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월요일 새벽이나 아침 절에 유럽이나 미주에서 벌어지는 개인 경기들의 결승

장면들을 보곤 합니다.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 그걸 지켜보던 가족들이 우승한 선수를 향해

뛰쳐나가 감격스럽게 포옹하게 됩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뛰어가 아빠에게 안기고,

즐거움을 나누는 순간은 보고 또 보아도 흐뭇하기만 합니다. 자랑스럽게 어린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지요.

‘내겐 저런 모습이 있기나 했던 건가?’하고 말이죠.

아이들이 어릴 때 오래 해외 출장 갔다가 공항에서 만났을 때 몇 번을 제외하고는

별로 기억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금방 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덤덤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전통을 잘못 적용한 영향도 있었을까요? ‘모름지기 남자는 엄부(嚴父)여야 한다’고 듣고

자랐습니다.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단단해야 한다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을 밖에는 유하고,

집에서는 엄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그러나 전통 탓이 아니라 내 자신의 미성숙함에서 비롯되었겠지요.

가족의 의미,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이라는 의미는 어떤 걸까요?

지난 명절 즈음에 나눈 얘기의 한 마디가 기억납니다.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가족이나 가족의 지원이 없는 사람이라네.

왜? 자신을 필요로 하고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 바로 가족이 없으니까‘

너무 절실하게 공감했습니다.

평일 밤에 지방에 갈 때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한산함을 느끼게 됩니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차가 뜸해져 한참을 내려가면 거의 나만 달리는듯해 머리끝이 쭈뼛해지며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그럴 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늦게까지 동행하는 데에 가족의 의미가 있는 걸까요?

또 뜨거운 여름 오후 인도를 걸을 때 그늘을 찾게 됩니다.

건물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인도의 반대쪽이라도 걸을라치면

가로수만이 유일하게 그늘을 만들어 그 속을 걷거나 머물게 됩니다.

그런 가로수 같은 존재가 또 가족의 의미, 가족 지원의 의미로도 생각되어졌습니다.

결국 가족이라는 게 같이 밥 먹고, 한 공간에서 자는 그런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존재들, 힘을 내게 하는 내면적인 원군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또 좋은 일, 좋은 순간을 많이들 나누고 쌓은 기억으로,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의미도 가족에 담겨 있지 싶습니다.

아침마다 이른 출근하는 아들이 ‘이놈의 인생, 인생..’이라고 투덜대며 힘들게 출근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좋은 시절 생각하라’고 안타까움에 한 마디해서 보내는 내가 있습니다.

‘이놈의 인생, 인생..’ 이라고 스스로 전염(?)되어 추임새 넣어주는 집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관계에서 집사람이 나보다 한 수 위인 것을 많이 느끼고 삽니다.

시집가서 외국 사는 딸 내외가 거의 반년 만에 휴가차 들어옵니다.

너무 즐겁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딸에게 이 설레는 마음을 살짝 들키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집사람보다 한 수 위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