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지난 16일 경기도 파주의 한 축산농가에서 폐사한 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Virus·ASF)’ 판정을 받은 후 17일에는 경기도 연천의 한 농가에서도 같은 병에 걸린 돼지가 발견됐다. 농림축산식품부 등 국가기관과 양돈업계는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고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론의 관심은 질병 확산의 불안감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기업들의 주가에 쏠리면서 점점 사태의 심각성이 희석되고 있다. 이에 축산 전문가들은 돼지열병은 국가의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재앙’임을 계속 경고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란

농림축산식품부의 가축방역정보에 따르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국내에서는 최근 증상이 발견되기 이전까지 단 한 차례도 발견된 사례가 없는 바이러스성 돼지 전염병이다. 1920년대부터 아프리카에서 발생해왔으며 현재까지도 사하라 사막 남부 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으로 여겨지고 있다.

질병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이나 다른 동물종은 걸리지 않는 오직 ‘돼지과(Suidae)’에 한정된 병으로 이 병에 걸린 돼지들은 고열질환을 앓은 뒤에 죽게 된다. 고병원성 돼지열병을 앓는 돼지는 무조건(치사율 100%) 죽게 되며 만성형 돼지열병의 경우는 치사율이 20% 수준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이다. 현재까지 이를 완벽하게 치료하는 백신은 없다.

돼지열병의 더 무서운 점은 놀랄 만큼 빠른 전염성이다. 지난해 8월 중국에서 첫 돼지열병이 발견된 뒤 4개월 후인 12월에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심지어 중국은 아직도 그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중국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이 병으로 죽거나 도살된 돼지의 수는 지난해 8월부터 현재까지 1년 동안 약 1억3000만 마리에 이른다. 

최소 ‘7조원’ 최대 ‘30조원’이 위험하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한 국내농업생산량 지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축산 생산물 항목 중 ‘돼지’의 국내 생산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 7조3580억원이었다. 이는 한우/육우, 닭, 계란, 우유 등이 포함된 주요 축산물들 중 가장 큰 규모다. 심지어는 돼지를 식용으로 가공한 2차 생산물의 가치를 따진 것이 아닌, 순수하게 국내산 돼지의 생산량만을 고려한 경제규모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다른 식품의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양돈업의 중요성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국내외 식품 시장 정보 및 동향 분석>(2016)에서 따르면, 국내 상위 20개 가공식품 품목의 매출액과 생산량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가장 규모가 큰 품목은 맥주(약 3조5000억 원)였다. 그 뒤를 소주(약 1조6000억원), 탄산음료(약 1조4000억원), 빵 및 떡류(1조3000억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기 지표들과 같은 시기인 2016년 국내 돼지 생산량은 약 6조7570억원이었다. 국내 양돈업계와 축산학계에서는 2018년 국내 돼지 생산량의 경제규모는 최소 8조원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돼지 생산량만이 아닌 양돈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료, 식육(食肉) 그리고 가공식품 등 다른 산업들과의 연계를 고려한 ‘돼지’의 경제규모를 약 30조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돼지고기’와 한국인의 식생활  

한국축산학회의 연도별 1인당 국내 육류소비량 조사에 따르면 3대 육류(돼지·소·닭) 중 돼지고기는 나머지 두 육류의 소비량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이 지표에서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 1인당 돼지고기 24.5kg이 소비될 때 닭고기는 11.5kg, 소고기는 13.6kg이 소비됐다. 

우리보다 앞서 돼지열병이 확산된 중국에서는 질병이 발견되기 전보다 돼지고기의 가격이 약 50%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빠른 확산으로 인한 돼지들의 폐사는 곧 돼지고기 공급의 감소로 이어졌고, 곧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국내 발병은 국내 돼지고기의 공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삼겹살과 구이용 부위 그리고 돈가스용 돼지고기들의 가격은 서서히 인상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돼지고기와 관련된 국내 식품업계 그리고 외식산업계도 긴장상태에 들어갔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물론 국내에서 소비되는 돼지고기는 국내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입육의 비중도 커 당장 가공식품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나, 우리나라가 중국처럼 질병의 완전차단에 실패해 수많은 돼지들이 폐사될 경우에는 식품업계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메인 메뉴로 하는 외식업체,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원료 공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난 2017년 유럽산 살충제 계란 파동이 있은 직후 국내 계란 가격이 치솟은 전례를 감안하면 돼지고기의 문제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가적 재난

일련의 상황에 대해 축산 전문가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있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문정훈 교수는 자신의 SNS에 ‘국가적 재난: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 게시글에서 문 교수는 “과거 동유럽은 돼지열병으로 한동안 양돈 산업이 완전히 초토화됐고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이 병이 돌았을 때 병의 확산 이전의 수준으로 산업을 회복하는데 까지 무려 36년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반드시 초반에 이 열병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면서 “자체 산업규모 약 8조원, 여기에 연관 산업까지 합치면 경제규모 수십조원이 넘어가는 국내 양돈 산업이 무너지면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재앙과 같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라면서 경고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질병이 발생한 농장 그리고 농장주가 소유한 2개 농장의 돼지 총 3950두에 대한 살처분 조치는 곧 완료될 예정”이라면서 “질병의 추가 확산을 막는데 모든 힘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