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시티그룹 회장 딕 파슨스는 감독 당국에게 “곤경에 처한 은행에 대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말라”며 "당국의 조치는 은행의 예금인출사태만 초래할 뿐”이라고 호소했다.     출처= Black Enterpris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시티그룹(Citigroup)이 2세기에 걸친 역사상 가장 어두운 순간을 맞이했을 때, 은행의 돈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고, 주가는 끝 모르게 하락했으며, 수만 개의 일자리를 줄이고 있었다. 곤경에 빠진 은행은 딕 파슨스에게 은행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충분히 성공한 파슨스가 2009년 씨티그룹의 회장직을 거절했더라면 비난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씨티은행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은행가들이 지목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씨티그룹의 사외이사였던 파슨스는 거의 죽음 직전에 빠진 은행을 구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당시 시티그룹은 미국 금융 시스템의 잘못된 모든 것의 표상이 되었다. 몸집이 너무 커졌고, 과도한 위험을 감수했으며, 납세자들의 구제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으니까. 2011년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1812년에 설립된 유구한 역사의 시티그룹은 연방 정부로부터 4760억 달러(556조원)의 현금과 정부보증 지원을 받았다.

타임워너(Time Warner)의 CEO를 지낸 파슨스가 시티의 회장에 취임하면서 그는 안팎으로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는 시티의 망가진 대차대조표를 복구시켜야 했고 산산이 부서진 주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은 규제당국에게 “시티에게 치명타를 날리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은행을 완전히 KO시키려고 했지요.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사실 그들 중 일부는 이 상처투성이 은행을 파산시키고 다른 곳이 인수하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쉴라 베어가 의장으로 있던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시티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파슨스는 "FDIC가 시티에 사형 선고를 내리기 불과 몇 시간 전, 최후의 순간에 몰렸을 때, 나는 ‘FDIC가 취하고자 하는 어떤 조치들은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베어 의장에게 경고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을 압박해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파산 선고를 내리면 예금인출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지요. 개인 예금자뿐만 아니라 2차 시장인 증권회사들과 자금운용사들까지 말이지요. 그들은 은행의 돈줄이니까요.”

다시 말하면 그해 9월 이전에 있었던 리먼 브라더스 붕괴 같은 대폭발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그리고 그 폭발의 여파는 리먼보다 더 큰 글로벌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었다.  

"그들이 시티의 플러그를 뽑았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을 것입니다.”

쉴라 베어 “시티의 태도가 나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후원하는 모기지 회사인 패니 매(Fannie Mae)의 이사회 위원으로 지명된 쉴라 베어는 FDIC가 시티가 파산하기를 원했다는 파슨스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FDIC가 시티의 파산을 원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왜 시티그룹이 실패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시티그룹은나름의 문제를 잔뜩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개인적으로 시티를 부실은행 목록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다만 시티은행의 파산이 전체 금융 시스템을 얼마나 불안정하게 만들까 걱정했지요. 나는 그들을 도우려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나와 싸우려고 했습니다. 시티그룹은 아주 나쁜 태도를 취했어요."

초대형 인수합병의 시대

파슨스가 시티에 합류한 1996년은 은행들간 합병으로 이른바 메가 뱅크가 출현하면서 원가가 급성장하는 시기였다.

1998년 시티는 보험업계의 거인인 트래블러스(Travelers)와의 합병을 발표하면서 일약 금융계의 타이탄으로 발돋움했다. 이 합병은 1999년 미국 의회와 정부가 전통적인 은행들이 투자은행처럼 리스크가 높은 일을 하는 것을 금지했던 대공황 시대의 글라스 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을 폐지한 이후 이루어졌다. 글라스 스티걸법의 족쇄에서 풀린 월가 은행들은 부동산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

파슨스는 시티뿐 아니라 다른 금융회사들도 ‘2009년에 망한 모든 것들’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고 회고했다.

시티의 위기 원인을 조사한 금융위기 조사위원회(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시티의 레버리지는 32대 1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보고서는 시티가 특정 자산을 대차대조표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실제 레버리지는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슨스는 위기 이후 씨티의 공식 얼굴이 되었다. 그는 감독 당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해결했고, 걱정스러운 주주들을 달래며 은행 경영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 2012년 4월, 그가 회장직에서 물러날 무렵 시티는 이미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은행은 다시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구제금융은 모두 상환했다. 회사의 위기는 모두 끝났다.

모든 것이 절벽에서 떨어졌다

파슨스가 위기에 빠진 회사에 몸담았던 것은 시티가 처음이 아니다.

변호사 출신인 파슨스는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위기(Savings &Loans Crisis)가 한창이던 1990년대에 뉴욕의 저축은행 다임 반코프(Dime Bancorp)의 CEO였다.  

파슨스는 당시의 상황을 "모든 것이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감독 당국에 다임을 잡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결국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 Inc)에 매각됐고 파슨스는 그것이 FDIC 역사상 가장 큰 실패라고 주장했다.

파슨스는 또한 CNN의 소유주인 타임워너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AOL을 합병한 이후 타임워너를 이끌었다. 그는 당시 AOL은 닷컴 버블 붕괴의 충격과 초고속 광대역 인터넷 연결의 부상으로 만신창이였다고 회고했다.

"AOL은 침몰하는 배와 같았습니다. 배가 일단 빙산에 부딪히고 나면 우선 순위에 대한 새로운 목록을 만들어야 하지요. 새는 것을 막아야 했고 모두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했으니까요."

2003년에 AOL의 가치가 종잇장이 되면서 회계 정산 후 타임워너는 연 987억 달러(120조원)의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당시로서는 당시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큰 손실이었다(2008년에 AIG의 993억 달러 손실 기록이 이를 경신했다).

파슨스는 타임워너를 이끌던 시기를 회상하며 "골치덩이 AOL을 어떻게 처치할 지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타임 워너는 결국 2009년에 AOL을 포기했고 이를 버라이즌(Verizon)에 매각했다. 이후 2018년 6월 타임워너는 AT&T에 인수되었고 이 미디어 거인의 이름은 워너미디어(WarnerMedia)로 변경되었다.

암과 싸우다

파슨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암과의 또 다른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다발성 골수종 합병증으로 CBS의 임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암과의 싸움이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남들보다 먼저 알게 되지요.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들에 관한 당신의 우선순위와 의제를 수정하고 바꿔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