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태생에 20세기 현대미술의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Marguerite Guggenheim)은 “지금은 창작의 시대가 아니라 수집의 시대다. 우리가 가진 위대한 보물을 보존해 대중에게 보여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구겐하임은 제2차 세계대전 전쟁으로 인해 불타 없어질뻔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1881-1955),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 1883-1966),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 1904-1980),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1915-1991)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걸작들을 사드려 지켜냈다.

우리나라에도 전설적인 컬렉터가 있다.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이자, 대한민국 3대 사립박물관 중 하나로 손 꼽히는 간송미술관(옛 보화각) 설립자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이다.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시대 때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국보 제70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국보 제294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미상)의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국보 제135호),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 등 국보 12점, 보물 32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에 달하는 국보급 문화재와 우리 미술사에서 빛나는 고미술품들을 전 재산을 걸어 전투적으로 사수해 소장함으로써 외국에 유출될 뻔한 명작들을 지켜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13세기, 높이 41.7cm, 국보 제68호 (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최고운 큐레이터=특유의 아름다운 선을 자랑하는 이 거작은 고려청자 특유의 맑고 푸른 빛깔과 호화찬란한 문양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원형 문양에는 학의 모습을, 원형과 원형 사이에는 구름들이 흐르고 있어 마치 수만 마리의 학이 창공의 구름 사이를 날아오르고 내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한 일화로, 고려상감청자를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국보 제68호)을 일본인 골동상 마에다 사이이치로(前田才一郞)에게서 거금 2만 원에 구입한다. 그 당시 이만 원이라는 돈은 서울에서 기와집 열 채를 살 수 있는 값이며,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일생 동안 평안히 먹고 살 수 있었던 아주 큰 거금이었다. 서울의 인구가 50만 채 안 되던 때, 고미술품에 대한 인식이 일반적으로 높지 못했던 그 시절에 전형필의 용기 있는 결단과 확신을 알 수 있다.

한국미술사 재정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수준급 미술품들을 수집한 그의 집념은 중요한 시사점을 전하고 있다. 민간의 힘으로 국가의 역할을 대신했으며 단순한 재력을 바탕으로 유물을 수집하고 보존했던 것이 아니라 민족의 얼과 혼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미술품 수집이라는 점에서 현재까지 그의 영향력은 한국 미술사학계에 크게 미치고 있다.

미술품 컬렉션은 개인의 행위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국가와 후세를 위해 훌륭한 문화적 자산을 남겨주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백남준, 법륜은 돌아가네, 1990, 축음기 레코드, 레이저 디스크, 비디오 테이프, TV 튜브, 오디오 카세트, 헤드폰, 40.6×39.4×30.5cm, 학고재 소장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최고운 큐레이터=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심각한 철학 및 사상(고급예술)을 부정하며 오직 예술가 자신의 재미와 변덕, 즉흥성에 의한 작업을 했다. 미술 소재가 전혀 아니었던 미디어라는 새로운 재료를 통해 발상의 전환을 심어주었다. 대표 작품인 비디오 조각은 텔레비전의 대중 지배에 대한 역기능을 해석한 작품이다.

미술품 컬렉터(Art Collector)는 높은 안목을 갖추고 미술품을 수집하는 사람을 정의하는 말이다.

전형필 역시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1886-1965)과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그 자신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및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서화작가의 내력과 작품에 관한 평이 정리되어 있는 서화가 인명사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토대로 충분한 안목을 키운 뒤에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했다. 이렇게 노력을 통해 얻은 탁월한 안목으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그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수집했다. 당시만 해도 그다지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을 알아보고 학문적 고찰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것도 전형필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자 미술품은 ‘시대별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작품’을, 서예 미술품은 ‘독자적인 서체와 역사적 인물의 필체’를 중심으로 작품을 수집했다. 전형필의 뚜렷한 컬렉션 목적은 올바른 컬렉션 방향을 제시해주는 초석이 됐을 뿐만 아니라 민족 미술품 보호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진 컬렉터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 밖에도 평생 애장한 문화재 362점을 사망 직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의사 박병래(朴秉來, 1903-1974),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진 슬픔을 미술품 수집으로 승화해 평생 수집한 4,941점의 컬렉션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이홍근(李洪根, 1900-1980) 등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컬렉터들의 숨은 역할들은 민족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정상화, 무제, 1978, 종이에 프로타쥬, 99×60cm, 학고재 소장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최고운 큐레이터=정상화(b.1932)는 결과물보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았다. 그림을 그리는 대신 캔버스를 틀에서 벗겨 물감을 겁쳐 발라 접는 ‘뜯어내기’와 ‘메우기’를 무수히 반복한다. 격자 형태는 이러한 노동집약적 행위를 그대로 나타내며 작업에 임하는 모든 순간이 곧 작품임을 말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수집욕구를 가지고 태어났다. 수집 행위를 통해 희열을 느낀다. 미술품 컬렉션(Art Collection)은 근본적인 수집 욕구 충족의 차원을 넘어서 작가 및 미술단체들의 생활을 돕고, 그들이 원활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역할까지 포함한다. 컬렉션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은 바로 ‘후원(後援)’이다. 미술 후원은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뒷받침하고 장려하는 아주 중요한 행위인 것이다.

