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사람 이름이 안 외워지고 뭘 자꾸 잊는다고들 한다. 물론 노화에 따른 뇌기능 저하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만큼 네트워크가 다양하고 복잡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초등학생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기껏해야 몇 십 개 정도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저장된 번호가 늘어나 몇 천 개가 넘기도 할 것이다. 그 이름들을 빠짐없이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의 네트워크도 계속해서 복잡해지고 있다. 아직도 이런 저런 인연으로 새로운 모임이 생긴다. 사석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밝히면 듣는 달갑지 않은 질문 중 하나가 “연예인 수술해보셨어요?” 다. 질문자의 의도에는 그냥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보고 수술도 한 적이 있는가 하는 단순 호기심뿐만 아니라, 이 의사가 정말 ‘잘나가는’ 의사인지 떠보는 구석도 있을 것이다. 외모가 아주 중요한 배우나 셀럽(celebrity)들이 수술을 맡긴다면 대단한 실력을 가진 의사로 간주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필자의 환자 중 연예인이 있다고 해도 환자의 비밀을 누설할 수 없을뿐더러, 사실, 연예인을 수술했다는 것이 그 의사의 수술 실력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배우나 뮤지션, 방송인 중에는 사각턱수술을 과도하게 해서 소위 ‘개 턱’이 되어버린 남, 녀 연예인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귀밑 각을 남기지 않고 턱 끝까지 1자로 절골하면 소위 개 턱이 되고, 귀밑 각에서 턱선 중간까지만 싹둑 절골하면 소위 2차 각이 남는 오각형 턱선이 된다. 이 연예인들을 수술한 의사는 암암리에 자신이 어떤 연예인을 수술했다거나, 수많은 연예인을 수술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수술결과로 보면 최고의 실력으로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일 뿐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외모가 매우 중요한 연예인들은 병원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거나 알아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기획사나 매니저의 친분이나 네트워크에 의해 알음알음으로 수술을 받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십여 년 전 돌출입 수술을 받은 것으로 의심받던 모 여배우는 수술 전이 낫다는 악플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필자가 주로 하는 돌출입수술 자체가 나쁜 수술인 것처럼 매도된 적도 있었다. 필자는 그 여배우를 수술한 적이 없다.

필자는 20년 가까이 돌출입과 얼굴뼈 전문의로 지내오면서 연예인을 수술하거나, 직계가족 중 둘 이상을 수술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사실, ‘연예인 수술해보셨어요?’ 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은 ‘다른 의사를 수술해보셨어요?’가 아닐까 한다.

후자의 질문에 답하자면, 의료계를 훤히 아는 의사, 치과의사 본인이나 그의 가족이 필자에게 수술받은 경우, 구강외과 전문의, 성형외과 전공의, 성형외과 전문의가 필자에게 수술받은 케이스들이 떠오른다. 

첫 번째로, 의사의 가족을 수술한 경우는 다 헤아리기 어렵다. 지난 칼럼에 쓴 ‘예선탈락녀’의 부친은 알고보니 사립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신 필자 모교 동문 선배님이었다. 모교 졸업 동기인 의사 친구도 자신의 두 딸 모두를 필자에게 데려와 돌출입 수술을 받게 해했다. 모 지역 전 의사회장 아들이 돌출입 수술을 받는 날, 그 지역에 개원해있는 선배의사가 잘 아는 분 아들이니 잘 부탁한다는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사실, 자신의 자녀가 돌출입수술을 받는데, 의사인 부모가 ‘네가 알아서 아무데서나 수술받아라’고 할 리 없다. 아마 동료나 선후배 의사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필자에 대해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럴 때 참 수술 실력에 대한 의료계 내의 평판이란 송곳처럼 무서운 것이라고 느낀다. 수술 솜씨에 대한 평판은 사실 전공의[레지던트] 때부터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의료계 내에서는 주지의 사실로 존재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평판이 정직하다는 것에 안도한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일은, 치과의사인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가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았던 경우다. 치과의사를 수술한 경우가 꽤 있었는데, 그 환자는 수술직전에 자신은 구강외과의사라고 ‘커밍아웃’을 하였다. 사실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는 치과의사 면허지만, 악안면수술 즉 양악수술, 돌출입수술 등을 할 수 있는 면허다. 구강악안면외과 쪽에 아는 선배나 교수, 동기들이 넘쳐날텐데, 필자를 찾아온 이유를 넌지시 물었다. 양악수술이라면 굳이 필자에게 오지 않았을텐데, 돌출입수술은 필자에게 받는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사실, ‘돌출입수술, 양악수술을 성형외과에서 하는게 맞는지, 치과에서 하는게 맞는지?’ 하는 질문도 꽤 자주 받는다. 치과의사는 성형외과의사의 돌출입, 양악수술에 대해 ‘치아도 잘 모르면서’라고 갸우뚱하고, 성형외과는 치과의사의 악안면 수술에 대해 ‘전신적인 응급상황에 대처할 줄도 모르면서’하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이런 논쟁은 현 시점에서 다 부질없다. 둘 다 합법적인 의료행위이므로, 안전하고 결과가 좋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성형외과 전문의의 경우 교정치과 전문의와 긴밀한 협진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가장 강렬했던 느낌은, 성형외과 전공의, 성형외과 전문의가 환자가 되어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은 경우다.

필자를 찾아와 돌출입 수술을 받은 성형외과 전공의는 필자와 다른 타학교 출신에 타병원 성형외과 전공의였다. 빅 파이브에 들어가는 그 전공의의 병원에도 성형외과 교수, 선배 의사가 많았을 것이다.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은 후 그 전공의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필자의 돌출입 수술에 대한 학회발표를 들었는데, 묘하고 신기한 느낌이었다며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했다. 나중에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수술을 해주는 진정한 그레이트 서전(great surgeon)이 되라는 축원을 담았다.

얼마 전에는 성형외과 전문의와 그 아내가 모두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았다.

모녀, 형제, 남매, 자매의 수술은 꽤 많이 해봤지만, 부부를 모두 돌출입 수술한 것은 새로운 느낌이었다. 남편이 성형외과 전문의라는 것, 자신의 얼굴과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필자에게 맡겨주었다는 것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뜻깊은 일이다. 필자에겐 20년 가까이 돌출입 분야에서 쉼없이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고 세월이 다독거려주는 것 같았다.

우스갯소리 하나, ‘남편 얼굴 중요’를 검색창에 쳐보면 유명한 캡쳐 화면이 돌아다닌다. ‘예쁘고 잘생기면 싸우다가도 화가 좀 풀린다’는 진지한 충고에 소위 빵 터진 댓글들이 있다. 이 말이 맞다면, 부부싸움 하다가도 필자가 해드린 수술이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두 분의 사랑이 알콩달콩 넘쳐나길 기대한다.

지나보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필자는 젊은 시절 모교 교수가 꿈이었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이루어졌다면, 돌출입 수술을 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환자들과 함께 누리지는 못했을 것 같다. 잠깐 사립대 교수직에 있었다. 계속 있었다면 역시 내 인생에서 돌출입수술을 할 기회는 사라졌을 것이다. 놓쳐버린 기회, 엇나간 인연,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미완의 꿈과 같은 것들이 결국 약이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세월이 깨닫게 해준다.

날씨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무더위도 장마도 폭풍도 결국 다 지나고, 눈물 나게 아름다운 가을이 우리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