 삽을 뜬 이후 2년여의 공사기간을 거쳐 8월 본격 양산에 돌입했다는 설명이다. 기존 LCD 패널공장과 모듈공장, 협력사 단지 및 부대시설 등을 합하면 LG디스플레이 광저우 클러스터는 총 132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광저우 8.5세대 OLED 패널 공장에서는 고해상도의 55, 65, 77인치 등 대형 OLED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월 6만장(유리원판 투입 기준) 생산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최대 생산량인 월 9만장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공장이 들어선 광저우는 이미 LG디스플레이의 8.5세대 LCD 패널공장이 가동중인 곳으로, 8.5세대 디스플레이 생산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관세 및 인건비뿐만 아니라 물류비 절감 측면에서도 최적의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중국 제조 거점 강화는 역시 현지 시장의 매력도가 올라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현재 중국은 LCD 시장에서 파괴적인 점유율 확대를 보여주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는 주력인 OLED 생태계 확산을 위해 중국 제조사들과도 밀접한 스킨십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장의 특성에 따라 국내 기업의 현지 제조 거점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스마트폰의 경우 삼성전자 및 LG전자는 중국 시장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일정부분 몸을 낮추기로 결정했으나, 디스플레이에 있어 중국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인 셈이다. LG디스플레이가 현지 투자 확대를 결정한 배경이다.

다만 삼성디스플레이의 행보는 다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13조원 규모의 QD-OLED 육성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충남 아산에 위치한 탕정사업장의 LCD 공정을 QD-OLED로 바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탕정사업장이 LCD 생산을 멈추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 쑤저우에서만 LCD를 생산하게 된다. 결국 삼성디스플레이는 국내 제조 거점을 택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전략적 행보에 따른 변화라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최근 국내 제조 거점을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나, 탕정사업장의 QD-OLED는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 미완의 영역”이라면서 “국내 시설 투자를 통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현 프리미엄 TV 전략인 QLED-TV의 경우 경쟁자인 OLED와 달리 사실상 삼성전자 홀로 시장을 키우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그는 이어 “삼성디스플레이의 국내 시설 투자는 정무적 판단도 고려됐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부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