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난 1년은 50여년간 이어진 현대차 역사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이뤄진 ‘격변기’라고 불릴만 하다. 내연기관차에서 미래차로 변하는 '모빌리티 혁명'이 가속화되는 시점에 섰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3세 경영을 시작, 기존 현대차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전면적인 그룹사 개조 작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 수석부회장의 행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25일 업계 전문가들은 정의선 체제 1년간 이뤄진 가장 큰 변화는 수직계열화 전략의 수정과 인적 순혈주의 타파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구조의 고수를 포기했고, 내부의 자원을 외부와 공유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으로의 변화를 택한 것이다. 나아가 글로벌 경영 행보도 가속화됐다. 

▲ 정의선 수석부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 미래차 성공의 키는 '오픈 이노베이션'…수직계열화 전략 수정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완벽한 수직 계열화를 이룩한 회사다. 철강→부품제조→완성차로 이어지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 냈고, 자동차금융(캐피탈 및 카드)과 AS부품, 중고차 매입과 물류로 이어지는 구조를 완비하기도 했다. 이같은 구조를 완비한 업체는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태계를 점령한 '절대 갑'의 위상을 구현하는데 성공, 70~80%에 이르는 내수 점유율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압도적인 국내 실적을 바탕으로 글로벌 5위권 제조사로 도약했고, 전기차 부문 글로벌 5위, 수소차 경쟁력 글로벌 1위의 자리도 확보했다.

문제는 수직계열화에 힘쓰는 동안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차, 테슬라 및 GM의 전기차 등 미래차 분야경쟁력 확보에는 다소 소홀한 점이다. 또 세단에서 SUV로 변화하는 시장에 맞추지 못했고, 글로벌 수요부진과 중국시장에서의 판매 급감이라는 악재를 맞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의선 부회장의 전략은 '퍼스트 팔로워' 전략의 포기와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이었다. 이를 위해 해외 기술 선도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 상품 트렌드를 따르던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차 시장 ‘개척자’로의 도약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전략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정 부회장이 경영을 총괄한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현대차그룹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전략적 투자를 발표하고 있다.

▲ 자료=현대자동차그룹

투자 기업도 다양하다. 차량공유 기업부터 자율주행 기술 보유 업체, 드론(무인 항공기), 슈퍼카, AI, 시스템 반도체 기업 등에 투자를 결정했다. 향후 5년간 투자할 금액만 45조원에 달한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지난 23일 체결한 앱티브와의 합작(조인트벤처, JV)를 들 수 있다. 2조원이 넘는 투자를 통해 양사가 50:50의 지분을 갖은 합작법인을 설립, 자율주행차 하드워어와 소프트웨어를 공동 개발하는 계약이다.

앱티브는 차량용 전장부품 공급하는 업체 순위로는 세계 선두권으로 꼽히고 있다. 현대차그룹룹 3사(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가 확보하지 못한 도로 및 사람 인지 기술은 물론 ▲차량 인지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컴퓨팅 플랫폼 ▲데이터 처리 및 배전 부문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 순혈주의 타파…주요 요직에 글로벌 전문가 영입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차의 '인적 순혈주의'도 대거 희석되고 있다. 주요 요직에 BMW, GM, 벤츠,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서 높은 성과를 보였던 인물들이 영입되고 있다.

전략과 차량 개발, 상품의 주요 보직에 모두 '외국인 용병'이 기용된 것이 특징이다.

차량성능담당에는 독일 BMW 출신의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자리잡고 있고, 차량의 상품성을 더하기 위한 '감성품질' 제고에도 6명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벤틀리 출신 루크 동커볼케 디자인담당 부사장 ▲GM 및 벤틀리 출신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 전무 ▲폭스바겐 출신 사이먼 로스비 현대스타일링담당 상무 ▲GM 및 BMW 출신 서주호 현대디자인이노베이션 상무 ▲인피니티 및 BMW 출신 카림 하비브 상무 ▲알파 로메오, 람보르기니 출신 필리포 페리니 상무 등이다.

순혈주의 타파는 사장급 인원에도 이뤄졌다. 삼성전자 출신 지영조 사장은 전략기술본부장에 임명됐고, 닛산 출신 호세 무뇨스 사장도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올랐다. 그룹사인 현대제철 사장에는 포스코 출신 안동일 전 포항제철소장을 영입하면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 정의선 수석부회장(사진 왼쪽)과 앱티브 케빈 클락 CEO(사진 우측)이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 '본게임'은 이제부터

앱티브와의 JV 설립은 분명 현대차의 약진을 기대하게 할 만한 의미 있는 한 발이다. 다만 정 부회장이 앞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 역시 적지 않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미래차 부문에서 충분한 수익과 품질 경쟁력을 갖을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미래차 부문에서 글로벌 5위의 위상을 갖고 있지만 해당 제품들의 수익성이 높지 않은 것이 문제다.

전기차 분야의 경우 완성차 제조에 사용되는 부품 수(8000여개)가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2만5000여개)의 30% 수준에 불과한 점이 지적된다. 자동차의 가전제품화가 이뤄지면서 다양한 전장 제품이 장착되고 있고, 고부가 자재들의 자급률이 떨어진다.

전기차 원가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자급할 수 없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라이더 등 자율주행 관련 안전 장비를 탑재가 많아지면서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장비가 많아졌고, 당연히 그간 만들어온 수직계열화의 수혜를 보기 어렵게 됐다. “코나EV와 소울EV의 물량 부족이 낮은 수익성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 부회장 역시 이 부분을 인지, 이번 JV 설립 후 이뤄진 기자와의 대화에서 “성능뿐만 아니라 원가의 측면에서도 만족해야 한다” 라는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중국 등 신흥 시장 판매 부진 장기화, 트럼프발(發) 관세폭탄 위험이 현대·기아차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한국과 해외 공장의 과잉 생산설비를 조정하고, 노조와의 관계를 쇄신하는 것 역시 녹록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