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발암우려물질이 검출된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에 대해 판매 중지 처분이 내려지면서 제약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라니티딘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제약사들은 피해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잔탁 등 라니티딘이 주원료인 위장약을 복용한 환자들도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약을 계속 먹어도 되는지 불안에 떨고 있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6일 국내 유통 중인 라니티딘 성분 원료의약품 7종에서 NDMA가 잠정관리기준인 0.16ppm를 넘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NDMA는 WHO 국제 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인체 발암 추정물질이다.

이에 식약처는 라니티딘 성분이 들어간 모든 의약품 269개 품목(133개 회사)의 제조·수입·판매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식약처는 라니티딘에 포함된 아질산염과 디메틸아민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체적으로 분해, 결합해 NDMA가 생성되거나 제조과정 중 아질산염이 비의도적으로 혼입돼 생성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식약처는 관련 전문가들과 ‘라니티딘 중 NDMA 발생원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NDMA를 2A급 발암추정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출처=EPR

매출 감소 불가피

라니티딘은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효능을 지닌 의약품으로 위궤양 또는 십이지장궤양, 속 쓰림, 위산과다 등에 쓰인다.

지난해 국내에서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 시장은 약 27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중 전문의약품(ETC)이 174개 품목으로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의약품(OTC)는 95개 품목에 불과하다.

현재 판매 중단된 약은 GSK의 '잔탁'을 비롯해 대웅제약 '알비스', 일동제약 '큐란', 대웅바이오 '라비수' 등 269개 품목이다. 이번 판매 중단 조치에 따라 제약사들의 매출 감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대웅제약과 일동제약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웅제약은 알비스와 알비스D로 라니티딘 복합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두 제품의 합산 매출은 585억원이다. 회사 전체 매출의 6.2%를 차지하는 주력 품목인 만큼 적지 않은 손실이 예상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웅제약이 넥시움과 가스모틴 등 대체 의약품을 보유하고 있어 알비스 매출 하락을 어느정도 방어할 것으로 분석했다.

라니티딘 단일제 시장에서는 일동제약의 큐란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리지널 의약품인 '잔탁'보다 수익이 높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큐란으로 전체 매출의 4.2%인 222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제조 과정이 아닌 원료 자체에 문제가 생겨 판매 중지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에 식약처의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대웅제약 '알비스정'(왼쪽)과 일동제약 '큐란정'이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대웅제약, 일동제약

대체 의약품 '반사이익' 기대

반면 라니티딘 대체 의약품은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파모티딘 등 일부 의약품은 순식간에 재고가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을 복용하는 국내 환자는 약 144만 명으로 집계됐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144만 명의 환자를 공략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식약처는 라니티딘 성분을 대체할 약품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김영옥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은 26일 열린 설명회에서 "파모티딘 등 라니티딘 성분을 대체할 180여 개 품목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라니티딘 제제를 쓰지 않는다고 위궤양 등을 치료할 수 없는 건 아니다"고 밝혔다.

주로 라니티딘과 같은 계열인 H2 차단제와 프로톤펌프억제제(PPI) 계열이 대체 의약품으로 거론되고 있다. H2 차단제 계열은 니자티딘, 라푸티딘, 시메티딘, 파모티딘 등 100여 개 품목이 존재한다. PPI 계열 약물은 넥시움(아스트라제네카, 대웅제약), 에소메졸(한미약품) 등 대형 품목이 있다. 최근 출시된  칼륨경쟁적위산분비억제제(P-CAB)인 케이캡(CJ헬스케어) 처방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6일 라니티딘 성분을 원료로 쓴 위장약 등 269개 의약품에 대한 잠정 제조·수입 및 판매 중지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식약처

피해는 환자 몫

대체 의약품으로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의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환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히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전성이 의심되는 기존 약을 계속 먹을 수도 없고, 하루아침에 다른 약으로 바꾸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식약처는 짧은 기간 약을 먹은 경우 위해 우려가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을 가장 많이 처방받은 질환은 역류성식도염, 위염, 소화불량 등 위장질환이다. 대체로 6주 이하의 단기로 처방돼 위해를 가할 만큼 섭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장기 복용에 대한 인체 영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아 식약처가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식약처의 이 같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박수보다 질타가 더 쏟아지고 있다. 미국 등 해외에서 위험성 지적이 먼저 나온 이후에 식약처의 대응이 이뤄졌고, 조사 결과도 열흘 만에 번복됐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26일 성명을 내고 식약처의 뒷북 행정을 비판했다. 의협은 "이번 사태는 지난해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돼 논란을 빚은 발사르탄 계열의 고혈압 치료제 사태와 유사하다"면서 "외국 전문기관이 의약품 성분 위협을 먼저 인지하고, 국내 식약처가 뒤늦게 조사에 나서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이어 "식약처는 핵심전략으로 ‘의약품 원료부터 철저하게 관리’를 내세우고 있으나 바뀐 것이 없다"며 "반복되는 의약품 원재료의 안전성 문제와 식약처의 사후약방문식 대응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의사와 환자"라고 꼬집었다.

식약처는 이와 관련해 "대체 의약품이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발암우려물질이 검출된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선제적으로 조치했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