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사율 100%에 이르는 치명적인 돼지 감염병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가운데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없어 주목된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한국에서 돼지 폐사율이 100%에 이르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지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 개발에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어 주목된다. 러시아와 미국 등 바이러스학자들이 ASF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지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ASF 근절을 위한 백신 개발의 미래가 유망하다고 전망된 가운데 최근 중국에서 백신 개발 가능성을 확인됐다. 한국 바이오텍도 ASF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관심이 모인다.

ASF 발생 시 살처분만이 답, 축산경제 타격

한국에서 ASF는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양돈농장에서 발생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정밀검사를 통해 폐사한 어미돼지 5두에서 ASF 양성을 확정했다. ASF는 예방이 어려워 발생 시 대규모 살처분만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역학조사와 긴급방역을 실시 중이다. 우선 신고 농장의 농장주, 가축, 차량, 외부인 등의 출입을 통제했다. 거점소독시설 16곳과 통제초소 15곳도 운영돼 축산차량에 대한 소독조치를 강화했다. 발생농장 및 농장주 소유 2개 농장 돼지 3950두에 대한 살처분 조치가 시행됐다.

▲ 전국 곳곳에서 긴급 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출처=부산시

ASF 주요 전파요인에 대한 관리도 강화됐다. 농식품부는 경기도에서 다른 시‧도로 돼지 반출을 일주일 동안 금지하는 긴급조치를 시행하고 전국 양돈 농가 6400호의 의심증상 발현여부 등 예찰을 시작했다.

같은 날 오후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돼지농가에서도 ASF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의심 신고가 접수된 연천군 돼지농가의 사육 규모는 4732마리다. 폐사한 의심 돼지는 정밀검사 결과 18일 ASF로 확진됐다. 발생농장 반경 3km 내에는 3개 농가가 돼지 5500마리를 키우고 있다. 10km까지 범위를 넓히면 60개 농가가 8만 7000마리를 키우고 있어 살처분 피해가 우려된다.

지난해 8월 중국정부는 중국에서 발생한 ASF의 확산을 막지 못해 돼지 100만마리를 살처분했다. 네덜란드 라보은행은 중국 사육돼지 절반 가까이가 폐사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 돼지고기 공급부족 사태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한국에 ASF 바이러스가 전파되면 300만마리를 살처분한 2011년 구제역 파동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돼지사육 농가와 관련산업에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돼지 폐사율 약 100%, ASF 무엇?

ASF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돼지 전염병으로 전염력이 강하고 이병률과 폐사율이 매우 높다. 이 질병이 발생하면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발생 사실을 즉시 보고해야 하며 돼지와 관련된 국제 교역도 즉시 중단하는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ASF를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제1종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ASF는 사람과 다른 동물에게는 감염되지 않는다. 돼지와 야생 멧돼지 등 돼지과 동물에만 감염된다. 연진드기가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돼 야생 멧돼지나 돼지를 물어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진드기가 서식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동유럽 일부 국가에는 전파 사이클이 구축돼 ASF의 근절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남향미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은 “2016년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연진드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ASF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감염된 돼지의 침, 호흡기 분비물, 오줌과 분변 등에 대량의 바이러스가 배출되므로 심급성, 급성, 아급성 및 만성형의 모든 형태에서 이병률이 매우 높다.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는 사육돼지에서의 이병률은 100%에 이를 수 있다.

폐사율은 바이러스의 병원성에 따라 달라진다.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심급성형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7~10일 이내에 어떠한 증상도 없이 폐사율이 100%에 이른다. 급성형은 바이러스 감염 후 6~13일 이내에 폐사율이 100%에 이른다. 중등도 병원성을 갖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급성형은 돼지가 어릴 시 심각한 증상을 나타내며 폐사율은 70~80%를 나타낸다. 나이든 돼지는 폐사율이 20% 이하다. 병원성이 중간정도나 낮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만성형은 페사율이 낮다.

ASF 바이러스, 유전구조 복잡…백신 개발 난항

시장 조사기관 트렌스패렌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ASF를 포함한 돼지 백신 시장은 2016년 18억 8000만달러(2조 2163억원)에서 연평균 7% 성장해 오는 2025년 32억달러(3조 8121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SF 사태로 양돈산업 붕괴 수준의 어려움을 겪은 아시아 지역에서 백신 수요는 더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돼지 백신 시장 성장 전망(단위 조원). 출처=트렌스패렌시 마켓 리서치

돼지 백신 시장이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ASF 백신은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SF 바이러스는 전세계 거의 모든 농장에 있는 바이러스인 ‘돼지써코바이러스 2형’에 비해 물리적으로 약 10배 크고 100배 이상의 복잡한 유전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ASF 바이러스는 크기가 커 바이러스 단백질의 기능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게다가 25개 유전형이 있어 각 유전형 사이에는 백신에 따른 교차방어도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와 돼지써코바이러스 2형 비교. 출처=베링거인겔하임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러시아와 미국의 바이러스 학자들은 ASF에 대한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ASF의 게놈에 대해 이미 연구를 완료하고 다양성의 원인이 되는 부위를 정확히 찾아냈다. 해당 부위를 조작해 바이러스의 특성을 변화시켜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 남향미 수의연구관은 “해당 백신은 ASF 바이러스에 대해 60일 동안 완전히 방어해줬다”면서도 “해당 연구는 상용화 가능한 치료제 및 백신 생산에 도움이 되겠지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국농업과학원은 최근 하얼빈 수의학연구소에서 독자 개발한 ASF 백신 실험실 연구가 마무리돼 생물안전평가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과하면 백신 생산이 가능해져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있는 ASF 퇴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부즈가오 중국농업과학원 하얼빈 연구소장은 “실험실 연구를 통해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점을 입증했다”면서 “대규모 생산 문제도 해결했다. 백신이 실험실이 아닌 야외에서도 효과성과 안전성을 증명할 수 있다면 대규모 생산에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이글벳, 제일바이오, 등의 한국 바이오텍이 ASF 백신을 초기 단계에서 개발하고 있다. 비상장사 제이비바이오텍과 공동 연구개발(R&D) 중인 씨티씨바이오는 이르면 10월 초 ASF 백신 개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진비앤지 자회사 우진바이오는 돼지열병 ‘생마커 돈단독 복합 백신’에 대한 한국내 임상시험설계에 대해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최종 승인을 받고 이를 개발 중이다. 우진바이오 관계자는 “생마커 백신은 돼지열병 백신 바이러스의 특정부위에 표식을 부착한 백신”이라면서 “기존의 약독화 백신과 달리 생마커 백신을 접종한 동물은 특정 항체검사를 통해 야외바이러스 감염과 백신 접종을 감별할 수 있는 디바(DIVA-Differentiating Infection in Vaccinated Animals) 백신으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디바 백신은 항체가 생긴 동물이 백신에 따라 생긴 것인지 감염 때문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돕는 백신이다. 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 등에 대해 더 자세한 추적이 가능하다.

최서연 한양증권 애널리스트는 "씨티씨바이오와 제이비바이오텍은 한국과 해외의 대학 연구팀과 ASF 바이러스를 잡을 수 있는 항체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제이비바이오텍이 발견한 항체가 ASF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10월 초 정도면 알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