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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학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나는 무엇을 잘하고 싶은가

“무엇을 잘 알거나, (꾸준히)하고 있어요?”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그나마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 또는 영역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그에 따라서 주제 파악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함이다.

반응은 거의 둘 중에 하나이다. “ⓐ없지만, 한 번 적어봤습니다. 또는 ⓑ거의 적을 수 없습니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질문에 대해 ‘타인과 비교하여’라는 전제 조건 하에 답을 찾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인다.

우선 ⓑ는 자존감이 바닥을 찍은 상태이다.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아주 쉬운 선택을 할 수 없거나,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거의 과거의 선택을 그대로 모사하는 수준에 그친다.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 작동 불능 상태인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쉼’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린다.

원래부터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은 없다. 현재 처한 환경 때문에, 누군가의 통제 및 관리에 의해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 상태가 된 것이다. 이들은 새롭게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지금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섣불리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조차 버겁다.

ⓐ는 그래도 약간의 ‘자존감’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들에게는 잘 알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범주를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평가)할 때’ 라는 조건을 정해주면 더 많이 적을 수 있게 된다. 그 안에서 제목처럼 ‘앞으로 더욱 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면 된다.

그래도 문제는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 나름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와 마찬가지로 ⓑ에게도 무언가를 할 힘도, 의지도 보통에 비해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타인의 주입식 조치’도 답은 아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만한 계기를 발견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때 해야하는 질문이 “앞으로 더욱 잘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이다. 이 질문을 계속 반복하면서 각각의 후보군에 대하여 자체 테스트가 필요하다. 나의 의지가 얼마나 지속 될 것인지, 그 의지가 사그라 들지 않게,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선후행 되어야 하는지 등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잘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는 현재 시점에서만 보는 관점의 결과이다. 과거의 어떤 선택 때문에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어떤 분야 및 행동’에 대해 누구 보다 많은 경험치를 갖고 있다고 볼 때, 현재 미흡한 것은 경험치 부족, 방법의 미흡함 때문이지, 결코 나의 재능이나 운 등의 통제 불가한 영역의 영향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 분야가 운동선수와 같이 ‘특출 난 재능’이 요구되는 것이라면 그렇게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직장인이다. 처음부터 어떤 일을 잘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나름대로 펑크내지 않고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너무나 낮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그것도 누구와 비교해서 말이다. 이때 비교의 대상이 나보다 월등히 경험도 성과도 많이 가진 이랑 비교하면, 그야말로 비교 자체가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이러한 겸손한 자세를 꼬집는 것이 아니다. 일에 대한 겸손한 태도는 어떤 일을 하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 겸손함이 나의 부족함을 깨우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단, 그것이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과도하게 뻗치면 스스로를 ‘낮춰 부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는 이것을 심히 가장 경계한다. 오히려 어느 정도 하는 것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이 아닌, 과거의 나와 비교할 때, 비로소 진짜 ‘반성 다운 반성’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전에 다른 칼럼에서도 밝혔지만, 목적도 의미도 없는 반성은 자책에 가깝다. 분명 잘하고 있는데, 주변의 누군가의 말 한마디, “야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못해?!”라는 뉘앙스의 말에 상처받고 지속할 힘을 잃어버리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남 눈치 보지 말고, 그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타인에게 어떤 가치와 영향력을 제공하고 싶다고 치환하여 생각하고, 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느낌(행복 또는 만족)이 무엇인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아드레날린’은 그 일을 앞으로도 꾸준하게 해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단면을 스스로에게 제공한다. 그만큼 특정 행위로부터 얻은 감정의 크기 또는 영향력이 중요하다.

이를 직장으로 가져오면 ‘직무 전문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뒷부분에 ‘전문성’이라는 말을 붙이기 다소 부끄럽다. 역시나 훈련된 겸손함 때문이다. 심지어 수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했던 분을 인터뷰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여기서 더욱 발전하기 위해 어떤 스킬과 테크닉을 익혀야 할지 고민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익혀야 할 것은 스킬 또는 테크닉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일을 통해 영향을 미칠 대상으로부터, 제공한 것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평가는 당연히 ‘걸러’ 들어야 한다. 어쨌든 정답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일을 누군가에게 내 수준만큼 할 수 있도록 전수할 수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만, ‘잘한다’ 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선수였다면, 훌륭한 코치가 될거 라 생각하지만, 이는 절대 아니다. 그 예외가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결국 나도 ‘직책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직책자이자 실무 책임자로 얼마나 현명한 결정과 함께 팀원들에게 현실적 / 합리적 /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는가에 따라 나의 수준이 결정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어떤 발전 방향을 띄었고, 그때 나의 의지는 얼마나 투영되었으며, 앞으로 그 일의 방향이 내 예측 안과 밖 어디에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이를 통해 내가 그 일을 ‘잘해야 하는’ 또 다른 명분을 찾을 수 있다.

만약, 모든 부분에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잘하고 싶은 것이 ‘그냥’ 아무 이유없이 없다고 느낀다면, 분명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이 대부분 ‘영혼없이’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에 자기 감정을 무한대로 싣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감정 없이 일하는 것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인생의 반 가까이 차지하는 일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으로, 성장을 바라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길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지금 하는 일에 있어서 닦고 싶은 스킬과 테크닉 또는 사고의 넓이와 깊이 등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생각만으로 성장 의지가 샘솟을 수 있다.

김영학 이직스쿨 대표  |  careerstyling@gmail.com  |  승인 2019.09.25  12: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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