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017년 1월 미국 연방거래소(FTC)가 퀄컴을 전격 제소했다. 퀄컴이 모뎀칩 시장의 지배자적 위치를 이용해 제조사들에게 과도한 로열티를 받는다는 혐의다. 특히 문제가 됐던 부분은 독점 공급이다. 과도한 특허료도 문제지만 독점 공급이라는 족쇄를 통해 제조사들을 필요이상 옥죄고 있다는 것이 FTC의 주장이었다.

FTC가 '쏘아올린 공'을 단순히 퀄컴에 대한 견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퀄컴의 핵심 경쟁력인 라이센스 비즈니스의 근간을 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강력한 연구개발을 통해 특허 라이센스 비즈니스를 펼치는 모든 사업군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 퀄컴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연구개발, 그리고 라이센스
퀄컴의 역사는 곧 연구개발의 역사다.

194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이자 통신 방해를 피할 수 있는 탁월한 보안성을 자랑하는 대역확산(Spread Spectrum) 기술의 창시자인 헤디 라마르(Hedy Lamarr)가 CDMA의 시대를 연 후, 퀄컴의 창업자 어윈 제이콥스는 여기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건다. 다양한 연구소에서 무선 통신 방식을 연구했지만 CDMA는 너무 복잡한 기술이라는 이유로 TDMA나 FDMA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시기, 어윈 제이콥스는 TDMA의 경우 최대 수용량이 아날로그식의 3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며 CDMA의 경제적 효율성이 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단은 섰으나 CDMA에 집중한 퀄컴의 길은 험난했다. 작은 사이즈의 전화기와 상업용 사이즈의 기지국을 만들 수 있는 통합 회로 개발이라는 해결책을 통해 진일보한 기술을 확보하는데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자금이었다.

여기서 퀄컴은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동한다. 기술을 원하는 여러 제조사에서 선불로 사용료를 받아 이를 연구에 활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제조사에서 판매하는 단말기당 로열티를 지급받는 라이센스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퀄컴은 4G와 5G 시대를 관통하며 강력한 연구개발, 뒤이은 라이센스 비즈니스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ICT의 비전을 캐는 선봉으로 활동하며 라이센스 비즈니스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고, 이를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고 파트너들은 퀄컴을 앞세워 혁신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그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퀄컴은 시대의 혁신 청부사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위기의 시작, 그리고 반전
퀄컴과 파트너의 행복한 동행은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삐걱이기 시작했다. 혁신 청부사 역할을 하던 퀄컴이 자본을 확충하는 방식, 즉 라이센스 비즈니스에 대한 견제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애플을 비롯한 제조사들은 퀄컴이 수행하는 혁신 청부사 역할은 인정하면서도 지나치게 과도한 시장 독과점에 따른 권력남용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폐쇄적 iOS의 운영사인 애플이 시장 권력의 과도한 남용을 지적하는 것은 의아한 일이지만, 각 국의 규제 당국은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애플 아이폰에서 시작된 모바일 시대의 끝이 보이고 초연결 시대로의 진입으로 이어지던 과도기, 모바일 하드웨어 패권을 장악한 이들의 수익성 악화가 시작되며 불거진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다.

이와 관련된 치열한 공방전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2017년 1월 미 FTC의 퀄컴에 대한 공습이 시작된 셈이다. 퀄컴의 라이센스 비즈니스 최대 위기. 

전투의 초반은 미 FTC가 이겼다. 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이 5월 FTC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퀄컴의 특허료 사업 관행을 두고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법원은 “퀄컴의 관행은 많은 경쟁사들을 고사시켰다”면서 “결국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퀄컴이 특정 업체와의 독점 공급 계약도 맺지 못하도록 했으며 향후 7년간 모니터링 결과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는 한편 법원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별도의 자료도 요구했다. 퀄컴의 손발을 다 묶는 조치다.

반전은 지난 8월 벌어졌다. 미국 제9순회항소법원은 퀄컴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특허 라이센스 관행 시정 명령 집행을 유예해달라는 퀄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퀄컴이 OEM 업체들에게 특허 로열티를 부과한 관행이 독점금지법 위반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법정 조언자가 큰 역할을 했다. 법정 조언자란 공익에 기초한 의견수렴을 위하여 소송 당사자가 아닌 중립적 제3자에게 서면의견 제출의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며, 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이 미 FCT의 손을 들어주자 여러 기업과 미국 정부, 퇴직한 순회 법원 판사 및 20명의 반독점 및 특허법 전문가들은 해당 판결을 비판하고 퀄컴을 지지하는 내용의 법정조언자 의견서(amicus curiae)를 제출했다.

