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노조와의 협상을 시작하면서 메리 바라 CEO(오른쪽)가 개리 존스 전미 자동차노조(UAW)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협상이 결렬되면서 노조는 지난 14일 12년만에 파업에 돌입했다.    출처= GM Information Cente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는 종종 자신의 공장 현장 근무 경험에 대해 말하곤 한다. 그랬기 때문일까? 노조와의 협상을 앞두고 그들의 선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중서부와 남부에 흩어져 있는 공장들을 방문했을 때 메리 바라 CEO에게는 공장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디트로이트 인근 레이크 오리온(Lake Orion) 조립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바라 CEO는 3억 달러를 들여 새 전기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공장을 준비하고 4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네시주 스프링힐(Spring Hill) 공장에서는 2200만 달러의 투자를 발표했고, 미시건주 랜싱(Lansing) 공장을 방문해서는 그곳에서 새 SUV차량을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

바라 CEO는 또 인디애나주 포트 웨인(Fort Wayne) 픽업 공장에서는 “트럭과 SUV, 크로스오버의 신모델이 성공하면 회사 전체에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2400만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회사가 바라던 것만큼 조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협상은 결국 결렬되었고 전미 자동차노조(UAW, United Auto Workers) 소속의 근로자 4만 9000명이  지난 14일 밤부터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회사는 2007년 이후 첫 파업사태를 맞게 됐다.

랜싱 델타 타운십(Delta Township) 조립공장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고 있는 세르지오 크리스티안은 바라 CEO의 공장 방문을 "쇼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CEO가 우리를 걱정한다면 지금 어디 있는 겁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CEO가 직접 얼굴을 보이며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CEO가 우리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더군요."

메리 바라 CEO에게, 회사에 재정적 손실을 입히지 않으면서 흥분한 노동자들을 만족시킬 공식을 찾기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닐 것이다.

미시건주 출신인 그녀는 18세부터 GM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회사가 소유한 대학에서 전기 공학을 공부했으며, 생산, 인사, 제품 개발 부문의 간부직을 두루 섭렵하며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2014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자동차 기업의 수장에 올랐다.

바라는 점화 스위치 결함으로 일련의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하면서 회사가 스캔들에 빠진 상황에서 CEO로 취임했다. 때마침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그녀의 지휘 하에 회사는 사상 최고의 수익을 창출했고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량의 선점으로 미래를 준비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 기술조사기관 내비건트 리서치(Navigant Research)의 샘 아부엘사미드 애널리스트는 "그녀는 비전을 세우고 회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데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면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모델과 공장을 과감히 처분하며 유럽에서 발을 빼는 등 몇 가지 어려운 결단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제 바라 CEO는 자동차 업계의 전세계적인 부진에 직면해 어느 차종을 없애고 어느 차종에 주력할 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올해 초 오하이오주 로드스타운(Lordstown)의 조립공장 폐쇄와 함께 추가 감원을 심사숙고하고 있는 바라 CEO는 노조뿐만 아니라 백악관의 반대와도 싸워야 한다. 해외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 회사들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GM의 파업이 시작되자 다시 비판의 말을 쏟아냈다.

"GM이 중국과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그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위해 메리 바라 CEO도 만났습니다. 나는 그들이 우리나라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바라 CEO는 이달 초에도 백악관에서 만남을 가졌지만, 얼마나 폭 넓은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 메리 바라 CEO는 종종 자신의 공장 현장 근무 경험에 대해 말하곤 한다. 지난 2월, 미시간주 로물루스(Romulus)에 있는 변속기 생산 공장에서 새로운 투자 계획을 발표한 후 공장 현장 직원과 인사하고 있는 메리 바라(오른쪽).    출처= GM Information Center

GM은 미국 남부 지역에서 무노조 공장을 운영하는 도요타, 혼다 등 외국 자동차 회사처럼, 인건비, 특히 직원들에게 들어가는 의료보험료를 절감하기를 바라고 있다. 자동차 연구 센터(Center for Automotive Research)에 따르면, 임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UAW 노조원 시간당 비용은 63 달러로 무노조 외국 기업 공장의 50달러와 비교해 크게 높다.

GM이 17일, 파업 기간 중 노동자들의 의료보험료 지급을 중단하면서 양측의 긴장은 더 고조되었다. UAW는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임시 방편으로 소속 노조원들에게 건강관리 보조금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GM이 현재의 노동계약 조건으로 북미 지역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GM은 북미 지역에서 108억 달러(12조 8000억원)를 벌어들였는데 이는 도요타, 혼다, 닛산의 북미 법인 수익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지난 주말 GM은 노조측에 미국 공장에 70억 달러를 투자하고 540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는 폐쇄된 로드스타운 공장 근처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내년 3월에 문을 닫을 예정이었던 디트로이트 공장은 계속 가동하고 근로자들의 의료보험 분담금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테리 디테스 UAW 부위원장은 GM에 보낸 서한에서 그러한 제안들이 토요일 밤 협상 시한이 종료되기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사측이 이 제안을 좀 더 일찍 제시했다면 잠정 합의에 도달해 파업을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번 노조와의 협상은 GM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그 결과는 디트로이트의 다른 자동차 회사인 포드와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노사 협상에 선례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도 있다. 지난 2014년에도 협상 시한이 종료되기 직전에 합의가 이뤄졌고, 노조원들은 아슬아슬한 표차로 합의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일부 노동자들은 당시 UAW가 노동자들의 이익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며 이번에 더 나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고 압박해 왔다.

메리 바라 CEO가 올해에도 원활한 노사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랜싱 공장의 40년 베테랑 페인트공 크리스티안은 “바라 CEO가 자신이 말한 약속을 지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누구나 약속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지켜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