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7일 오후 4시 국회 정론관에서 개정 발의된 공정채권추심법안의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희망이 없습니다. 평생 빚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A씨는 지난 2002년 사업실패로 여러 곳에 빚을 진 다중채무가 됐다. 그는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어 일용직을 전전하며 빚을 갚아 나갔다.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한 A씨 부부는 2016년 딸을 입양해 가정을 꾸려나갔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A씨의 급여 통장이 압류됐다. 미처 갚지 못한 대부업체가 있었던 것. 대부업체는 2007년 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 2016년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소송제기 사실을 몰라 대응하지 못했고 채권은 부활,  A씨의 통장은 압류됐다.  

 '공정채권 추심법'이 폐기될 위기에 놓이면서 입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정채권 추심법은 시효가 지난 빚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등으로 빚을 부활시키는 것을 금지한 법안이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복수의 시민단체로 이뤄진 금융소비자연대회의는 27일 오후 4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채권 추심법안의 입법을 촉구하고 나섰다. 

제윤경 의원은 "민법상 시효가 완성돼 죽은 채권은 채무자가 갚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부활된다"며 "대부업체 등 채권금융회사가 법을 잘 모르는 취약계층을 상대로 단돈 '1만원만 입금하면 빚을 절반으로 깎아 주겠다' 고 말하고 이를 믿는 채무자가 돈을 입금해 채권이 부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비판했다.  

제 의원은 이어 "시효가 완성된 채권도 매매가 가능해, 100만원의 빚증서를 1만원에 사서 채무자를 추심하는 상황"이라며 "시효완성 채권의 채무자는 사실상 상환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이 많은데,  채무자가 경제적으로 재기하고 싶어도 10년, 20년 연장되는 채권으로  재기가 불가능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의 소홀한 관리 감독도 이날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금융복지상담협회 강명수 회장은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가 법적 강제력이 없더라도 금감원이 제정한 가이드라인의 준수를 권고하면 대부업체 등은 이를 지키게 된다"며 "문제는 아예 단속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개정안이 발의된 '공정채권추심법'은 채무자의 경제활동을 독려하는 입법취지를 담고 있다. 장기간 행사되지 않은 채권에 대해 채무자가 이를 신뢰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했을 때 그 활동을 보호자는 것이다. 

민법상 은행 등 금융회사와 거래로 생긴 빚은 금융회사가 5년동안 법 조치를 하지 않으면 없어진다. 다만 5년이 지난 후라도 금융회사가 다시 소송을 제기해 채무자가 대응하지 않으면 부활한다.착오로 단돈 1만원을 갚아도 마찬가지다. 부활한 채권은 10년동안 강제집행이 연장된다.

입법이 지연되면서 취약계층의 폐해도 줄지 않고 있다.  A씨와 같이 재기의 의지를 꺾는 상담사례가 시민단체에 몰리고 있다. 급작스러운 급여 압류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퇴직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언제 있을지 모를 강제집행에 일용직에만 종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감독원 '금융권 특수채권 현황' 에 따르면 2017년 3월 말 기준 전체 금융사(증권업, 대부업 제외)의 5년 이상 연체된 채권 규모는 20조1542억원(원금 11조9660억원, 이자 8조188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1회 이상 소멸시효가 연장된 채권이 총 8조2085억원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채권 10개 중 4개가 소멸시효 5년을 채운 후에도 소송 등의 방법으로 계속해서 연장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정부는 공공기관이 보유한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소각해왔다. 반면 대부업체 등 민간영역에서 유통되고 있는 소멸시효 채권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통계조차 없다. 관리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죽은채권으로 취약계층의 경제활동이 제약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백주선 변호사는 이날 "죽은 채권의 부활을 막는 것은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이어 "무엇보다도 법률의 개정이 지연되면서 채무자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되는데 선순환해야 하는 내수 경제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조속히 입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죽은채권 부활 금지법은 정부와 당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9가지 민생법안 가운데 하나"라며 "장기간 채무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해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