글로벌 특허전문 기업 인터디지털, 통신장비 기업 노키아와 음향기술 전문 기업 돌비 등도 이번 사안에 대해 의견서를 제출하며 연방지방법원은 표준특허를 공정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프랜드(FRAND,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원칙과 SSPPU 등을 잘못 이해·적용 했다고 명확히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퀄컴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연방지방법원은 선례를 비롯, 미국 반독점 법을 오해하거나 잘못 적용했다는 지적이 눈길을 끈다. 라이센스 계약을 맺지 않으면 칩을 제공할 수 없다는 “No license No chips” 정책이 반독점 법, 일명 셔먼법(Sherman Act)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미 FTC의 주장과 연방지방법원의 판례는 이미 수십년 동안 혁신을 장려하고, 효율적이며 원활히 작동하고 있는 라이센싱 제도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연방지방법원의 의견대로 최소판매가능 특허실시단위(SSPPU, Small Salable Patent Practice Unit)를 기반으로 하는 라이센스가 필수가 되면 재협상을 위해 SSPPU를 사용하지 않는 거의 모든 기존 라이센스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는 당연하지만 대혼란을 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연방지방법원이 제시한 해결안은 매우 광범위하고 (퀄컴 및 업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나왔다. 나아가 퀄컴을 둘러싼 판단이 미 FTC와 연방지방법원의 권한을 벗어난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연방지방법원의 판단대로라면 퀄컴의 라이센싱 사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되는데 여기에는 그동안 체결한 수많은 해외 계약 모두가 포함된다. 하지만 글로벌 계약은 FTC와 연방지방법원의 권한을 벗어난다.

미 법무부의 어시스트
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판단으로 퀄컴은 당장의 비즈니스 모델 변화는 피하며 한 숨 돌리게 됐다. 퀄컴의 라이센스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도널드 로젠버그 퀄컴 수석부사장은 "우리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기쁘다"면서 "우리는 우리의 관행을 유지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퀄컴은 5G의 중요한 시기에 모바일 통신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데 계속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극적인 반전의 도우미 중 하나는 미 법무부가 꼽힌다. 미 법무부는 지난 5월 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이 FTC의 손을 들어주자 이례적으로 퀄컴에 대한 반독점 판결집행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미 법무부는 퀄컴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미국의 5G 경쟁력을 위해 신중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 법무부는 비합리적으로 높은 로열티가 반독점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로열티 시스템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혁신에 투자함으로써 기업과 산업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혁신 청부사인 퀄컴이 움직이는 원동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 법무부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장 셔먼법 위반은 연방지방법원이 주장하는 경쟁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반독점 법을 오해했다고 강조했다. 경쟁법은 ‘경쟁’을 촉진하는 법이지 ‘경쟁사’를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하이파이브가 주는 울림
퀄컴은 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판단으로 한 고비를 넘겼으나, 사실 전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퀄컴의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미 FTC의 강력한 시정명령을 늦추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판단은 향후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미 FTC의 공격에 노출된 퀄컴을 미 법무부가 방어한 장면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 법무부는 퀄컴을 옹호하거나 무조건 지키려는 것이 아닌, 퀄컴의 핵심 가치인 특허 라이센스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이는 한편 5G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전쟁도 격렬하다. 화웨이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어 미국 중심의 ICT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 지상목표다. 이런 상황에서 미 법무부는 5G의 퀄컴이 반독점 심사에 발목이 잡혀 비즈니스 모델이 약화되면,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봤다.

결국 미 법무부는 대승적 관점에서 퀄컴을, 아니 특허에 기반한 라이센스 비즈니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는 뜻이다. 즉 연구개발을 통한 혁신 청부사의 존재는 여전히 필요하며, 이를 지키기 위한 전사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다시 입증됐다. 여기에 법무부와 같은 정부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장면은 새삼 미국의 대단함을 상기시켜주는 하나의 가치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