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린 마투치는 2016년에 딸을 출산할 때 가상현실(VR)을 이용했다. 두 번째 분만을 앞둔 그녀는 진통이 오면 다시 한번 VR을 사용할 생각이다.    출처= Santa Rosa Memorial Hospital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에린 마투치가 지난 2016년 11월 딸 아이를 분만할 때, 그녀의 주치의는 마취제로 진통을 완화시키는 대신, 출산의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비정통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바로 가상현실 헤드셋을 사용하는 것이다.

뉴욕주 뉴햄튼 출신의 전업주부 마투치는 의사의 제안에 회의적이었지만,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한번 시도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그녀가 헤드셋을 착용하자 그녀의 눈 앞에는 즉시 아름다운 해변의 광경이 펼쳐졌고, 진통을 달래는 듯한 목소리가 산모의 집중력과 호흡을 유도했다. 몇 시간 후, 최후의 힘으로 아기를 밀어내야 할 시점에 의사가 헤드셋을 벗기러 왔고, 곧 딸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마투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마치 초현실적 경험 같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진통 중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지만, VR 화면과 어디선가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그녀를 진정시켰고 그녀의 관심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3년 이 지난 올 10월에 두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는 그녀는 이미 의사와 VR을 다시 사용하고 싶다는 소견을 의사에게 밝혔다.

"나는 마취제 대신 VR을 사용해 출산하는 방식이 효과가 있음을 확신합니다.”

VR 요법이 모든 고객들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지만, 산모의 진통 완화와 분만에 VR 헤드셋을 사용하는 것이 실험실 차원을 넘어 정식 의료 행위로 시행되기 시작했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의사들도 자궁내 기기 삽입 같은 일반적인 분만 과정에서 VR을 사용하는 것을 고통 완화를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VR 요법이 진통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마투치의 성공 이후, 캘리포니아주 산타 로사(Santa Rosa)에 있는 산타 로사 메모리얼 병원에는 산모의 출산을 돕기 위한 헤드셋 12개를 비치했다.

산타 로사 메모리얼 병원의 조너선 커스 박사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출산 과정에서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호흡법이나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 만으로도 크게 진일보한 것이며, 그런 일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어렵지 않은 결정

커스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몇 년 동안 VR이 산통 완화에 점점 더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미국에서 출산 시 진통제를 사용하는 것이 한 때 유행했지만 최근 미국의 병원과 의사들이 VR 같은 비의료적인 통증관리 방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다른 이유는, VR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기술에 정통하고 더 어린 세대인데, 바로 그런 세대들이 출산 연령이 되었다는 점이다.

진통 완화를 위한 VR 사용을 연구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시더스-시나이 메디컬 센터(Cedars-Sinai Medical Center)의 모성태아의학(maternal fetal medicine) 의사인 멜리사 웡은 “이 기술이 고통을 을 완화시킬 수 있는 보완적이고 대체적인 방법으로서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VR 요법을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 결단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웡 박사는 VR이 실제로 얼마나 산통과 분만에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내년 봄에는 연구 결과를 발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녀의 연구는 무작위로 통제된 실험이다. 4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그룹의 여성들에게는 VR 헤드셋을 사용하게 하고 또 다른 그룹은 사용하지 않았다. 웡 박사는 장시간 관찰을 통해 환자의 고통에 어떤 변화가 있는 지 측정했다. 아직 구체적인 결과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VR 착용을 시도한 모든 연구 참가자들이 분만의 진통을 겪는 여성들에게 이 기술을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웡박사는 설명했다.

▲ VR 앱 ‘진통의 축복’(Labor Bliss)의 스크린 샷.   출처= Applied VR

진통의 축복

먼 곳에서 밝은 총천연색의 햇빛이 퍼지면서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마음을 열고 아기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으라"

웡이 연구에서 사용한 ‘진통의 축복’(Labor Bliss)이라는 앱이 산모의 고통스러운 진통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다.

현재 진통이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그런 진통을 한 번 겪었고 조만간 다시 같은 진통을 겪게 될 마투치는 이번에도 산타 로사 메모리얼 병원에서 출산이라는 기이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는 동안 VR을 사용할 것이다.

‘진통의 축복’은 VR 헤드셋 착용자들을 바위, 나무, 반딧불 그리고 캠프파이어가 있는 황야 풍경으로 산모를 안내한다.

이 앱은 로스앤젤레스의 어플라이드 VR(Applied VR)이라는 스타트업이 개발했다(시더스-시나이 메디컬 센터가 이 회사에 투자했다). 이 회사의 매튜 스토드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산타 로사 메모리얼, 시더스 시나이 등 130여 개 병원이 자사의 VR 플랫폼을 정식 의료에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통의 축복’에는 산모가 돌고래들과 함께 물 속에서 헤엄쳐 가는 장면도 있고, 파도가 해변에 부딪치는 평화로운 바닷가를 산모가 거니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이 앱이 마투치에게 그런 것처럼 다른 모든 산모들에게도 효과가 있을 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말 초현실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농담하는 것 같다고요? 처음에는 나도 이까짓 기계가 무슨 효과가 있겠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직접 해 보세요. 어떤 효과가 있는 지 알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