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그 동안 패션업계는 '비'장애인을 위한 옷과 디자인에 집중했다. 매년 열리는 서울패션위크(SFW)도 모델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무대를 걷지만 장애인이나 이동이 제한된 사람들이 외출할 때 입을 수 있는 옷은 거의 없었다. 

최근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유색 인종과 플러스사이즈 모델, 나이를 초월한 고령의 모델이 등장하면서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가 자리잡으며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어댑티브 패션(Adaptive Fashion)’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의류기업도 이러한 트렌드에 적극 따라가고 있다.

▲ 하티스트 매직핏 코트.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국내 인구조사자료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인구는 약 255만명으로 그경제활동을 하는 장애인은 95만명 정도로 취업률이 약 37%에 이른다. 3명중 1명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장애인을 위한 의류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장애인만 의류를 선택할 수 있는 소비권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휠체어나 보조기 등을 사용해야하는 이들의 편이를 위해 제작된 의류 자석 버튼, 보철물 사용을 위해 조절이 가능한 소매 솔기를 단 의류등 다양한 옷의 아이템이 국내에서도 출시되고 있다.

현재 국내 패션 대기업 중 ‘어댑티브 패션’ 브랜드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기업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 4월 패션 대기업 중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전문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 ‘하티스트(Heartist)’를 론칭했다.

하티스트는 ‘모든 가능성을 위한 패션(Fashion for All Abilities)’을 콘셉트로 패션전문가와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와 협업하여 함께 연구해 탄생시킨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전문 브랜드다. 국내에는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고 니즈를 충족시켜 줄 의류 브랜드가 없었기에 장애인들의 패션 선택 권리를 높이기 위해 하티스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 하티스트 트렌치코트. 출처=삼성물산 페션부문

하티스트는 지난번 브랜드 론칭시 출시한 재킷, 블라우스, 티셔츠 등에 이어 가장 최근에는 휠체어 장애인들은 위한 ‘매직핏 코트’를 선보였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니즈를 바탕으로 앉아서도 멋스럽고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일반 코트는 뒷부분의 길이가 길어 휠체어에 앉을 경우 엉덩이에 옷이 눌려 원단이 망가지고 움직임도 불편했는데 하티스트의 기술력과 디자인이 접목된 코트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한다.

특히 휠체어 사용자의 신체적 특징을 고려해 코트의 앞뒤 기장 차이를 주어 앉은 자세에서 뒤쪽은 엉덩이 선에 길이를 맞추고, 앞면은 허벅지를 덮는 길이감으로 디자인했다. 또한 활동성을 고려한 액션 밴드를 업그레이드한 ‘터널형 액션 밴드’를 코트에 적용해 활동성을 대폭 높였다. 손목 부위에는 니트 밴딩 소재를 덧대어 활동성과 보온성을 동시에 갖췄다. 

▲ 하티스트 매직핏 코트.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다가오는 가을을 위해 여성전용 ‘트렌치 코트’도 출시됐다.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 구겨지는 부분이 없도록 트렌치의 길이를 조절했고, 활동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어깨와 등쪽 부분에 넉넉하게 공간을 주어 오랜 시간 착용해도 불편하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이번 시즌에도 9개의 숨겨진 기능성을 최대한 살려 상품에 적용했다. 등판 상부 전체에 신축성 저지 원단으로 활동성을 극대화한 터널형 액션 밴드, 쉽게 단추를 채울 수 있는 마그네틱 버튼, 한 손으로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는 고리형 지퍼고리, 구김이 덜 가는 최적의 핏, 앉은 자세에서도 편한 밑 위 길이, 입고 벗을 때 여유를 주는 긴 지퍼, 디자인만 살린 페이크 포켓, 바지 밑단 벨크로 오픈 디테일, 바지 양쪽 사이드 지퍼 등이다.

조항석 삼성물산 하티스트 팀장은 “하티스트는 영속성을 가지고 모든 가능성을 위한 패션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휠체어 장애인들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들의 불편함과 고민을 이해하고, 최적의 사이즈와 핏, 디자인을 바탕으로 상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베이코리아와 팬코가 협업해 만든 ‘모카썸위드’ 브랜드 제품. 출처=이베이코리아

이외에도 유통사와 제조사와 함께 기획한 ‘어댑티브 패션’ 브랜드도 있다. 지난해 이베이코리아는 국내 의류 수출기업 ‘팬코’와 장애인·비장애인 누구나 경계 없이 입을 수 있는 브랜드 ‘모카썸위드’를 선보인바 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타는 아이를 둔 이베이코리아 직원이 아이가 혼자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을 찾다가 개발된 브랜드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의 도움으로 휠체어 이용자 의견을 모아 국내 중견 의류 제조업체 팬코와 함께 개발했다.

‘모카썸위드’ 라인은 남녀 모두 입을 수 있는 면 티셔츠 4종과 팬츠 3종으로 구성됐다. 모든 티셔츠와 팬츠는 벨크로 타입으로 입고 벗기 쉽도록 제작됐다. 티셔츠는 긴 기장에 밑단 양 옆에 트임을 적용해 휠체어를 이용할 때 몸을 움직여도 허리 속살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디자인했다. 또한 휠체어를 밀 때 소매 오염을 방지할 수 있도록 소매를 이중으로 만들고 안쪽에 밴딩을 적용했다.

티셔츠 중 1종은 환자복에서 착안한 디자인으로 뒷 여밈을 벨크로로 고정해 몸 안쪽에 의료용구를 착용해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다. 뒤집으면 재킷처럼 변신해 다양한 스타일 연출이 가능하다. 팬츠는 오래 앉아 있는 휠체어 이용자 피부에 닿지 않도록 세심하게 솔기를 마무리했다. 허리 뒤 안쪽에는 사이즈 조절을 위한 밴드와 단추를 부착했고, 밑위길이를 길게 해 허리를 숙였을 때 속살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임보연 이베이코리아 의류팀 매니저는 “장애용품이 발달된 미국·유럽에서는 거동이 다양한 유니버설디자인 의류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돼 있었다”면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신체가 불편한 소비자 규모도 늘어나는 만큼 이 시장 개척을 통해 몸이 불편한 소비자들이 혼자 옷을 입을 수 있고 다양한 선택권을 확대하도록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 한민수 선수가 서울패션위크 2019 F/W시즌 '그리디어스' 패션쇼에 모델로 섰다. 출처=서울패션위크

이러한 국내의 장애인 전문 패션 브랜드 론칭은 장애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패션을 느낄 권리를 제공한다. 외국에서만 흔히 볼 수 있고 자주 출시하던 ‘어댑티브 패션’이 국내에서도 이젠 새로운 인식의 전환과 관점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서울 DDP에서 열린 2019F/W 서울패션위크 ‘그리디어스’ 쇼에서도 2018 평창 패럴림픽 아이스하키에서 동메달을 거둔 한민수 선수가 런웨이에 오르면서 대중에게 큰 환호를 받은 적 있다.

이렇듯 기업 입장에서도 특수한 카테고리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분야를 장악할 수 있는 경쟁력이 생기고,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브랜드 호감을 심어준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어댑티브 패션 브랜드만을 위한 전문 디자이너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기존의 일반인 옷들과는 손이 더 많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에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