미술시장은 생산자(작가), 중개자(화랑, 경매 회사, 아트 딜러), 수요자(컬렉터)가 각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서로 균형을 맞춰 상호 보완적 기능을 수행할 때에 바람직한 미술시장이 형성된다. 그중에서도 수요자인 컬렉터는 미술시장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시장 원리에 따라 공급은 있으나 수요가 없다면 균형은 깨지기 마련이다. 문화 산업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술이 문화산업의 핵심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창작자가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미술품 컬렉터는 양질의 예술 작품을 지속적으로 생성하는 작가를 후원하여 키워내고, 미술시장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주역인 것이다.

 

이동엽, 사이-여백 908,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259cm, 학고재 소장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최고운 큐레이터=이동엽(1946-2013)의 백색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깊고 넓은 미학인 ‘여백의 미’, 우리 민족을 뜻하는 ‘백의민족’, 흰 캔버스 위에 하얀 붓질의 무수한 반복적인 행위로서 마음을 비우는 ‘비움의 미학’으로 상징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상을 그리지 않고도 무언가가 생겨나고 자라고 또 사라지는 순환과 순리를 담고 있다.

미술품 컬렉션의 공공적 가치와 진정성

미술품 컬렉션은 수집 및 등록 과정을 통하여 합법적 소유권에 의해 보관∙관리되고 있는 작품을 말한다. 미술품 저작권은 창작한 화가가 갖는 게 원칙이고, 매매하게 되면 그 저작권까지 양도하는 경우도 있고, 매매계약에 따라 그 저작권을 유보하고 그림만 판매 또는 공동 저작권을 소유 등 계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신아 법무법인(유한) 이재영 변호사)

사진, 판화, 조각 등을 제외하고는 미술품의 원작은 오직 하나이며 재생산이 불가능하다. 개인이 소유한 미술품은 공공장소에서 전시될 때 미술품이 가진 미적 가치가 즉각적인 소비 효용으로 창출되어 경제 활동에 막대한 외부 경제효과를 파급시킬 수 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들은 미술품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빌리지 않으면 전시회를 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역향력을 미치고 있다.

미술품의 효용과 가치는 다른 자산과 구분되며 투자자산으로서 우뚝 서게 됐다. 때때로 미술품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매력적인 투자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품을 단순히 재화 가치로서 투자 목적으로만 보는 견해는 매우 위험하다. 대부분 생산물의 가격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되지만, 미술품의 가격은 동일한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크기, 제작연도, 내용, 재질, 보존 상태, 소유의 경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된다. 아울러 미술품은 유일성을 갖기 때문에 어떤 투자 상품보다도 소유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생산할 수 있는 작품의 수가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미술품은 공급과 소유 모두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장의 요구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술품을 주식과 같은 일반적인 금융자산 및 타투자상품과 동일한 잣대로 수익률과 위험률을 측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현식, Who Likes B Red?, 2019,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54(h)×54×7cm, 학고재 소장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최고운 큐레이터= 김현식(b.1965)은 투명한 물질성을 갖는 에폭시 레진 위에 송곳으로 무수한 선을 반복적으로 긋는다. 원칙적으로는 같은 선이지만, 행위라는 것은 결코 정확히 같을 수 없다. 결국 미세한 차이를 갖는 선과 선 사이의 공간들은 깊이감을 만들어내어 무한한 세계를 유한한 캔버스에 표현한다.

작품을 컬렉션 할 때 여러 가지 투자자산 중 한 군으로 분류하되 투자수익률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작가가 가진 철학 및 작업에 임하는 태도 등 진정성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 미술품 중개자를 통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고 구매하는 경로를 추천한다.

대표적인 미술품 중개자인 화랑(갤러리)은 문화적 예술공간이자 상업공간을 운영하는 곳이다. ‘예술사업가’이자 ‘미술 애호가’이며 ‘작가의 동반자’로서 미적 안목과 상업적 안목을 두루 갖춘 곳이다. 또한 작가를 발굴 및 육성하고 시장에 전파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전문 회사이다.

1996년 출발한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 회사는 공개적이면서 경쟁적인 판매 방식이라는 면에서 투명성을 갖는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서울옥션, 케이옥션(K옥션) 등으로 확장되어 현재는 미술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품 유통경로가 되었다.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최고운 큐레이터=학고재 갤러리는 1988년 개관 이래 한국의 독보적인 갤러리로 자리매김했다. 30년 동안 한국미술과 현대미술의 교감을 위해 힘써왔다. 특히 전통적인 정신을 현대미술의 어법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선구자들의 전시와 한국 민중미술을 후원하는 등 학고재만의 안목과 주체적인 목표를 갖고 미술품 컬렉션을 해왔다.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젊은 작가를 조명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미술품은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상을 함축한다. 간송 전형필은 한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표현한 민족의식이 깃든 문화재 및 미술품을 수집하여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후대에게 전했다. 나아가 미술품 감상을 통해 국민들의 문화생활과 미적 공감대를 고취시켜 문화 향유자로 키워냈고, 한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 일조했다.

미술품은 일부 특권층이나 소수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진 사람은 구매할 수 있도록 적정 가격부터 합리적인 유통질서를 만드는 것이 건전한 미술문화의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술품 생산자, 중개자, 수요자들 간의 바람직한 협력, 그리고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이다.

◾ 최고운 학고재 큐레이터

 

<참고 문헌> 
1. 「투자로서의 미술품과 미술품 가격형성 요인에 관한 연구」, 김태성, 2008
2. 「한국 개인미술품 컬렉터의 사회적 역할과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 이희정, 2009
3. 「간송 전형필의 장르별 미술품 수집 특징에 관한 연구」, 이연주, 2015